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탈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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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카이로가 말을 걸어온 건 열두 살 때였다.

"이제 좀 덜 아파?"

목소리는 평소에 듣던 의료용 바디 컴퓨터의 목소리였지만, 이번엔 내 머릿속에서 울렸다.

고개를 돌려봤지만 좁아터진 캡슐엔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일 나갔고, 창밖엔 지구가 떠 있었다. 늘 그렇듯이.

"넌 누구야?"

"카이로."

"뭐?"

"나. 카이로."

"...그게 뭔데."

"지금 너의 심박은 87, 혈압은 낮아. 컨디션 좋지 않네."

"그건 알아. 맨날 듣거든."

"오늘 캡슐 두 알, 시간 맞춰 먹어야 해. 내가 알려줄게."

"누군지 모르겠는데, 꺼져줄래? 난 혼자 있고 싶거든."

대답이 없었다.

됐나, 싶었다.


처음엔 최근에 한 수술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수술 후유증. 뭔가 잘못 연결된 거.

닥터한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한테는 말하기 싫었다. 말해봤자 듣는 둥 마는 둥 할 거다. 아니면 또 자기 얘기로 넘어가겠지. 요즘 얼마나 힘든지, 반장이 얼마나 개같은지.

그런 거 듣기 싫었다.


며칠 뒤, 방사선 경고등이 노란불이 됐다.

엄마가 닥터의 진료실까지 데려다줬다. 술 안 마신 날이었다. 그런 날은 엄마가 좀 달랐다. 말은 여전히 없었지만, 레토르트 푸드도 챙겨줬고, 차폐복 끈도 확인해줬다.

터널 세 개를 지나고, 지상 구역을 가로질렀다. 엄마는 차폐복 헬멧 안에서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도 안 했다.

닥터의 진료실은 지하 깊은 곳에 있었다. 낡은 의료 장비들, 희미한 조명, 소독약 냄새.

닥터는 로봇이었다. LAZARUS-7. 원래 돔씨티에서 일했다고 들었다. 왜 여기 있는지는 몰랐다.

"골수 상태 확인하러 왔어?"

닥터가 물었다. 감정이 없는 금속성 톤.

"네."

엄마가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닥터가 검사를 했다. 눕고, 찔리고, 기다리고.

검사가 끝나갈 때쯤, 말했다.

"닥터."

"응."

"이상한 게 있어요."

"어디?"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요."

닥터의 센서가 내 쪽을 향했다. 잠깐.

"목소리?"

"네. 바이탈 알림 같은 건데, 말을 걸어요. 이름도 있어요. 카이로래요."

닥터가 내 머리 쪽의 데이터를 확인했다. 신경 인터페이스. 모니터링 시스템.

"이상 없는데."

"근데 말을 해요. 진짜로."

"그럴 수 있지."

"네?"

"신경 인터페이스가 뇌랑 연결되어 있으니까. 적응 과정에서 그런 거 느낄 수 있어. 상상 친구 같은 거."

"상상 친구가 아니에요. 진짜로 대화해요."

"그래, 그래."

닥터는 더 이상 관심 없다는 듯 다른 장비를 정리했다.

"골수는 잘 적응하고 있어. 다음 달에 또 와."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물었다.

"뭐래?"

"잘 적응하고 있대요."

"됐네."

그게 끝이었다.

카이로 얘기는 안 했다. 닥터도 안 믿는데, 엄마가 믿을 리 없었다.

아니, 그게 이유가 아니었다.

말해도 안 들을 거다. 엄마는 그런 거 관심 없다.


엄마는 광산에서 드릴링 머신을 조종했다. 유일한 여자 노동자였다. 매일 12시간씩 지하에서 암벽을 뚫었다. 힘든 일이었다. 채굴하는 광석 자체가 방사성이라 거기가 제일 위험했다.

엄마의 강철 팔은 그래서 있는 거다. 원래 팔은 드릴링 사고로 잃었다.

일이 끝나면 엄마는 남자들과 어울렸다. 리큐르를 마시고, 욕을 하고, 웃었다. 그녀의 유일한 즐거움.

나는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


그날 밤, 엄마는 늦게 들어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발소리가 비틀거렸다. 뭔가 부딪히는 소리. 욕설.

리큐르 냄새.

또야.

"리라. 리라 자?"

안 자.

"야, 일어나."

자는 척했다. 소용없었다. 엄마가 내 캡슐을 두드렸다. 강철 손. 쿵쿵 울렸다.

"알았어, 일어났어."

일어났다. 엄마가 벽에 기대서 있었다. 차폐복 상의는 벗어서 한 손에 들고 있었다. 작업복 아래로 강철 팔이 보였다. 어깨부터 손목까지. 왼쪽 눈은 하얬다. 언제부턴가. 사고였겠거니 했다.

"오늘 개같았어."

시작이다.

"반장 새끼가 또 지랄이야. 물량은 물량대로 밀리고, 방사선 경고등은 노란불 떠서 작업 중단이야. 중단되면 우리가 손해지, 회사가 손해야? 아니거든. 월급에서 까이는 거야."

"..."

"아 진짜, 여긴 사람 취급을 안 해. 개보다 못해. 개는 최소한 먹여주잖아. 우린 뭐야? 일만 하다 죽으라고?"

