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세우스의 배

T-오가넬[테세우스의배]
새벽 두 시, 실험실에서 두 남자가 영생을 두고 싸운다. 한 사람은 만들었고, 한 사람은 팔려 한다.
세포의 발전소를 대신하는 인공 소기관 T-오가넬. 치료제로 설계된 이 기술이 뜻하지 않게 노화를 되돌리는 가능성을 보여주자, 과학자 현철과 사업가 윌리엄은 같은 데이터 앞에서 전혀 다른 미래를 그린다.
뇌를 보존하고, 몸을 교체하고, 신경을 재배선하면 —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있는가. 그렇게 살아남은 존재는 여전히 '나'인가. 기억이 나를 만드는가, 몸이 나를 만드는가, 아니면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를 만드는가.
2,500년 전 플루타르코스가 던진 질문이 새벽, 14번 쥐의 데이터 앞에서 다시 시작된다.
연구동 7층, 현철의 개인 실험실. 새벽 두 시.
모니터 위로 T-오가넬의 전자현미경 이미지가 떠 있었다. 이중막 안쪽에 촘촘히 박힌 단백질 격자. 3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구조물이 지금 살아 있는 쥐의 신경세포 안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문이 열렸다.
"또 여기야?"
윌리엄이 커피 두 잔을 들고 들어왔다. 넥타이를 풀고 셔츠 소매를 걷은 모습. 아마 이사회가 늦게 끝난 것이다.
"고마워."
현철이 커피를 받았다. 윌리엄이 옆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14번 쥐?"
"응. 투여 후 72일째. 해마 신경세포의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87퍼센트 회복됐어."
"87퍼센트." 윌리엄이 휘파람을 불었다. "MELAS 쥐 모델에서 그 정도면 사실상 완치 아냐?"
"쥐 모델에서는."
"인간도 같은 세포 기전이잖아."
"같은 기전이지. 하지만 인간은 뇌 크기가 쥐의 3천 배야. 쥐 뇌에 T-오가넬 몇백 개 넣는 것과 인간 뇌에 수십억 개를 균일하게 분포시키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야."
현철이 모니터 옆의 화이트보드를 가리켰다. 수식과 도표가 빼곡했다.
"뇌로 가는 혈관에는 보호막이 있어서, 투여한 T-오가넬 중에 뇌까지 도달하는 게 0.3퍼센트밖에 안 돼. 혈관에 미세 기포를 넣고 집속 초음파로 진동시켜서 보호막을 잠깐 열어도 0.3퍼센트. 쥐한테는 충분한 양이 들어가는데, 인간 뇌 전체를 커버하려면 투여량을 수천 배로 늘려야 해. 그러면 혈액 속에 T-오가넬이 너무 많아지면서 간이나 신장 같은 다른 장기에 엉뚱하게 쌓이고—"
"잠깐." 윌리엄이 손을 들었다. "넌 지금 MELAS 치료 이야기를 하고 있어?"
"당연히."
"나는 다른 이야기를 하러 왔어."
현철이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윌리엄의 눈빛을 알았다.
"텔로미어?"
"텔로미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14번 쥐 데이터 다시 봐." 윌리엄이 말했다. "네가 안 보여준 부분."
"뭘."
"신경세포의 텔로미어 길이. 투여 전보다 길어졌잖아. 네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T-오가넬이 에너지 확보한 다음에 텔로미어를 수선하고 있어. 네 보고서에는 빠져 있던데."
현철이 입술을 깨물었다. 윌리엄이 그걸 알아챘다는 게 불편했다.
"부수 효과야. 텔로미어를 수선하는 기능을 완전히 분리하지 못한 거야. 다음 버전에서 제거할 거야."
"제거한다고?" 윌리엄이 의자를 앞으로 끌었다. "현철. 그게 왜 부수 효과야? 그게 핵심이지."
"핵심이 아니야. MELAS 치료에 텔로미어 재생은 필요 없어."
"MELAS 치료에는. 하지만 세상에는 MELAS보다 보편적인 질병이 있잖아."
"무슨?"
"노화."
현철이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이 대화가 언젠가 올 줄은 알았다.
"윌리엄, 노화는 질병이 아니야."
"미국 식약처가 노화를 치료 대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걸 검토하기 시작했어. 노화 방지 약물 임상시험이 이미 진행 중이고. 규제 환경은 바뀌고 있어."
"규제가 아니라 생물학을 이야기하는 거야." 현철이 화이트보드로 걸어갔다. 마커를 집어 들었다.
"T-오가넬이 뭘 하는지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줄게."
