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집필 루프 (5/7)
매일의 집필 루프
지난 편에서 원고와 설정집이 한 폴더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글을 쓸 차례다. 매일의 작업은 세 박자로 돌아간다. 쓰고, 반영시키고, 저장한다. 한 번 몸에 익으면 거의 의식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단순하다.
쓴다
세 박자 가운데 첫째다. 새 화 파일을 하나 만들고 평소처럼 이야기를 써 내려가면 된다. 마크다운으로 쓰지만 부담은 없다. 제목 앞에 #을 붙이고, 강조할 말은 별표 둘로 감싸는 정도면 충분하고 금방 손에 익는다. 이렇게 폴더 안에서 바로 쓰면 따로 옮길 것도 없다. 혹시 원래 쓰던 워드프로세서가 더 편하다면 거기서 쓴 뒤 텍스트로 저장해 작품 폴더에 옮겨 두면 된다. 어느 쪽이든 한 화를 마쳤으면 LLM에게 무엇이든 요청하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선은 분명히 해 두자. LLM은 문장을 대신 만들지 않는다. 무엇을 쓸지, 어떤 문장으로 쓸지는 작가의 몫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옆자리의 조수처럼, 작가가 쓴 글을 더 낫게 만드는 일을 하도록 두는 것이 좋다.
가장 흔하게는 교정이다. 한 문단을 끝내고 이렇게 시킨다.
방금 쓴 문단, 맞춤법과 어색한 문장만 짚어 줘. 고치진 말고.
오탈자와 비문을 잡아 주되, 고쳐 쓰는 것은 작가가 한다. 같은 식으로 자기도 모르게 반복하는 버릇도 점검할 수 있다.
이 화에서 너무 자주 쓴 단어나 표현이 있으면 알려 줘.
대사가 그 인물답게 들리는지도 물을 수 있다. 설정집에 인물별 말투가 정리돼 있으니, LLM은 그것과 대조해 답한다.
이 대사, 설정집에 정리된 그 인물 말투에 맞나?
설정이 헷갈릴 때 잠깐 확인하는 것도 물론 그대로다.
그 인물 눈동자 색, 설정집엔 뭐라고 돼 있지?
앞뒤가 매끄럽게 이어지는지도 봐 준다.
이 장면이 앞 화 마지막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나? 어색한 데가 있으면 짚어 줘.
![방금 쓴 화의 연결성과 어색한 부분을 점검해 주는 Claude Code]
같은 물음에, LLM이 방금 쓴 화를 읽고 우선순위까지 매겨 짚어 준다. 앞 화와의 연결은 자연스럽다고 인정하면서도, 시점 신호가 약한 곳·앞 화와 중복된 설명·표기 불일치를 조목조목 가려낸다. 무엇을 받아들일지는 작가가 정한다. (실제 작업 화면)
한 발 더 나아가, 다 쓴 화를 두고 더 큰 결의 반응을 청할 수도 있다.
이 화를 처음 읽는 독자라면 어디서 흥미가 식을 것 같아? 인물의 감정이 잘 전해지는지, 늘어지는 곳은 없는지 솔직히 말해 줘.
언제든 불평 없이 읽어 주는 첫 독자를 곁에 둔 셈이다. 다만 한 가지는 더 새겨야 한다. 맞춤법이나 설정 충돌과 달리, 글이 좋은지 나쁜지는 정답이 없는 영역이다. LLM의 문학적 판단은 평범하고 때로 틀리며, 그 말에 휘둘리다 보면 누구의 글도 아닌 매끈하기만 한 글이 되기 쉽다. 반응은 참고하되, 살릴지 버릴지는 작가의 몫이다.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제안이자 점검이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버릴지, 문장을 어떻게 고칠지는 끝까지 작가가 정한다.
반영시킨다
한 화를 끝냈다면, 그 화를 설정집에 반영할 차례다. Claude Code에 이렇게 적는다.
방금 쓴 0120화를 읽고 설정집에 반영해 줘. 새 인물·사건·복선이 있으면 추가하고, 기존 설정과 어긋나는 게 있으면 알려 줘.