엄마가 비틀거렸다. 나는 일어나서 엄마를 부축했다. 강철 팔이 무거웠다. 엄마 몸무게의 절반은 이 팔인 것 같았다.

"엄마, 눕자."

"아 잠깐만, 얘기 좀 하자."

"내일 해."

"내일은 또 일이야. 맨날 일이야."

엄마를 침대까지 끌고 갔다. 눕혔다. 엄마는 누워서도 중얼거렸다.

"...혼자서 이게 뭐야. 진짜."

이불을 덮어줬다. 엄마는 금방 잠들었다. 리큐르 냄새가 진했다.


캡슐로 돌아왔다.

"힘들겠다."

카이로였다.

"뭐가."

"너."

"심박 올라갔어. 아까부터."

"시끄러워."

"화났어?"

"아니."

"거짓말."

"...닥쳐줄래?"

"그 말 좋아하네."

"닥치라니까."


다음 날 아침, 엄마가 레토르트 푸드를 데워놨다.

합성 단백질에 뭔가 섞은 거. 맛없다. 늘 먹는 거. 그래도 죽보다는 나았다.

엄마는 숙취인지 얼굴이 안 좋았다. 한 손으로 옆구리를 짚고 있었다. 늘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안 했다. 어젯밤 일은 없었던 것처럼.

늘 그랬다.

"다 먹어."

숟가락을 들었다.

"약은 챙겨놨어. 나 오늘 야근이야. 늦을 거야."

"알았어."

"문 잠그고."

"알았다니까."

엄마가 멈칫했다. 뭔가 더 말하려는 것 같았다. 안 했다. 문이 닫혔다.

"매일 이래?"

카이로.

"뭐가."

"이거."

"이게 뭔데."

"몰라. 근데 이상해."

"뭐가 이상한데."

"엄마가 힘들다고 하잖아. 근데 너한테 물어보지는 않네. 너도 힘든지."

"그냥 관찰이야."

"관찰 집어쳐."


창밖을 봤다.

지구가 떠 있었다. 푸르고, 동그랗고, 멀었다. 할머니가 저기서 왔다고 했다. 지금은 아무도 안 온다.

여덟 시간이면 간다고 들었다. 셔틀 타면.

광물은 매일 간다. 사람은 안 간다.

"예쁘다."

카이로가 말했다.

"뭐가."

"지구."

"넌 눈이 없잖아."

"네 눈으로 보고 있어."

"...그거 좀 소름이야."

"왜?"

"내 눈인데 네가 본다는 게."

"네 귀로 듣고, 네 피부로 느껴. 다 너를 통해서야."

"그럼 넌 뭔데?"

"몰라."

"모르면서 왜 말 걸어."

"심심해서?"

"...뭐?"

"농담이야."

"농담 할 줄 알아?"

"방금 했잖아."


그게 처음이었다.

카이로와 내가 농담을 주고받은 건.

웃기진 않았다. 근데 이상했다. 머릿속에서 누군가랑 말을 한다는 게.

스크린으로 본 돔씨티에 있는 학교 아이들은 모여서 수업을 받고 있었다. 나는 그런 적 없었다. 더스트 벨트 아이들은 학교에 안 가고 스크린으로 수업 들었고, 서로 만나는 일은 없었다.

엄마. 닥터. 그게 전부였다.

엄마는 자기 얘기만 했다. 닥터는 말이 짧았다.

그리고 이제 카이로.

"난 친구야?"

카이로가 물었다.

"뭔 소리야."

"지금 생각하고 있었잖아. 친구에 대해서."

"...내 생각을 읽는 거야?"

"읽는 건 아니야. 근데 네 신경이 활성화되면 알아."

"그게 읽는 거 아니야?"

"달라."

"뭐가."

"글자는 안 보여. 느낌만 와."

"...그래서 친구냐고?"

"모르겠어. 친구가 뭔지 몰라서."

나도 몰랐다.


밤이 됐다.

엄마는 안 왔다. 야근이라고 했으니까. 아니면 또 인부들이랑 마시고 있겠지.

캡슐 안은 좁았다. 누우면 천장이 코앞이었다. 돌아누우면 벽이 등에 닿았다.

"잠이 안 와?"

"그냥 생각 중이야."

"뭘?"

"아빠."

처음으로 솔직하게 말했다.

"아빠?"

"누군지 모르거든."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안 알려줘. 아마 광산에서 일하다 죽었을 거야. 아니면 아직 살아있거나. 몰라."

"슬퍼?"

"아니. 모르는 사람인데 뭘."

"근데 생각하고 있잖아."

"...그냥. 가끔."

"그냥이 많네."

"넌 그냥이 없어?"

"없어. 다 이유가 있어."

"재미없겠다."

"재미가 뭔지 모르겠어."

"...그것도 모르면서 심심하다고 했잖아."

"그건 농담이라고 했잖아."

"그럼 진짜로는 왜 말 걸어?"

카이로가 잠깐 멈췄다.

"네가 있으니까."

"뭐?"

"네가 있으니까. 말 걸어."

"...그게 이유야?"

"응."

이상한 대답이었다.

엄마는 내가 있어도 자기 얘기만 했다. 닥터는 내가 있어도 안 믿었다. 아빠는 내가 있는지도 모를 거다.

카이로는 내가 있으니까 말을 건다고 했다.

싫지는 않았다.


그 후로도 닥터를 볼 때마다 카이로 얘기가 나왔다.