"알고 있—"
"아니, 네가 보고 싶은 부분만 알고 있어."
현철이 세포 하나를 그렸다. 내부에 미토콘드리아와 T-오가넬을 나란히 그렸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안의 발전소야. 산소를 태워서 에너지를 만들어. 20억 년 진화가 만든 시스템이야." 현철이 미토콘드리아 옆에 화살표를 그었다. "T-오가넬은 이 발전소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보조하는 거야. 20억 년 전에 박테리아가 세포 안에 들어와서 미토콘드리아가 됐잖아. 그걸 인공적으로 재현한 거야. 세포 안에 새로운 세입자를 넣는 거지."
"그건 알아."
"근데 이 세입자는 원래 발전소처럼 산소를 태울 수 없어. 대신 다른 걸 연료로 쓰도록 설계했어." 현철이 신경세포의 막 위에 파동을 그렸다. "신경세포가 신호를 보낼 때, 세포막 안팎으로 이온이 이동하면서 전기가 흘러. 그게 활동 전위야. T-오가넬은 이 전기 신호가 지나갈 때 에너지 일부를 가로채서 자기 것으로 바꿔. 고속도로 옆에 소형 풍력발전기를 세워서 차가 지나갈 때 생기는 바람으로 전기를 만드는 것과 비슷해."
"최소한의." 윌리엄이 반복했다.
"그래, 최소한의." 현철이 강조했다. "세포가 살아있으려면 ATP라는 에너지 화폐가 필요해. 숨 쉬고, 구조를 유지하고, 단백질을 만들고 — 세포가 하는 모든 일에 ATP가 들어. MELAS 환자는 발전소가 고장 나서 이 ATP를 못 만들어. 그래서 신경세포가 죽어가는 거야." 현철이 T-오가넬에서 ATP로 향하는 화살표를 그렸다. "T-오가넬이 하는 일은 이거야. 전기 신호를 가로채서 ATP로 바꿔주는 거야. 고장 난 발전소 대신 비상 발전기를 돌리는 거지. 근데 그 비상 발전기의 출력이 아주 작아. 정상적인 발전소가 만드는 에너지의 수십 분의 일이야. 세포가 죽지 않게 겨우 버티게 하는 정도야."
"근데 텔로미어 수선까지 하잖아."
"그게 문제라고." 현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에너지가 부족한데 텔로미어까지 수선하려고 하니까 뭐가 일어나는지 알아? 에너지가 모자라. 그러면 T-오가넬이 주인한테 더 많은 자극을 요구해. 몸이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움직이게 만들어서 전기 신호를 늘려. 그래도 모자라면 뇌의 화학물질을 직접 건드려서—"
"그건 레시피 1.0 문제잖아. 네가 해결하면 되는 거고."
"해결?" 현철이 마커를 내려놓았다. "이건 버그가 아니야, 윌리엄. 자연법칙이야. 에너지는 어딘가에서 빼와야 해. 그리고 T-오가넬이 빼올 수 있는 건 숙주의 신경계뿐이야. 신경세포가 신호를 보내려면 에너지가 필요한데, T-오가넬이 그 에너지를 가로채면 정작 신경세포 자체가 제대로 작동을 못 해. 더 많이 가로챌수록 주인의 뇌가 망가져. 살리려고 넣은 게 죽이는 거야."
현철이 화이트보드에 등호를 그었다.
"에너지 보존. 텔로미어를 수선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해. 닳아버린 DNA를 한 글자씩 다시 써넣는 작업인데, 그 한 글자마다 에너지가 들어. 수천 글자를 복원하려면, 그만큼의 에너지를 어딘가에서 가져와야 해."
"그래서 네가 활동 전위를 에너지원으로 설계한 거잖아."
"신경세포 하나가 보내는 전기 신호로는 그 세포 하나의 텔로미어를 고치기도 빠듯해. 근데 넌 이걸 전신에 적용하자는 거잖아."
"전신이라고 했어?"
"네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윌리엄이 웃었다. 하지만 부정하지는 않았다.
"좋아, 기술적으로 가보자." 윌리엄이 자세를 바꿨다. "네 말대로 T-오가넬은 신경세포에서만 작동해. 전기 신호가 에너지원이니까. 근육, 피부, 간 — 이런 데는 그런 전기 신호가 없으니까 T-오가넬이 에너지를 확보할 수 없어. 맞지?"
"맞아."
"그러면 T-오가넬만으로는 영생이 불가능해."
"당연히 불가능해. 그게 내가 처음부터—"
"나도 그건 안다고." 윌리엄이 끊었다. "T-오가넬만으로는 불가능해. 그래서 바이오 바디가 있는 거야."
