어긋남을 고치고, 무엇이 남는가 (7/7) - 끝
어긋남을 고치고, 무엇이 남는가
지난 편에서 설정집에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묻다 보면 가끔 답이 어긋난다. 한 인물의 눈동자 색이 화마다 다르거나, 분명히 죽은 인물이 뒤에서 멀쩡히 걸어 다니거나. 이번 편에서는 그런 어긋남을 찾아내고 겁 없이 고치는 법을 본다. 그리고 이 연재의 마지막으로, 이 모든 방법이 결국 무엇을 남기는지까지 짚는다.
어긋난 곳을 찾아낸다
길어진 원고에서 설정 충돌은 작가 혼자 찾기 어렵다. 수십만 자를 처음부터 다시 읽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신 설정집을 가진 LLM에게 맡긴다.
설정집에서 서로 어긋나는 설정, 아직 회수되지 않은 복선, 빠진 연결이 있으면 찾아 줘.
그러면 LLM이 인물·연표·설정을 훑어 의심스러운 곳을 짚어 준다. 실제로 내 작업에서도 이렇게 잡힌 것들이 있었다. 한 치료제의 설정이 앞에서는 '없앤다'였는데 뒤에서는 '되살린다'로 엇갈렸고, 한 사건의 연도가 두 자료에서 서로 달랐다.
![설정 충돌을 찾아낸 Claude Code 화면]
"어긋나는 설정을 찾아 줘"라는 한 줄에, LLM이 설정집과 원본을 교차검증해 모순 목록을 돌려준다. 연도가 엇갈리는 곳, 인물 관계가 앞뒤로 어긋나는 곳이 근거가 된 파일·화 번호와 함께 짚인다. (실제 작업 화면)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자. LLM이 짚은 것이 다 진짜 오류는 아니다. 일부러 그렇게 둔 복선일 수도, 인물이 거짓말을 하는 장면일 수도 있다. LLM은 의심스러운 후보를 모아 줄 뿐, 무엇이 고칠 오류이고 무엇이 의도된 장치인지는 작가가 판단한다.
이 점검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원고가 한참 길어졌을 때, 또는 큰 수정을 한 뒤마다 가볍게 한 번씩 돌려 두면, 모순이 더 자라기 전에 일찍 잡힌다.
겁 없이 고친다
고칠 곳을 정했다면 이제 고친다. 그런데 장편에서 수정이 망설여지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고쳤다가 더 나빠지면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Git이다. 매일 커밋으로 시점을 남겨 두었으니, 무엇을 어떻게 고치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마디로 되돌아온다. 다만 되돌아갈 수 있는 자리는 커밋해 둔 시점까지다. 그러니 크게 손대기 전에 "커밋해 줘" 한마디로 지금 상태부터 찍어 두는 편이 좋다. 아직 커밋하지 않은 작업은 되돌리는 과정에서 함께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방금 고친 것, 마음에 안 드니 직전 커밋으로 되돌려 줘.
되돌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비로소 과감해진다. 한 문단이 아니라 한 화를 통째로 갈아엎는 일도 더는 무섭지 않다.
가령 한 인물의 직업을 중반부터 통째로 바꾸기로 했다고 하자. 예전이라면 어디까지 손대야 할지 몰라 엄두가 나지 않았을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고쳐 보고, 더 나빠졌다 싶으면 되돌리면 그만이다. 시도의 비용이 0에 가까워지는 순간, 작가는 더 나은 선택을 더 자주 하게 된다.
"만약에"를 실험한다
가장 과감한 수정은 결말을 바꾸는 일이다. "만약 이 인물을 살린다면", "만약 결말을 비극으로 돌린다면". 이런 큰 실험은 본 원고를 직접 건드리지 않고, 따로 갈래를 떠서 해 본다. 이것을 브랜치라고 한다.
결말을 바꿔 실험할 브랜치를 하나 만들어 줘.
이 갈래에서 마음껏 새 결말을 써 보고 본래 결말과 견준다. 새 결말이 더 좋으면 본 줄기에 합치고, 아니면 통째로 버린다. 본래 원고는 처음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브랜치를 본 줄기에 합쳐 줘. (또는) 이 브랜치는 버리고 본래대로 돌아가 줘.
원고를 두 벌로 복사해 두고 헷갈릴 일도, 실험이 망쳐 본편을 잃을 일도 없다. 무엇을 시도하든 본래 자리는 늘 안전하다.
무엇이 남는가
여기까지 오면 한 바퀴가 완성된다. 쓰고, 설정집에 반영하고, 묻고, 어긋남을 고친다. 이 단순한 순환이 매일 돌아가는 동안 작가에게 남는 것은 분명하다.
첫째는 일관성이다. 설정이 머릿속에서 흘러내려도 설정집이 붙들고 있으니, 길어진 원고가 무너지지 않는다. 둘째는 겁 없는 수정이다. 모든 시점이 남아 있어 결말이든 한 장이든 과감히 뜯어고칠 수 있다. 셋째는 다음 작품의 발판이다. 한 권을 끝내면 그 세계가 통째로 설정집에 정리되어 있어, 후속작은 빈손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 모든 부기를 조력자가 떠안는 동안 작가는 정작 중요한 일 — 쓰는 일 — 에 집중하게 된다.
시작하기 전에 알아 둘 것
좋은 점만 말하면 정직하지 않다. 몇 가지는 미리 알아 두는 게 좋다.
LLM은 틀린다. 설정을 잘못 읽거나 없는 사실을 지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설정집은 늘 작가가 한 번 확인하고, 원고 원본은 LLM이 건드리지 않게 둔다. 또 LLM은 내 원고와 설정집 안에서만 일해야 한다. 바깥 웹에서 사실을 끌어와 내 허구 세계에 섞으면 안 된다. 비용도 있다. 도구 사용에는 구독료나 사용료가 들고, 한 화씩 반영하는 일상 작업은 가볍지만 원고 전체를 한꺼번에 정리하거나 큰 점검을 자주 돌리면 그만큼 비용이 늘 수 있다(정확한 요금은 공식 페이지 claude.com/pricing에서 확인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내 글이 걱정된다면 저장소를 비공개로 두면 된다. 원고는 내 컴퓨터와 내 비공개 저장소에만 남는다. 그리고 출판이 걱정된다면, 마크다운 원고는 LLM에게 부탁해 언제든 워드(.docx) 문서로 변환할 수 있고 한글에서도 그 파일을 열 수 있으니, 출판사나 공모전이 원하는 형식으로 보내는 데도 막힘이 없다.
이제, 당신 차례다
이 연재를 한 줄로 줄이면 이렇다. 운전대는 작가가 잡고, 지루한 정비와 기록은 조력자에게 맡긴다.
거창한 준비는 필요 없다. 무료 프로그램 몇 개를 깔고, 원고 폴더를 열고, 카파시의 글을 건네며 "내 소설에 적용해 줘"라고 한마디 하면, 그날부터 당신의 원고는 스스로 기억하고 되돌아갈 줄 아는 작업실이 된다. 이 연재에 나온 프롬프트들을 그대로 따라 치기만 하면 된다.
새벽 두 시에 눈동자 색을 찾아 27만 자를 헤매던 그 사람은, 이제 없다.
브랜치(branch) : 원고를 본래 줄기에서 잠시 갈라내, 본편을 건드리지 않고 다른 전개를 실험하는 Git의 기능. 마음에 들면 본 줄기에 합치고(병합), 아니면 통째로 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