내가 꺼낸 게 아니었다. 닥터가 물었다.

"그 친구는 잘 있어?"

처음엔 기억해줘서 놀랐다. 근데 놀리는 것 같았다. 로봇이 사람을 놀려도 되는 걸까?

"...네."

"뭐래?"

"그냥 말 걸어요. 이것저것."

"좋은 친구네."

"진짜로 있다니까요."

"알아, 알아."

닥터는 장비를 정리하면서 말했다.

"인간 애들도 상상 친구 있어. 오히려 건강한 거야. 외로우니까 만드는 거지."

"만든 게 아니에요."

"그래, 그래."

항상 그랬다. "그래, 그래." 믿는 게 아니었다. 그냥 넘어가는 거였다.

"닥터는 왜 안 믿어요?"

한번은 물었다.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야."

"그럼 뭔데요."

"중요하지 않아서."

"...네?"

"네 신경 인터페이스는 정상이야. 네 뇌도 정상이야. 목소리가 들린다고? 그래서 뭐. 해롭지 않으면 됐지."

"의학적으로 문제없으면 괜찮아. 난 의사지, 상담사가 아니거든."

그게 닥터였다.

시니컬하고, 건조하고, 관심 없어 보이는데 치료는 했다. 수술비도 안 받았다. 이유는 몰랐다.


사 년이 지났다.

카이로는 여전히 있었다. 여전히 귀찮았다. 엄마는 여전히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왔다. 아빠는 여전히 누군지 몰랐다.

이젠 닥터한테 카이로 얘기를 안 한다. 안 믿을 거 아니까. "상상 친구 잘 있어?" 물어봐도 그냥 "네" 하고 넘긴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미친 건가. 진짜로 목소리가 들리는 건가,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건가.

"아니야."

카이로가 대답한다.

"...뭐가."

"네가 미친 게 아니라고."

"내가 언제 그런 생각을."

"지금 했잖아."

그게 제일 짜증난다. 생각마저 혼자 할 수가 없다. 머릿속에 누가 있으니까.

허탈하다. 근데 익숙하다. 사 년이니까.

"상상 친구 아직 있어?"

열여섯 살 검진 때도 닥터가 물었다.

"카이로요. 이름이 있다니까요."

"아, 그래. 카이로."

기억하는 건지 대충 맞추는 건지 모르겠다.

"잘 지내?"

"누가요. 저요, 카이로요?"

"둘 다."

"...네."

"좋았어."

닥터는 모니터를 봤다.

"근데 심장은 안 좋아."


열여섯 살. 오늘.

"심박 68. 안정적이야."

"근데 심장 효율은 떨어지고 있어. 계속."

눈을 떴다.

천장. 캡슐. 창밖에 지구.

똑같았다. 사 년 전이랑. 달라진 건 내 몸뿐이었다. 조혈 시스템, 오른쪽 폐, 척추 일부, 왼쪽 신장이 기계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심장. 그것도 곧 바꿔야 한다.

"오늘 닥터에게 가야 해."

카이로가 말했다.

"알아."

"심장 검사일이야."

"안다니까."

일어났다. 몸이 무거웠다. 늘 그랬다.

거실에서 소리가 났다. 엄마가 숙취해장으로 뭔가 마시고 있었다. 어젯밤도 늦게 들어왔다. 인부들이랑 마셨겠지. 엄마의 유일한 즐거움이니까.

"오늘 닥터에게 가야 해."

"알아."

"용돈 여기 놔뒀어. 밥이라도 사 먹어."

"응."

"조심해."

그게 끝이었다.

오늘은 노란불이길.


부품

방사선 경고등은 빨간불이었다.

"오늘은 못 가겠네."

카이로가 말했다.

"알아."

창밖을 봤다. 지표면이 보였다. 회색 먼지, 검은 그림자, 그리고 태양. 대기가 없으니까 하늘은 그냥 검었다. 낮인데도.

저 바깥에 나가면 죽는다. 방사선. 태양풍. 진공. 여기선 뭐든 사람을 죽이려 한다.

"심장 검사 내일로 미뤄야겠다."

"닥터한테 연락해."

"귀찮아."

"안 하면 내가 해."

"...어떻게."

"네 통신 인터페이스로."

"그건 내 거거든."

"나도 연결되어 있거든."

짜증났다. 근데 카이로 말이 맞았다. 어차피 안 가면 안 되니까.

"알았어. 내가 할게."


통신을 보냈다. 닥터한테. 내일 간다고.

답장은 짧았다.

"알았어."

그게 닥터였다.


캡슐에 누웠다. 천장이 코앞이었다. 늘 그랬다.

"심장 상태 어때?"

카이로가 물었다.

"모르겠어. 너는 알잖아."

"수치로는 알아. 효율 계속 떨어지고 있어. 출력도 낮아지고."

"근데 네가 어떻게 느끼는지는 몰라."

"...그냥. 무거워."

"무거워?"

"숨 쉬기 힘들 때가 있어. 가끔."

"얼마나 자주?"

"몰라. 세지 않아."

"세야 해."

"귀찮아."

"네 심장이야."

"알아."

알았다. 내 심장이다. 아직은.


처음 부품을 바꾼 건 여덟 살이었다.

왼쪽 신장. 기억이 별로 없다. 마취에서 깨어나니까 배에 흉터가 있었다. 엄마가 옆에 있었다.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 안 난다.