현철이 멈췄다.
"생각해봐." 윌리엄이 일어서서 화이트보드 앞으로 걸어갔다. 현철이 그린 세포 옆에 사람 형태를 그렸다. 그림을 못 그리는 윌리엄의 사람은 막대기 같았다.
"네가 맞아. T-오가넬은 신경세포 전용이야. 뇌만 보존할 수 있어. 나머지 몸은 늙어. 하지만—" 막대 사람 옆에 또 다른 막대 사람을 그렸다. "몸을 바꾸면?"
"바이오 바디."
"바이오 바디. 우리가 지금 만들고 있는 거."
현철이 팔짱을 꼈다. "그건 장기 대체용으로 개발하고 있는 거야. 심장 이식 대기자, 간부전 환자—"
"처음엔 그렇지. 하지만 기술이 성숙하면? 뇌를 제외한 전신을 통째로 만들 수 있으면? T-오가넬로 젊게 유지한 뇌를 꺼내서 새 바디에 이식하는 거야."
"뇌 이식?" 현철이 팔짱을 풀었다. "뇌를 꺼내서 새 몸에 넣는다고? 그래도 문제가 있어. 뇌와 새 몸의 신경계를 어떻게 연결—"
"신세틱 링크."
현철의 표정이 굳었다.
"지금 테스트 중인 신세틱 링크. 감각 신경의 전기 신호를 캡처해서 다른 사람한테 전송하는 장치. 네가 설계한 거야, 현철. 이걸 뇌와 새 몸 사이의 신경 연결에 쓰는 거야. 이식한 뇌가 새 몸의 감각을 느끼고, 새 몸을 움직일 수 있게."
"그건 감각 공유 기술이지, 뇌 이식용 신경 인터페이스가 아니야."
"지금은. 하지만 감각 신호를 양방향으로 전송할 수 있으면, 운동 신호도 전송할 수 있으면, 뇌의 입출력 전체를 새 몸에 연결할 수 있으면—"
"이론적인 이야기야."
"10년 전에 T-오가넬도 이론이었어."
현철이 창가로 걸어갔다. 7층에서 내려다보는 칼릭스 캠퍼스는 어두웠다. 몇몇 연구동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새벽 두 시에도 일하는 사람들. 현철이 데려온 사람들이었다.
"네가 그리는 그림을 정리해볼게." 현철이 창을 보며 말했다. "T-오가넬로 뇌가 늙지 않게 한다. 몸이 늙으면 바이오 바디로 교체한다. 신세틱 링크로 뇌와 새 몸을 연결한다. 이 세 개를 패키지로 묶어서 파는 거지?"
"그래."
"가격은?"
윌리엄이 잠시 생각했다. "초기에는 높겠지. T-오가넬 시술, 바이오 바디 제조, 신세틱 링크 시술. 전부 합치면 수백억 원."
"누가 사?"
"돈 있는 사람들."
"그래. 돈 있는 사람들만." 현철이 돌아섰다. "80억 인구 중에 몇 명이 수백억 원을 낼 수 있어?"
"처음에는 소수겠지. 하지만 기술은 민주화돼. 컴퓨터가 그랬고, 스마트폰이 그랬고, 유전자 분석이 그랬어. 인간 유전자 지도를 처음 만드는 데 4조 원이 들었는데, 지금은 30만 원이면 돼."
"기술의 민주화." 현철이 반복했다. "좋아. 그러면 네 시나리오대로 100년 뒤에 이 기술이 30만 원이 됐다고 치자. 모든 인간이 영생을 선택할 수 있어. 그러면 뭐가 일어나?"
"인류가 죽음에서 해방—"
"아이를 못 낳아."
윌리엄이 멈췄다.
"지구의 수용 능력은 한계가 있어. 아무도 죽지 않는데 아이까지 낳으면 10년 안에 자원이 고갈돼. 출산을 금지하거나, 영생을 선택한 사람은 생식권을 포기하거나. 어느 쪽이든 인류는 진화를 멈춰. 새로운 유전자 조합이 없으니까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없어. 한 세대가 영원히 지속되는 종."
"그건 정책의 문제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야."
"기술자가 정책의 문제라고 말하면 안 돼." 현철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우리가 만든 기술이 그 정책을 강제하는 거야."
윌리엄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식어 있었다.
"현철."
"응."
"네가 말하는 건 전부 맞아. 에너지 수지가 안 맞는 것, 뇌 보호막 통과율이 0.3퍼센트인 것, 전신 적용이 불가능한 것, 영생의 사회적 비용. 전부 맞는 말이야."