그러면 LLM이 새로 등장한 인물, 새 사건, 새로 깔아 둔 복선을 읽어 인물 사전과 연표를 갱신한다. 구체적으로는 인물 사전에 새 인물의 줄이 생기고, 연표에는 그 화의 사건이 시간순으로 끼워지며, 새로 깔린 복선은 나중에 추적할 수 있도록 🔑 표시를 달아 목록에 오른다. 작가가 따로 정리하지 않아도, 한 화를 쓸 때마다 설정집이 원고를 한 칸씩 따라온다.
이 '반영'이 사실 세 박자의 심장이다. 설정집이 원고에 뒤처지지 않고 날마다 최신 상태로 유지되어야, 이후 편들에서 보게 될 모든 질문과 점검 — 복선 회수 확인, 연표 정리, 모순 찾기 — 이 제대로 작동한다. 하루치는 몇 줄 갱신에 그치지만, 그 며칠이 쌓여 원고와 한 몸으로 움직이는 설정집이 된다.
여기서 작가가 할 일은 그 결과를 한 번 훑어보는 것이다. 정리는 LLM이 자동으로 하지만, 그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일만은 작가가 건너뛰어선 안 된다 — 자동화가 편한 만큼 틀린 정리가 조용히 쌓일 위험도 함께 커지기 때문이다. LLM이 무엇을 어떻게 바꿨는지 화면에 나란히 보이므로, 맞으면 그대로 두고 어긋났으면 바로잡는다. 가끔은 이 단계에서 LLM이 먼저 묻는다. "이 인물, 3화에서는 형이라고 했는데 이번엔 동생이네요. 어느 쪽이 맞나요?" 작가가 흘려보낸 균열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조력자가 짚어 주는 것이다.
저장한다
반영까지 끝났으면 그 시점을 남긴다. Claude Code에 이렇게 적는다.
오늘 쓴 화와 갱신된 설정집을 커밋해 줘.
그러면 오늘의 작업이 하나의 시점으로 안전하게 기록된다. 며칠 뒤 마음에 들지 않아 갈아엎더라도, 한마디면 그 순간으로 돌아온다.
어제저녁 상태로 되돌려 줘.
얼마나 자주 커밋해야 하는지 정해진 규칙은 없다. 한 화를 끝낼 때마다 한 번, 또는 그날 작업을 마칠 때 한 번이면 충분하다. 너무 자주 해서 손해 볼 일은 없고, 너무 드물게 하면 되돌릴 수 있는 지점이 성겨질 뿐이다. 인터넷 백업까지 켜 두었다면, 커밋한 내용을 원격 저장소로 올려 두라고 한마디 더 보태면 된다. 그러면 컴퓨터가 고장 나도 원고는 남는다.
이 리듬이 쌓이면
쓰고, 반영시키고, 저장한다. 이 세 박자가 매일 반복되는 동안, 원고가 한 화씩 길어지는 만큼 설정집도 같은 속도로 자란다. 머릿속에서 흘러내리던 디테일이 날마다 조금씩 문서에 쌓이고, 모든 작업 시점이 빠짐없이 남는다. 한 달이 지나면 설정집은 작가도 다 외우지 못할 만큼 두꺼워져 있고, 바로 그때부터 이 문서는 단순한 메모를 넘어 원고를 함께 지탱하는 또 하나의 뼈대가 된다.
그래서 몇 달 뒤 "그 인물 눈동자 색이 뭐였더라" 하고 손이 멈추는 일은, 이제 일어나지 않는다. 설정집을 펼치거나 LLM에게 물으면 그만이다. 1편의 그 새벽이, 더는 오지 않는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설정집이 차곡차곡 쌓였다면, 이제 그것에 질문을 던질 차례다. "이 복선은 회수했나?", "여기까지 연표를 정리해 줘", "두 인물의 관계를 그림으로." 다음 편에서는 쌓인 설정집을 어떻게 꺼내 쓰는지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