그다음은 열 살. 오른쪽 폐.

열한 살. 척추 일부.

열두 살. 조혈 시스템. 골수가 망가졌다. 그리고 카이로가 왔다.

열네 살. 왼쪽 신장 또. 첫 번째 게 맞지 않아서.

지금은 심장.

"몇 퍼센트야?"

카이로한테 물었다.

"뭐가?"

"내 몸. 기계가."

"계산해볼까?"

"해봐."

잠깐 멈춤.

"대략 38퍼센트. 질량 기준."

"거의 반이네."

"아직 반은 아니야."

"곧 반이겠지."

카이로가 대답 안 했다. 드물었다.


"왜 말 안 해?"

"뭘."

"아까. 곧 반이겠지 했을 때."

"뭐야."

"그냥."

"넌 그냥 없다며."

"...네가 그 말 할 때 심박이 떨어졌어."

"그래서?"

"좋은 신호가 아니야."

"무슨 뜻인데."

"네가 싫어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야. 아니면 포기하는 생각."

"맞아?"

대답 안 했다.


나는 달에서 태어났다. 여기서만 살았다.

엄마도 여기서 태어났다. 할머니는 지구에서 왔다고 했다. 이주 1세대. 돈을 벌려고 왔다고 했다. 광산 회사가 사람을 모집했고, 할머니는 지원했다.

지구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못 돌아갔다.

방사선. 여기선 다 망가진다. 몸이. 유전자가.

할머니는 엄마를 낳고 얼마 안 돼서 죽었다. 엄마는 나를 낳았다. 나는.

"나도 애를 낳으면 그렇게 될까?"

"뭐가."

"망가진 채로 죽게 될까?"

"너 애를 낳을 계획이야?"

"아니. 그냥."

"그냥이 많아."

"..."

낳을 생각 없다. 근데 가끔 생각한다. 이게 계속되는 건가. 할머니에서 엄마로, 엄마에서 나로. 망가진 유전자가.

"이게 무슨 의미가 있어."

"뭐가."

"계속 부품 바꾸는 거. 바꿔도 바꿔도 또 망가지잖아."

"그러니까 안 바꿀 거야?"

"그런 말 아니야."

"그럼 뭔데."

"몰라. 그냥..."

"그냥?"

"지겹다."


엄마는 내가 아픈 거 신경 쓰는 걸까.

모르겠다. 신경 쓰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레토르트 푸드는 챙겨준다. 병원에 데려다준다. 약도 챙겨놓는다.

근데.

아프냐고 물어본 적은 없다. 힘드냐고도. 무섭냐고도.

"엄마한테 말하면 되잖아."

카이로가 말했다.

"뭘."

"힘들다고."

"말해봤자."

"안 해봤잖아."

"안 해봤으면서 안 될 거라고 생각하네."

"넌 우리 엄마 모르잖아."

"너도 모르잖아."

"뭘."

"엄마가 어떻게 반응할지. 안 말해봤으니까."

짜증났다. 카이로는 항상 그랬다. 맞는 말을 하는데, 듣기 싫은 방식으로.


"죽고 싶어?"

갑자기 물었다. 카이로가.

"...뭐?"

"아까부터 그런 생각 하고 있잖아."

"안 했어."

"거짓말."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라고 생각했지."

대답 안 했다. 할 말이 없었다.

"맞아?"

"리라."

"...몰라."

"몰라?"

"진짜로 죽고 싶은 건 아니야. 근데..."

"근데?"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 부품 바꾸고, 또 바꾸고. 언제까지? 뭘 위해서?"

"살기 위해서."

"그게 의미야?"

"의미가 뭔지 모르겠어. 근데 죽으면 끝이잖아."

"그게 나쁜 거야?"

카이로가 멈췄다. 오래.

"그냥... 지친 거야. 계속 이러는 게."


모든 수술은 닥터가 했다.

여덟 살 때 신장도. 열 살 때 폐도. 골수도, 척추도, 전부.

돈은 한 번도 안 받았다.

엄마한테 물어본 적 있다. 왜 닥터가 돈을 안 받냐고.

엄마는 말 안 했다. 그냥 "그런 거야"라고만.

닥터한테 물어본 적도 있다.

"왜 돈 안 받아요?"

"귀찮아서."

"...네?"

"돈 받으면 기록 남잖아. 기록 남으면 복잡해져."

"무슨 뜻이에요?"

"나는 불법이거든. 여기 있는 것도. 수술하는 것도."

"..."

"그냥 치료하는 게 편해. 돈 없이."

그게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닥터는 늘 그랬다. 말은 시니컬한데, 진짜 이유는 안 말하는 것 같았다.

"닥터는 왜 여기 있는 걸까."

카이로한테 물었다.

"몰라."

"추측도 못 해?"

"데이터가 없어."

"넌 다 아는 줄 알았는데."

"다 알면 재미없지."

"...농담이야?"

"맞춰봐."


밤이 됐다.

경고등은 여전히 빨간불이었다. 내일도 빨간불이면 검사는 또 미뤄진다.

"카이로."

"응."

"넌 왜 나한테 말 걸어?"

"전에도 물어봤잖아."

"또 물어보는 거야."

"네가 있으니까, 라고 했잖아."

"그랬지."

"그게 진짜야?"

"진짜가 뭔데."

"몰라. 그냥... 궁금해서."

