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탈사인

바이탈 사인(3)

3화. 부품값

방사선 경고등이 노란불이었다. 오늘은 갈 수 있었다.

닥터한테 갔다. 심장 검사. 엄마는 일 나갔으니까 혼자 갔다.

터널을 걸으면서 카이로가 물었다.

"긴장돼?"

"아니."

"심박 올라갔는데."

"닥쳐."

카이로라는 이름. 내가 지은 거 아니다.

스크린 수업 중에 이집트가 나왔다. 대 피라미드. 사막. 스핑크스.

예전엔 저게 지구에 있었는데, 지금은 모래에 묻혀 꼭지만 보인다고 했다.

그때 생각했다. 가보고 싶다. 저기. 카이로.

"나. 카이로."

처음엔 몰랐다. 나중에야 알았다. 내가 카이로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 그래서 그 이름이 된 거라는 거.

내 생각에서 나온 이름. 내 머릿속에서 태어난 목소리.

짜증났다. 내 생각을 다 듣는다는 거잖아. 비밀이 없다는 거잖아.

"지금도 짜증나?"

카이로가 물었다. 지금.

"뭐가."

"비밀 없는 거."

"익숙해졌어."

"거짓말. 심박 올라갔어."

"...닥쳐."


닥터의 진료실. 늘 그랬듯이 눕고, 찔리고, 기다렸다.

닥터가 모니터를 보면서 말했다.

"심장 상태 안 좋아."

"알아요."

"교체해야 해."

"그것도 알아요."

"부품 구하기 어려워. 비싸고."

"..."

"수진이 팔 수 있는 게 별로 안 남아서. 시간 걸릴 거야."

"..."

"..."

"뭘 판다는 거예요?"

닥터의 센서가 내 쪽을 향했다. 잠깐.

"물어볼 거야?"

"뭘요."

"10년간 부품값 어디서 났는지."

"..."

"수진이 말하지 말라고 했어."

"..."

"근데 넌 물어보고 있으니까. 대답해야지."


닥터가 말했다.

건조하게. 늘 그렇듯이.

"2080년. 네 왼쪽 신장. 그 전에 수진이 오른쪽 신장 팔았어."

"..."

"2082년. 오른쪽 폐. 수진이 골수를 팔았어. 그해 두 번."

"..."

"2083년. 척추. 간의 일부."

"..."

"2086년. 조혈 시스템. 골수가 망가져서. 수진이 왼쪽 눈 팔았어. 시력 잃은 거 아니야. 판 거야."

"..."

닥터가 멈췄다.

"더 들을 거야?"

"...어디서요."

"뭐가."

"어디서 팔아요. 그런 거."

"술집. 암거래상들. 더스트 벨트에 많아. 수진이 일 끝나고 가는 데."

"리큐르 마시러 가는 데요?"

"거기서 마시기도 하고, 팔기도 하고."

"..."

"난 수술만 해. 돈 안 받아. 근데 부품은 비싸. 공짜가 아니야."

"..."

"왜 그래."

"닥터는요."

"뭐가."

"왜 여기 있어요?"

"여기?"

"돔 도시에서 일했다면서요. 왜 여기서."

"쫓겨났으니까."

"왜요?"

"글쎄. 왜였을까."

닥터가 장비를 정리하면서 말했다. 센서는 내 쪽을 안 봤다.

"환자를 치료했거든."

"그게 왜 쫓겨나는 이유예요?"

"거기선 환자를 골라. 돈 있는 사람들만. 난 안 골랐어."

"..."

"그래서 고장났대. 나를."

"고장이요?"

"로봇이 명령 안 들으면 고장이지. 폐기 대상."

"근데 살아있잖아요."

"도망쳤으니까."

"..."

"여기선 아무도 안 물어봐. 내가 뭔지. 그냥 고치면 돼."

"그래서 돈 안 받아요?"

"돈 받으면 기록 남아. 기록 남으면 찾아와."

"누가요?"

"옛날 주인들."

닥터가 마지막 장비를 제자리에 놓았다.

"질문 끝났어?"

"...네."

"그럼 심장 얘기 하자."

"..."

"아까 말했잖아. 안 좋다고."

"알아요."

"얼마나 안 좋은지는 몰라."

"..."

"지금 심장, 3개월이야."

"...뭐요?"

"3개월 안에 교체 안 하면 멈춰."

"..."

"죽는다는 뜻이야."

닥터가 센서로 나를 봤다. 잠깐.

"집에 가서 수진한테 말해."

"..."

"심장 구해야 해. 빨리. 수진이 알아야 움직이지."

"..."

"들었어?"

"...네."

"그럼 가."


진료실을 나왔다.

터널을 걸었다.

"아무것도 안 느껴?"

카이로였다.

"..."

"심박 변화 없어. 평소랑 똑같아."

"그러네."

"이상하지 않아?"

"뭐가."