"그런데?"
"그런데 수아가 살아있었으면, 너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
실험실이 조용해졌다. 장비의 냉각팬 소리만 들렸다.
"수아 이야기는 하지 마."
"해야 해." 윌리엄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네가 여기서 살다시피 한 이유가 뭐야. T-오가넬을 논문으로 쓰려고? 아니잖아. 지수한테 수아와 같은 일이 생기면 안 되니까."
"그래서 치료제를 만들고 있잖아. 영생의 약이 아니라."
"치료제와 영생의 약은 같은 기술이야. 네가 선을 긋고 있는 거지, 기술에 선이 있는 게 아니야."
현철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는 텔로미어 수선 기능을 제거하겠다고 했어. 왜? 위험하니까. 그런데 그 기능이 제어 가능해지면? 자동 제한장치를 달아서, 세포에 에너지가 충분할 때만 수선이 작동하게 하면? 암이 발생하기 전에 자동으로 꺼지는 안전장치가 있으면?"
"이론적으로는—"
"네가 그걸 못 만든다고? 14번 쥐 데이터를 보면, 텔로미어 수선이 일어나는데도 암이 안 생겼어. 72일째. 네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미 어떤 형태의 자기 제어가 작동하고 있는 거야."
현철이 모니터를 봤다. 14번 쥐의 데이터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건강한 세포라서 그런 거야. 암을 막는 브레이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니까. MELAS 환자의 세포는 이미 지쳐 있고, 그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할지—"
"그러면 연구하면 되잖아. 포기할 이유가 아니라 연구할 이유지."
현철이 의자에 앉았다. 피곤했다. 이 대화가 피곤한 게 아니라, 윌리엄이 틀리지 않아서 피곤했다.
"윌리엄."
"응."
"14번 쥐 데이터에서 내가 안 보여준 게 하나 더 있어."
윌리엄이 눈을 가늘게 떴다.
현철이 키보드를 눌러 다른 차트를 띄웠다. 뇌 화학물질 농도 그래프.
"투여 후 40일째부터 도파민 수치가 올라가기 시작했어. 50일째에는 정상의 2.3배. 60일째에는 3.1배."
"T-오가넬이 에너지를 더 확보하려고—"
"쥐의 뇌에서 쾌감 물질을 조작하고 있어. 쥐가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이 탐색하고, 더 많은 자극을 받도록. 전기 신호를 늘리기 위해서."
윌리엄이 조용해졌다.
"14번 쥐가 요즘 이상해." 현철이 말했다. "같은 케이지의 다른 쥐들을 물어. 전에는 안 그랬어. 먹이를 과도하게 저장하고, 수면 패턴이 불규칙해지고. 공격성이 높아졌어."
"에너지 요구량을 줄이면—"
"줄이면 텔로미어 수선이 멈춰. 네가 원하는 영생은 사라져."
"그러면 에너지 공급을 늘리는 다른 방법을—"
"뭘로? 전기 신호 말고 신경세포에서 에너지를 빼올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어?" 현철이 책상을 짚었다. "에너지는 만들어지지 않아, 윌리엄. 어딘가에서 가져와야 해. T-오가넬이 텔로미어를 고칠 에너지를 확보하려면, 그만큼의 에너지를 주인에게서 빼앗는 거야. 주인의 신경계를 착취하는 거야. 이건 영생이 아니라 기생이야."
윌리엄이 일어섰다.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현철의 수식들을 한참 들여다봤다.
"외부 에너지원."
"뭐?"
"전기 신호에 의존하지 않는 외부 에너지원. T-오가넬이 주인에게서 에너지를 빼앗지 않아도 되게."
"무슨 소리야. T-오가넬은 세포 안에 있어. 외부 에너지원을 어떻게—"
"무선 충전."
현철이 윌리엄을 바라봤다.
"미쳤어?"
"아니, 들어봐. 이미 바깥에서 자기장으로 뇌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기술이 있잖아. 원리는 같아. 바깥에서 자기장을 쏘면, T-오가넬이 그걸 받아서 에너지로 바꾸게 만드는 거야. 주인의 전기 신호를 빼앗는 대신."
"자기장의 에너지 밀도가—"
"충분하지 않다고? 그러면 충분하게 만들면 되잖아. T-오가넬 안에 자기장을 감지하는 단백질을 넣는 거야. 철새나 꿀벌이 지구 자기장을 느끼는 데 쓰는 단백질이 이미 자연에 있잖아. 이걸 강화해서—"
"그럼 매일 머리에 자기장 헬멧을 쓰고 다니라고?"