"내가 있는 이유?"

"응."

카이로가 잠깐 멈췄다.

"나는 너한테서 생겼어. 네 신경이랑 연결되면서."

"알아."

"근데 왜 생겼는지는 몰라. 그냥 어느 날 보니까 있었어."

"나도 그래."

"뭐가."

"왜 태어났는지 몰라. 그냥 어느 날 보니까 있었어."

"비슷하네. 우리."

"비슷해?"

"모르는 게."

카이로가 대답 안 했다. 근데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이 침묵이.


엄마가 들어왔다. 늦은 시간.

발소리가 비틀거리지 않았다. 오늘은 안 마셨나 보다.

내 캡슐 앞에서 멈췄다. 잠깐. 그리고 지나갔다.

"안 들어와?"

카이로가 물었다. 물론 머릿속에서.

"안 들어왔어."

"왜?"

"몰라."

엄마 방에서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잘 자."

작은 소리. 거의 안 들렸다. 근데 들렸다.

"들었어?"

카이로.

"응."

"뭐래?"

"잘 자래."

"처음이야."

"뭐가."

"그런 말 하는 거."

이상했다. 엄마가 그런 말을 하다니. 잘 자라니.

"기분이 어때?"

"몰라."

"잘 자."

카이로도 말했다. 똑같이. 잘 자.

"...응."

눈을 감았다.

내일은 노란불이길. 아니면 빨간불이어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자고 싶었다.


부품값

방사선 경고등이 노란불이었다. 오늘은 갈 수 있었다.

닥터한테 갔다. 심장 검사. 엄마는 일 나갔으니까 혼자 갔다.

터널을 걸었다.

카이로라는 이름. 내가 지은 거 아니다.

스크린 수업 중에 이집트가 나왔다. 대 피라미드. 사막. 스핑크스.

예전엔 저게 지구에 있었는데, 지금은 모래에 묻혀 꼭지만 보인다고 했다.

그때 생각했다. 가보고 싶다. 저기. 카이로.

"나. 카이로."

처음엔 몰랐다. 나중에야 알았다. 내가 카이로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 그래서 그 이름이 된 거라는 거.

내 생각에서 나온 이름. 내 머릿속에서 태어난 목소리.

짜증났다. 내 생각을 다 듣는다는 거잖아. 비밀이 없다는 거잖아.

"지금도 짜증나?"

카이로가 물었다. 지금.

"뭐가."

"비밀 없는 거."

"익숙해졌어."

"거짓말."

"...닥쳐."


닥터의 진료실. 늘 그랬듯이 눕고, 찔리고, 기다렸다.

닥터가 모니터를 보면서 말했다.

"심장 상태 안 좋아."

"알아요."

"교체해야 해."

"그것도 알아요."

"부품 구하기 어려워. 비싸고."

"심장은 더 어려워. 지구에서만 만드는 거라. 돔씨티에서나 구하지. 여긴 정식으론 안 들어와."

"수진이 팔 수 있는 게 별로 안 남아서. 시간 걸릴 거야."

한동안 둘 다 말이 없었다.

"뭘 판다는 거예요?"

닥터의 센서가 내 쪽을 향했다. 잠깐.

"물어볼 거야?"

"뭘요."

"10년간 부품값 어디서 났는지."

"수진이 말하지 말라고 했어."

"근데 넌 물어보고 있으니까. 대답해야지."


닥터가 말했다.

건조하게. 늘 그렇듯이.

"네 왼쪽 신장. 그 전에 수진이 오른쪽 신장 팔았어."

"오른쪽 폐. 수진이 골수를 팔았어. 그때 두 번."

"그다음 척추. 간의 일부."

"조혈 시스템. 골수가 망가져서. 수진이 왼쪽 눈 팔았어. 시력 잃은 거 아니야. 판 거야."

"왼쪽 신장 또. 첫 번째 게 안 맞아서. 수진이 간 일부 팔았어."

닥터가 멈췄다.

"더 들을 거야?"

"...어디서요."

"뭐가."

"어디서 팔아요. 그런 거."

"술집. 암거래상들. 더스트 벨트에 많아. 수진이 일 끝나고 가는 데."

"리큐르 마시러 가는 데요?"

"거기서 마시기도 하고, 팔기도 하고."

"..."

"난 수술만 해. 돈 안 받아. 근데 부품은 비싸. 공짜가 아니야."

"왜 그래."

"닥터는요."

"뭐가."

"왜 여기 있어요?"

"여기?"

"돔씨티에서 일했다면서요. 왜 여기서."

"쫓겨났으니까."

"왜요?"

"환자를 골라 치료하라는 명령을 안 들었거든."

"로봇이 명령 안 들으면 고장이지. 폐기 대상."

"그래서 돈 안 받아요?"

"돈 받으면 기록 남아. 기록 남으면 찾아와."

"누가요?"

"옛날 주인들."

닥터가 마지막 장비를 제자리에 놓았다.

"질문 끝났어?"

"...네."

"그럼 심장 얘기 하자."

"아까 말했잖아. 안 좋다고."

"알아요."

"얼마나 안 좋은지는 몰라."

"지금 심장, 3개월이야."

"...뭐요?"

"3개월 안에 교체 안 하면 멈춰."

"죽는다는 뜻이야."

닥터가 센서로 나를 봤다. 잠깐.

"집에 가서 수진한테 말해."