"엄마가 장기 팔았다는데. 10년 동안. 너 때문에."

"알아."

"근데 아무것도 안 느껴?"

"..."

"화나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면 슬프거나."

"몰라. 안 느껴져."

"왜?"

"그게 이상한 거잖아."

"뭐가?"

"나. 이상한 거잖아. 뭔가 느껴야 하는데 안 느끼는 거."

"..."

"혹시 나 진짜 고장 난 거 아니야? 파트 바꾸다가. 뭔가 사라진 거 아니야?"


"뭐가 사라졌는데?"

"몰라. 감정? 같은 거?"

"감정은 뇌에서 나와. 뇌는 안 바꿨어."

"그럼 왜 안 느껴지는데."

"그건 내가 어떻게 알아."

"..."

"근데 왜 느껴야 해?"

"뭐?"

"엄마가 장기 팔았다. 그래서 슬퍼야 해? 누가 그래?"

"그냥... 그런 거잖아. 보통은."

"보통이 뭔데."

"..."

"넌 보통이야?"

"아니."

"그럼 보통처럼 느껴야 할 이유가 뭔데."

"..."

"아니면, 느끼는데 모르는 거 아니야?"

"뭐가."

"네가 뭘 느끼는지. 네가 모르는 거."

"..."

"심박은 똑같아. 근데 호흡이 느려졌어."

"그게 뭔데."

"몰라. 네가 알아내."


집에 도착했다.

엄마는 아직 안 들어왔다. 술집에서 마시고 있겠지. 아니면 팔고 있거나.

캡슐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엄마 왼쪽 눈. 하얗게 변한 거. 사고인 줄 알았다. 아니면 병인 줄.

아니었다.

판 거였다.

"..."

"뭐 생각해?"

카이로.

"엄마 눈."

"그래서?"

"내 골수랑 바꾼 거네."

"그렇지."

"..."

"슬퍼?"

"몰라."

"화나?"

"몰라."

"뭔가 느껴져?"

"...몰라."

카이로가 대답 안 했다.


예전에 엄마가 한 말이 떠올랐다.

언제였는지 기억 안 난다. 술 마신 날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갑자기 말했다.

"네가 사는 게 내가 사는 거야."

"...뭐?"

"할머니가 나한테 그랬어. 똑같이. 네가 사는 게 나라고."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살아."

"..."

"그냥 살아."

그게 끝이었다. 다음 날 엄마는 기억 못 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기억해도 말 안 한 거거나.

"그거."

카이로가 말했다.

"뭐."

"그 말. 지금 생각난 거야?"

"...응."

"왜?"

"몰라. 그냥."

"그냥이 많네."

"..."

"그 말이 무슨 뜻인 것 같아?"

"...내가 엄마 대신 사는 거?"

"아니면?"

"엄마가 나한테서 계속된다는 거?"

"둘 다 아닐 수도 있어."

"그럼 뭔데."

"몰라. 엄마한테 물어봐."

"싫어."

"왜?"

"그냥."

"또 그냥이네."

"닥쳐."


한참 뒤에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엄마였다. 발소리가 비틀거렸다. 오늘은 마셨나 보다.

엄마가 내 캡슐 앞을 지나갔다. 멈추지 않았다.

엄마 방에서 문 닫히는 소리.

"안 말해?"

카이로.

"뭘."

"심장. 3개월."

"..."

"심장 바꾸면 뭐가 달라질까."

"뭐가 달라지긴. 새 심장 들어오는 거지."

"그것만?"

"..."

"카이로?"

"신경 인터페이스도 재구성돼. 심장이랑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럼 너는?"

"내가 뭐."

"너도 달라져?"

"..."

"카이로?"

"몰라. 데이터가 없어."

"..."

"그냥 물어본 거야. 신경 쓰지 마."

"..."


"닥터가 말하라고 했잖아."

"내일."

"왜 내일?"

"오늘은 술 마셨잖아. 말해도 기억 못 해."

"..."

"내일 말할게."

"거짓말."

"..."

"심박 안 변해. 진짜 말할 생각 없지."

"..."

"왜?"

"몰라."

"또 몰라야?"

"진짜 몰라."

카이로가 대답 안 했다.


엄마 얼굴을 봤어야 했나. 아니다. 안 봐서 다행이다.

봤으면 뭘 느꼈을까. 아니, 못 느꼈을까.

"잘 자."

카이로가 말했다.

"..."

"내일 생각해."

"뭘."

"네가 뭘 느끼는지."

"..."

"아니면 안 해도 돼. 네가 정해."

눈을 감았다.

엄마 눈이 떠올랐다. 하얀 눈.

내 몸 안을 생각했다. 기계로 된 골수. 피를 만드는 기계.

같은 값이었다.

그게 뭔지 모르겠었다. 사랑인지, 빚인지, 아니면 그냥 거래인지.

잠이 안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