"밤에 자면서 충전하면 되지. 베개에 코일 넣으면 돼. 스마트폰 무선 충전이랑 뭐가 달라?"
현철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반박하려다가 멈춘 게 아니었다. 윌리엄의 발상이 터무니없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술적으로 허점이 있지만, 방향이 틀리지는 않았다. 이게 윌리엄이었다. 과학의 한계를 과학으로 돌파하는 게 아니라, 프레임 자체를 바꿔버리는.
"그래도 문제는 남아." 현철이 말했다. 목소리에서 열기가 빠져 있었다. "전신이야. 신경세포에만 T-오가넬이 있으면 뇌만 젊게 유지돼. 심장, 폐, 간, 신장 — 나머지 장기는 그대로 늙어."
"바이오 바디."
"결국 몸을 바꾸자는 거잖아."
"왜 안 돼?"
"그러면 이건 영생이 아니야." 현철이 천천히 말했다. "부품 교체야. 뇌만 원본이고 나머지는 전부 교체품이야. 자동차 엔진만 남기고 차체를 바꾸는 것처럼. 그게 같은 차야?"
"사람은 차가 아니야. 사람의 정체성은 뇌에 있어."
"그래? 그럼 물어볼게. 네가 바이오 바디로 갈아탄다고 쳐. 새 몸의 감각이 지금 네 몸의 감각과 다르면 — 통증 역치가 다르고, 미각이 다르고, 근육의 피드백이 다르면 — 너는 여전히 너야?"
"뇌가 같으니까 나지." 윌리엄이 단호하게 말했다. "현철, 인간이 뭔지 정의해봐. 네 몸의 세포를 하나씩 다른 사람의 세포로 바꿔도 너는 너야. 왜? 기억이 남아 있으니까. 네가 수아를 처음 만난 날, 지수가 태어난 날, 그 새벽에 나한테 전화한 날 — 그 기억들이 너를 너로 만드는 거야. 몸이 아니라."
"기억이 나라고?"
"그래. 기억, 경험, 그것들이 만든 판단의 패턴. 그게 전부 뇌에 저장돼 있어. 뇌가 같으면 나는 나야. 몸은 그릇이지, 내용물이 아니야."
현철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 논리대로라면 치매 환자는 기억을 잃는 순간 죽은 거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기억이 다른데, 그러면 다른 사람이야?"
윌리엄이 잠시 멈췄다.
"기억은 변해." 현철이 말했다. "네가 10년 전에 겪은 일을 떠올릴 때마다, 뇌는 그 기억을 다시 만들어. 떠올릴 때마다 조금씩 달라져. 원본이 아니야. 복사본의 복사본이야. 그걸로 정체성을 정의하겠다고?"
"그래도 연속성이 있잖아. 어제의 기억 위에 오늘의 기억이 쌓이고—"
"그 연속성이 뇌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야." 현철이 화이트보드를 가리켰다. "뇌는 몸에서 분리되지 않아. 장 속 미생물이 기분을 조절하는 물질의 90퍼센트를 만들어. 심장 박동이 감정에 영향을 미쳐. 면역 세포가 보내는 신호가 뇌를 조절해. 네가 어떤 기억을 떠올릴 때 느끼는 감정 — 그게 몸이 만드는 거야. 같은 기억이라도 다른 몸에서 떠올리면 다르게 느껴. 몸을 바꾸면 기억의 의미가 바뀌어.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그래도 기억 자체는 남잖아."
"남지. 하지만 세 번째 바디, 네 번째 바디를 거치면? 기억은 같아도 그 기억을 느끼는 방식이 전부 달라져. 수아를 처음 만났을 때의 심장 박동, 손끝의 떨림, 목구멍이 조이는 감각 — 그게 그 기억을 만든 거잖아. 새 몸에서는 그 감각이 없어. 데이터만 남고 의미가 사라져. 200년 뒤의 너는 지금의 너와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 있어. 하지만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윌리엄이 한참 동안 커피잔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기억이 왜곡되든 안 되든,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면 그걸로 된 거야." 윌리엄이 말했다. "원본이 아니어도 상관없어. 내가 가진 버전이 나야."
현철이 반박하려 했지만 윌리엄이 먼저 일어섰다.
"그리고. 심장 이식 받은 사람한테 가서 '당신은 이전의 당신이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 팔 잃은 군인한테? 전신 마비 환자한테?"
"그건—"
"못 하지. 몸이 바뀌어도 그 사람은 그 사람이야. 누구를 사랑하고, 뭘 후회하고, 뭘 두려워하는지 — 그게 그대로니까. 몸이 아니라 기억이 사람을 만드는 거야."