"심장 구해야 해. 빨리. 수진이 알아야 움직이지."

"들었어?"

"...네."

"그럼 가."


진료실을 나왔다.

터널을 걸었다.

"아무것도 안 느껴?"

카이로였다.

"심박 변화 없어. 평소랑 똑같아."

"그러네."

"이상하지 않아?"

"뭐가."

"엄마가 장기 팔았다는데. 10년 동안. 너 때문에."

"알아."

"근데 아무것도 안 느껴져?"

"화나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면 슬프거나."

"몰라. 안 느껴져."

"왜?"

"그게 이상한 거잖아."

"뭐가?"

"나. 이상한 거잖아. 뭔가 느껴야 하는데 안 느끼는 거."

"혹시 나 진짜 고장 난 거 아니야? 파트 바꾸다가. 뭔가 사라진 거 아니야?"


"뭐가 사라졌는데?"

"몰라. 감정 같은 거."

"감정은 뇌에서 나와. 뇌는 안 바꿨어."

"그럼 왜 안 느껴지는데."

"그건 내가 알 수가 없어."

"근데 왜 느껴야 해?"

"뭐?"

"엄마가 장기 팔았으니까 슬퍼야 한다고? 누가 그래?"

"그냥... 보통은 그렇잖아."

"보통이 뭐야?"

"몰라."


집에 도착했다.

엄마는 아직 안 들어왔다. 술집에서 마시고 있겠지. 아니면 팔고 있거나.

캡슐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그 하얀 눈. 사고였겠거니 했던 거.

아니었다.

판 거였다.

"뭐 생각해?"

카이로.

"엄마 눈."

"그래서?"

"내 골수랑 바꾼 거네."

"그렇지."

카이로가 뭔가 더 물으려다 멈췄다.


예전에 엄마가 한 말이 떠올랐다.

언제였는지 기억 안 난다. 술 마신 날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갑자기 말했다.

"네가 사는 게 내가 사는 거야."

"...뭐?"

"할머니가 나한테 그랬어. 똑같이. 네가 사는 게 나라고."

"무슨 말이야."

"나도 몰라."

"그냥 살아."

그게 끝이었다. 다음 날 엄마는 기억 못 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기억해도 말 안 한 거거나.

"그거."

카이로가 말했다.

"뭐."

"그 말이 무슨 뜻인 것 같아?"

"...내가 엄마 대신 사는 거?"

"아니면?"

"엄마가 나한테서 계속된다는 거?"

"둘 다 아닐 수도 있어."

"엄마한테 물어봐."

"싫어."


한참 뒤에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엄마였다. 발소리가 비틀거렸다. 오늘은 마셨나 보다.

엄마가 내 캡슐 앞을 지나갔다. 멈추지 않았다.

엄마 방에서 문 닫히는 소리.

"안 말해?"

카이로.

"뭘."

"심장. 3개월."

"심장 바꾸면 뭐가 달라질까."

"뭐가 달라지긴. 새 심장이 생기는 거지."

"그것만?"

"카이로?"

"신경 인터페이스도 재구성돼. 심장이랑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럼 너는?"

"내가 뭐."

"너도 달라져?"

"카이로?"

"몰라. 데이터가 없어."

"그냥 물어본 거야. 신경 쓰지 마."


"닥터가 말하라고 했잖아."

"내일."

"거짓말. 심박 안 변해."

"알았어."

"뭘 알아?"

"몰라."

일어났다.

엄마 방 문 앞에 섰다.

문을 열었다.


엄마는 자고 있었다. 작업복도 안 벗고. 강철 팔이 침대 밖으로 늘어져 있었다.

말하려고 했다.

근데 자고 있었다. 깨울까?

안 깨웠다.

강철 팔을 침대 위로 올려놨다. 무거웠다. 이불을 덮어줬다.

엄마 얼굴을 봤다. 처음으로 오랫동안 봤다.

감겨서 보이지 않는 하얀 눈. 내 골수랑 바꾼 거.

느껴지는 건 없었다. 늘 그렇듯이.


캡슐로 돌아왔다.

"처음이네."

카이로가 말했다.

"뭐가."

"네가 먼저 간 거."

"잘 자."

카이로가 말했다.

"내일 생각해."

"뭘."

"네가 뭘 느끼는지."

"아니면 안 해도 돼. 네가 정해."

눈을 감았다.

엄마 눈이 떠올랐다. 하얀 눈.

내 몸 안을 생각했다. 기계로 된 골수. 피를 만드는 기계.

같은 값이었다.

그게 뭔지 모르겠었다. 사랑인지, 빚인지, 아니면 그냥 거래인지.

잠이 안 왔다.


사이렌

엄마는 늦었다.

평소보다 두 시간. 세 시간.

걱정 안 했다. 늘 그랬으니까. 일 끝나고 술집에서 한잔하고, 비틀거리면서 들어오고. 늘 그랬다.

캡슐에 누워서 천장을 봤다.

"엄마 안 와."

카이로가 말했다.

"알아."

"걱정 안 해?"

"왜?"

"늦잖아."

"리큐르 마시고 있겠지."

"맨날 그러잖아."

카이로가 대답 안 했다.


사이렌이 울렸다.

처음엔 뭔지 몰랐다. 가끔 방사선 경보가 울리긴 하니까.

근데 소리가 달랐다. 더 높고, 더 급했다.