현철이 창가로 걸어갔다. 캠퍼스의 불빛을 내려다보며 한참 생각했다. 윌리엄의 말에 빈틈이 있었다. 하지만 그 빈틈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윌리엄."
"응."
"인간은 혼자 존재하지 않아."
윌리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네가 너인 이유는 기억 때문만이 아니야." 현철이 돌아섰다. "너를 아는 사람들 때문이야. 내가 너를 윌리엄이라고 부르니까, 네 직원들이 너를 대표라고 부르니까, 네 어머니가 너를 아들이라고 부르니까 — 너는 윌리엄이야. 인간의 정체성은 관계 안에서 만들어져. 나 혼자서 '나'를 완성할 수 없어."
"그건 내 말이잖아. 관계도 기억이야. 기억 안에 관계가—"
"아니, 부정하는 거야." 현철이 한 발짝 다가왔다. "치매 환자를 생각해봐."
윌리엄이 조용해졌다.
"기억을 잃은 사람. 아내의 이름을 모르고, 자식의 얼굴을 못 알아보고,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 현철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 사람의 가족은 여전히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남편이라고 부르고, 그 사람으로 대해. 관계적으로는 그 사람이 여전히 존재해. 하지만 본인은? 본인은 자기가 누구인지 몰라. 거울을 봐도 낯선 사람이야."
"…."
"네 논리대로라면 그 사람은 죽은 거야. 기억이 정체성이라면, 기억을 잃은 순간 그 사람은 사라진 거야. 몸은 살아있고, 가족은 그를 알아보는데, 정작 '나'는 없어."
윌리엄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윌리엄, 네가 말하는 영생은 그 반대야." 현철이 말했다. "200년을 살았어. 기억은 전부 있어. 수아를 기억하고, 지수를 기억하고, 나를 기억해. 하지만 우리는 전부 죽었어. 너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너를 '윌리엄'이라고 불러줄 사람이 없어. 네 기억 속의 사람들이 전부 사라진 세상에서, 그 기억은 누구의 것이야?"
윌리엄이 창밖을 바라봤다.
"치매는 타인이 나를 아는데, 내가 나를 모르는 거야." 현철이 말했다. "영생은 내가 나를 아는데, 나를 아는 타인이 없는 거야. 둘 다 '나'의 절반이 죽는 거야. 네가 파는 영생은 절반짜리 삶이야, 윌리엄."
윌리엄이 천천히 돌아섰다.
"테세우스의 배."
"뭐?"
"그리스 역설. 테세우스의 배에서 널빤지를 하나씩 교체하면, 모든 널빤지가 교체된 배는 원래의 배인가. 2,500년 된 질문이야."
"알아."
"현철, 테세우스의 배에서 네가 빠뜨린 게 있어." 윌리엄이 돌아섰다. "선원들이야. 선원들이 '이건 테세우스의 배다'라고 하는 한, 그건 테세우스의 배야. 널빤지가 전부 바뀌어도." 윌리엄이 한 발짝 다가왔다. "인간의 몸은 이미 테세우스의 배야. 7년마다 세포가 교체돼. 10년 전의 네 원자는 거의 안 남아있어. 그래도 넌 너잖아. 왜? 너도 너를 현철로 알고, 주변 사람들도 너를 현철로 알아. 안과 밖이 맞으니까."
현철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닫았다.
"바이오 바디는 이미 일어나는 일을 한꺼번에 하는 것뿐이야. 점진적 교체를 일괄 교체로. 본질적인 차이가 뭐야?"
"속도가 다르면 본질이 달라."
"왜?"
"뇌가 적응할 시간이 없으니까. 7년에 걸쳐 세포가 하나씩 교체되는 건, 뇌가 매 순간 새로운 세포와의 인터페이스를 미세 조정하면서 연속성을 유지하는 거야. 바이오 바디로 한 번에 바꾸면 그 연속성이 끊겨."
"신세틱 링크가 메워."
"이론적으로."
"현철. 네가 '이론적으로'라고 할 때는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뜻이야. 20년을 봤으니까 알아."
현철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하지만 내 질문에는 대답 안 했어. 200년 뒤에 너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네 기억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윌리엄이 잠시 침묵했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면 되지."
"그 새로운 관계 속의 너는 지금의 너야?"
윌리엄이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진짜 무서운 게 뭔지 알아?" 현철이 말했다.
"뭔데."
"기술적 문제가 아니야. 전부 해결된다고 쳐. T-오가넬의 에너지 문제, 뇌 보호막 통과, 면역 거부반응, 바이오 바디 제조, 신세틱 링크 의식 이전. 전부 완벽하게 해결됐어. 그래서 진짜 영생이 가능해졌어."
"그러면?"
"누가 결정해? 누가 살고 누가 죽는지. 처음에는 수백억 원이잖아. 네가 아무리 기술의 민주화를 이야기해도, 처음 20년, 30년은 부자들만 접근 가능해. 그 20년 동안 죽는 사람들은? 기술이 있는데 돈이 없어서 죽는 거야. 지금은 죽음이 평등해.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죽어. 하지만 영생 기술이 나오는 순간, 죽음이 계급이 돼."
"의료 기술은 항상 그랬어. 심장 이식도 처음에는—"
"심장 이식은 수명을 10년, 20년 연장하는 거야. 이건 영원이야. 차이가 있어. 10년의 불평등은 사회가 감당할 수 있어. 영원의 불평등은 종의 분리야."
윌리엄이 조용히 들었다.
"죽지 않는 부유층과 죽을 수밖에 없는 나머지." 현철이 말했다. "이건 계급이 아니야. 종이 달라지는 거야.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이모르탈리스. 같은 행성에서 공존할 수 있을까?"
윌리엄이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빈 잔이 세라믹 탁자에 닿는 소리가 났다.
"현철."
"응."
"수아가 MELAS로 쓰러졌을 때. 네가 나한테 전화했을 때. 새벽 세 시였어."
"기억해."
"너 이렇게 말했어.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 뭐든.' 기억나?"
현철이 대답하지 않았다.
"'뭐든'. 네가 그 말을 했을 때, 에너지 보존 법칙을 생각하고 있었어? 사회적 비용을 계산하고 있었어? 종의 분리를 걱정하고 있었어?"
"…아니."
"아니지. 아내가 죽어가는데,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생각은 하나야. 살려야 한다. 그게 전부야." 윌리엄이 한 발짝 다가왔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모든 남편이, 모든 딸이 그 생각을 해. 내 사람을 살리고 싶다. 한 시간만 더, 하루만 더, 1년만 더. 그게 인간이야."
"그래서 내가 무서운 거야." 현철이 속삭이듯 말했다. "나도 그렇게 느꼈으니까. 수아를 살릴 수 있다면 뭐든 했을 거야. 종의 분리든, 사회 붕괴든, 상관없었을 거야. 그 감정을 아니까. 그리고 그 감정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아니까."
"위험하다고?"
"사랑이 윤리를 이기면 위험해."
윌리엄이 멈췄다.
"수아를 잃고 나서 깨달았어." 현철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내가 '뭐든'이라고 말했을 때, 그 '뭐든' 안에 다른 사람들의 목숨이 포함되어 있었어. 임상 시험 없이 투여할 수도 있었어. 안전성 검증 없이. 수아를 살리기 위해 다른 환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어. 안 했지만, 할 수 있었어. 그게 무서웠어."
"넌 안 했잖아."
"그래, 안 했어. 하지만 이 기술이 세상에 나가면, 나처럼 참는 사람만 있을까?"
시계가 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커피는 차갑고, 형광등은 차갑고, 두 사람 사이의 공기도 차가워져 있었다.
"윌리엄."
"응."
"한 가지 약속해줘."
"뭔데."
"MELAS 치료제가 먼저야. T-오가넬 연구가 먼저야. 바이오 바디, 영생 패키지, 상업화 — 전부 그 다음이야. 순서를 바꾸지 마."
윌리엄이 현철을 바라봤다. 오래 알아온 친구의 얼굴. 피곤하고, 늙어가고 있고, 아내를 잃은 슬픔이 눈가에 남아 있는 얼굴.
"약속할게."
현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윌리엄이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손잡이를 잡고 멈췄다.
"현철."
"응."
"너도 알잖아. 판도라의 상자는 한 번 열리면 다시 닫을 수 없다는 거."
현철이 모니터를 봤다. 14번 쥐의 텔로미어 데이터가 화면에서 빛나고 있었다.
"알아."
"그러면 질문은 이거야. 열 건지 말 건지가 아니라 — 누가 여는지."
문이 닫혔다. 발소리가 복도에서 멀어졌다.
현철은 한참 동안 모니터를 바라봤다. 14번 쥐의 도파민 수치가 3.1배. 공격성 증가. 수면 패턴 붕괴.
창밖에서 첫 번째 새가 울었다.
각주
T-오가넬(T-Organelle): 작중 은현철 박사가 개발한 인공 세포 소기관. 20억 년 전 박테리아가 세포 안에 들어와 미토콘드리아가 된 '세포 내 공생' 원리에 착안하여 설계되었다. 손상된 미토콘드리아를 대체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이 본래 목적이며, 신경세포의 활동 전위(전기 신호)를 포획하여 연료로 사용한다.