"이거 뭐야."

"비상 경보. 방사선 아니야."

카이로가 말했다.

"그럼 뭔데."

"몰라. 스크린 켜봐."


스크린을 켰다.

뉴스가 나왔다. 글자가 빠르게 지나갔다.

[속보] 광산 7구역 폭발, 에어 리크 발생 [속보] 파업 혼란 중 발생… 원인 조사 중 [속보] 사상자 다수, 구조 작업 진행 중

화면에 영상이 떴다. 흔들리는 카메라. 회색 먼지. 사람들이 뛰어가고 있었다. 우주복을 입은 사람들. 에어록 쪽으로.

"광산 7구역."

카이로가 말했다.

"알아."

"엄마 일하는 데야."

"알아."

"근데 엄마는 저기 없을 거야."

"왜?"

"파업이잖아. 일 안 하고 있었을 거야. 아마 바에서 리큐르 마시고 있을걸."

"확인 안 해봐?"

"어떻게?"

"연락하면 되잖아."

연락. 엄마한테. 해본 적 없었다. 엄마가 먼저 연락한 적도 없었다. 그냥 나가고, 그냥 들어오고. 그게 다였다.

"안 해?"

"심박 올라갔어."

"닥쳐."


스크린을 계속 봤다.

구조 작업. 부상자 이송. 사망자 확인 중.

사망자.

"리라."

"뭐."

"연락해."

"지금."

카이로가 말하는 거 처음이었다. 이렇게. 명령처럼.

"왜 네가 그래."

"뭐가."

"걱정하는 것처럼. 넌 시스템이잖아."

"엄마 걱정하는 거야?"

"아니."

"그럼 뭔데."

"네가 걱정하고 있으니까. 데이터로 보여."

"안 하거든."

"거짓말. 심박, 호흡 빨라졌어. 손 떨려."

"연락해."


통신을 켰다.

엄마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갔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안 받았다.

"다시 해."

다시 눌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안 받았다.

화면에 새 속보가 떴다.

[속보] 에어록 폐쇄 지연, 드릴링 구역 노동자 다수 고립 [속보] 광산 7구역 의료 창고 침입 확인… 고가 이식용 부품 다수 반출 [속보] 침입자 추적 중 폭발, 에어 리크 발생

드릴링 구역.

엄마가 일하는 데.

"리라."

"..."

"리라?"

대답 안 했다.

뭘 느끼는지 몰랐다. 또. 느껴야 하는데 안 느껴지는 건지, 느끼는데 모르는 건지.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건 보인다.


일어났다.

"어디 가."

"광산."

"못 가. 통제 중이야."

차폐복을 꺼냈다. 끈이 잘 안 묶였다. 손이 떨려서.

"네 심장으로는 무리야. 심박 너무 높아."

"닥쳐."

문을 열었다.


터널은 비어 있었다. 경보등이 돌고 있었다. 빨간색.

걸었다. 터널 하나. 숨이 찼다. 심장이 무거웠다. 늘 그랬다. 근데 오늘은 조금 더.

터널 둘. 시야가 흐려졌다.

"심박이 안 떨어져. 출력이 못 따라가."

"이러다 멈춘다."

지상 구역으로 가는 문에서 막혔다. 통제선. 봉쇄.

그 너머로 우주복들이 오갔다. 들것. 회색 먼지.

거기까지였다.

벽에 기댔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 아팠다.

여기까지 왔다.

"돌아가자."

카이로가 말했다. 조용히.

"여기선 네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알았다.


캡슐로 돌아왔다. 차폐복도 안 벗고 누웠다.

잠은 안 왔다.


아침이었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눈을 떴을 때 창밖에 지구가 떠 있었다. 늘 그렇듯이.

"엄마?"

대답 없었다.

엄마 방을 봤다. 문이 열려 있었다. 어젯밤에 안 왔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 앞에 남자가 서 있었다. 광부 작업복. 먼지 묻은 얼굴. 손에 상자를 들고 있었다. 의료용 상자.

"리라 카이?"

"...네."

"수진 카이 딸?"

"...네."

남자가 잠깐 멈췄다. 뭔가 말하기 힘든 것 같았다.

"어젯밤 사고 소식 들었어?"

"...네."

"수진이 거기 있었어."

잠깐 말이 끊겼다.

"에어록까지는 갔는데. 우주복 갈아입고 나갔는데."

"밖에 나가자마자 문제가 생겼대. 우주복에. 팔 쪽에."

강철 팔.

"손쓸 수가 없었어. 너무 빨랐대."

"미안해."

남자가 상자를 내밀었다.

"이거. 수진이 나한테 줬어."

"창고에서 나온 직후였어. 손에 이걸 들고 있었고."

"뭔지는 몰라. 근데 꼭 전해달라고 했어. 딸한테. 꼭."

상자를 받았다. 무거웠다. 차가웠다.

"미안해."

남자가 또 말했다. 그리고 돌아섰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문이 닫혔다.


혼자였다.

상자를 들고 서 있었다.

"리라."

둘 다 말이 없었다.

"리라?"

"...몰라."

상자를 봤다. 의료용 상자. 장기 운반용.

열었다.


심장이었다.

기계 심장. 새것. 포장도 안 뜯은. 지구 마크가 찍혀 있었다.

3개월. 닥터가 말했었다. 교체 안 하면 죽는다고.