미토콘드리아: 세포 안에서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ATP)를 생산하는 소기관. 흔히 '세포의 발전소'로 불린다.
MELAS: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돌연변이로 발생하는 희귀 질환. 뇌졸중 유사 증상, 근육 약화, 젖산 축적 등을 동반하며,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생산 기능이 손상되어 특히 뇌와 근육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텔로미어: 염색체 끝에 달린 보호 캡.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짧아지며, 다 닳으면 세포가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하고 노화한다. 생물학적 나이를 측정하는 지표로도 쓰인다.
혈뇌장벽(Blood-Brain Barrier): 뇌 혈관 벽의 세포들이 매우 촘촘하게 결합하여 혈액 속 물질이 함부로 뇌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보호 구조. 대부분의 약물이 뇌에 도달하기 어려운 주된 원인이다.
집속 초음파(Focused Ultrasound): 혈관에 미세 기포(마이크로버블)를 주입한 뒤 초음파를 특정 부위에 집중 조사하면, 기포가 진동하면서 혈뇌장벽의 틈을 일시적으로 벌려 약물이 통과할 수 있게 하는 기술. 수 시간 후 장벽이 자연 복원된다. 현재 알츠하이머, 뇌종양 등의 치료에서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노화의 질병 분류: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전통적으로 노화를 자연적 과정으로 보아 치료 대상 질병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5년 당뇨약 메트포르민을 이용한 TAME(Targeting Aging with Metformin) 임상시험이 승인되면서, 노화 자체를 적응증(치료 대상)으로 인정하는 규제 프레임워크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는 노화를 '치료할 수 있는 질병'으로 재정의하려는 최초의 제도적 움직임이다.
경두개 자기 자극(TMS, 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 두개골 바깥에서 강한 자기장 펄스를 인가하여 뇌의 특정 부위 신경세포를 비침습적으로 활성화하거나 억제하는 기술. 현재 우울증, 강박장애, 만성 통증 등의 치료에 임상 적용되고 있다. 작중에서 윌리엄은 이 원리를 확장하여 T-오가넬에 외부 에너지를 공급하는 방법으로 제안한다.
도파민: 뇌에서 보상, 쾌감, 동기 부여를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 과도하면 충동성과 공격성이 증가할 수 있다.
테세우스의 배: 고대 그리스의 정체성 역설. 그리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Plutarch, 46~120 CE)가 《영웅전(Parallel Lives)》의 〈테세우스의 생애〉편에서 제기했다. 아테네인들이 영웅 테세우스가 크레타에서 타고 돌아온 배를 보존했는데, 세월이 흐르며 썩은 널빤지를 하나씩 새것으로 교체했다. 모든 널빤지가 교체된 배는 원래의 배인가. 이후 17세기 철학자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가 한 단계 더 밀어붙였다 — 교체된 낡은 널빤지를 모아서 또 다른 배를 만들면, 둘 중 어느 것이 진짜 테세우스의 배인가. 물질적 연속성과 정체성의 관계를 묻는 이 질문은 2,500년이 지난 지금도 답이 없다.
작가 코멘트
이 이야기는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 "몸을 바꿔도 나는 나인가?"
T-오가넬이라는 기술을 설계하면서, 영생의 기술적 가능성보다 그 너머의 문제가 자꾸 눈에 밟혔습니다.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가, 누가 비용을 감당하는가, 그런 실용적인 질문들 뒤에 훨씬 오래된 질문이 숨어 있었습니다.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현철은 몸이라고 말합니다. 윌리엄은 기억이라고 말합니다. 쓰면서 저는 계속 양쪽을 오갔습니다. 기억이 왜곡되어도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지만 동시에, 그 기억을 함께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건 누구의 기억인가.
치매와 영생이 거울상이라는 생각이 떠올랐을 때, 이 단편의 방향이 잡혔습니다. 치매는 관계는 남아있는데 기억이 사라지는 것. 영생은 기억은 남아있는데 관계가 사라지는 것. 어느 쪽이든 "나"의 절반이 죽습니다.
결국 이 이야기에 답은 없습니다. 2,500년 전 플루타르코스도 답을 내지 못했고, 새벽 세 시의 현철과 윌리엄도 답을 내지 못합니다. 다만 판도라의 상자 앞에서 멈춰 서서, 열기 전에 한 번쯤 물어보는 것. 그 멈춤이 이 이야기가 하고 싶은 전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