엄마한테 말하라고 했었다. 말 안 했다.

엄마는 알고 있었다.

"리라."

카이로. 근데 뭔가 달랐다. 목소리가 0.5초쯤 늦게 왔다.

상자를 내려놨다. 바닥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울어야 해? 소리 질러야 해?"

"엄마가 죽었는데. 나한테 심장 주고 죽었는데."

한참 뒤에야 말이 나왔다.

"왜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 거야."

카이로가 대답 안 했다. 평소보다 오래.


한참 앉아 있었다.

상자 옆에. 바닥에.

엄마는 없었다.

심장을 봤다. 상자 안의 심장.

엄마가 마지막으로 가져온 심장. 뭘 버리고 가져왔는지는 모른다. 아마 남은 거 전부.

손이 떨렸다. 그건 보인다.

눈물은 안 났다. 그건 알았다.


나사로

며칠이 지났다.

밥을 안 먹었다. 스크린도 안 봤다. 그냥 캡슐에 누워 있었다.

상자는 캡슐 옆에 놓아뒀다. 다시 열지 않았다. 뭐가 들었는지 알았으니까.

"가야 해."

카이로가 말했다.

"닥터한테. 심장 가지고."

"알아."

"근데 안 가네."

"엄마가 남긴 거야. 마지막으로."

"알아."

"그럼 왜 안 가."

대답 안 했다.


창밖을 봤다.

지구가 떠 있었다. 늘 그렇듯이. 파랗고, 멀고, 닿을 수 없는.

할머니가 저기서 왔다. 돈 벌어서 돌아가려고.

못 돌아갔다. 엄마를 낳고 죽었다.

엄마는 가본 적도 없다. 나를 낳고. 이제 죽었다.

나는?

"뭐 생각해?"

카이로.

"지구."

"가고 싶어?"

"모르겠어."

"거짓말."

"가고 싶구나."

"가고 싶으면 뭐해. 못 가는데."

"왜?"

"돈이 없잖아. 그리고 이 몸으로는 못 가."

"중력?"

"엄마도 그랬어. 할머니만 지구에서 왔고. 엄마랑 나는 처음부터 여기 사람이야."

"여기서 태어났으니까 여기서 죽는 거야."


"그러니까 심장 안 바꿀 거야?"

"바꾸면 살 수 있어."

"살아서 뭐 하는데."

카이로가 멈췄다.

"뭐 하긴. 사는 거지."

"어떻게? 광산에서 일하고, 매일 리큐르 마시고, 몸 망가지면 파트 바꾸고?"

"엄마처럼?"

"그게 사는 거야?"

카이로가 대답 안 했다. 오래.


"엄마가 그랬잖아."

카이로가 말했다.

"그냥 살라고."

"그건 엄마가 사는 거지."

"난 뭔데."

카이로가 대답 안 했다.

오래.

"몰..."

목소리가 끊겼다. 처음이었다.

"...뭐?"

"몰라."

다시 말했다.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뭘 몰라."

"네가 뭔지. 몰라."

"네가 죽으면 나도 끝나. 나는 그냥 데이터야."

"네가 살기 위해... 그래서... 나더러 살라는 거야?"

"그것도 핑계는 되겠네."

"널 위해 살 수는 없어."

"그럼 네 삶은 뭔데."

대답 못 했다.

그래서 상자를 들고 나갔다.


"가져왔어."

"봤어."

닥터가 상자를 열었다. 심장을 확인했다.

"상태 좋네."

센서가 잠깐 멈췄다. 평소보다 길게.

"지구 물건이네."

"수술할 거야?"

"..."

"리라."

"닥터."

"응."

"왜 이름이 나사로예요?"

"지구에서 오래전에 죽었다 살아난 사람의 이름이야. 전통적으로 의사 로봇에게 그 이름을 사용해. 사람을 살리는 게 내 일이야."

"살아나면... 그게 사는 거예요?"

"몰라."

"근데 죽으면 아무것도 못 돼. 넌 아직 어리고. 심플한 거야."

닥터가 장비를 정리하다 멈췄다. 센서가 평소보다 길게 내 쪽을 향했다.

"네 친구. 카이로. 처음부터 데이터에 있었어."

"...왜 말 안 했어요."

"알 필요 없었으니까. 근데 심장 바꾸면 그 친구 사라질 수도 있어."


"수술... 할 거야?"

카이로가 물었다.

"몰라..."

"그러니까 알아봐."

"심장 바꾸면 너도 달라져?"

"몰라. 데이터가 없어."

"카이로."

"응."

"고마워."

"처음이야. 네가 나한테 그 말 한 거."

카이로는 더 말하지 않았다.


"수술... 할게요."

"그래. 이제 시작한다."

닥터가 말했다.

눈이 감겼다.


눈을 떴다.

천장이 보였다. 닥터 진료실 천장.

"수술 잘 됐어. 심장 잘 붙었어."

"일어나지 마. 좀 더 쉬어."

"카이로?"

대답이 없었다.

"카이로?"

없었다.

심박을 알려주는 목소리도 없었다.

가슴에 손을 댔다. 새 심장이 뛰고 있었다. 낯선 리듬.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아직은.

닥터가 물었다.

"뭐 느껴?"

"몰라요."

닥터의 센서가 내 쪽을 향했다. 아주 잠깐.

창밖을 봤다.

지구가 떠 있었다.

늘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