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내남편

그녀, 내남편(40) - 유진

결단

마이클 강이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복도 끝의 소회의실이었다.

창문이 없는 방이었다. 흰 벽, 긴 테이블, 의자 여섯 개. 마이클 강이 문을 닫았다. 잠금 소리가 들렸다.

"앉으시죠."

그가 말했다. 나와 수연은 테이블 한쪽에 나란히 앉았다. 마이클 강은 맞은편에 앉았다.

침묵이 흘렀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먼저 감사드립니다."

"지수 씨를 살려주셔서요. 이유진 박사님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다시 우리를 바라보았다.

"두 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결정을 못 했습니다."

"두 분이 떠나시면 지수 씨가 매우 슬퍼하실 겁니다. 특히 수연 씨. 지수 씨의 남편이셨으니까요."

마이클 강이 수연을 바라보았다. 옆에서 수연의 어깨가 굳는 것이 느껴졌다.

"두 분 역시 지수 씨의 행복을 원하실 겁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예요?"

수연이 물었다. 목소리가 낮았다.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마이클 강이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렸다. 깍지를 꼈다.

"두 분이 국외로 떠나 주신다면,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신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드리겠습니다."

"보상이요?"

"역외 계좌로 200억씩 송금해 드리겠습니다."

200억. 두 사람 합쳐 400억.

"원하시는 나라로 가셔서 새 삶을 시작하실 수 있어요. 충분한 금액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이클 강이 미소를 지었다.

"물론 지수 씨에게는 두 분이 개인 사정으로 떠났다고 전하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게 될 겁니다. 지수 씨는 제가 잘 돌보겠습니다."

수연의 손이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쥐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만약..."

마이클 강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 제안을 거절하신다면."

침묵이 내려앉았다.

"거절하시면 아마 저 문밖으로 절대 못 나가실 겁니다."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마치 날씨 이야기를 하듯이. 그게 더 무서웠다.

은현철 박사. 사고로 처리된 죽음. 이 사람은 이미 해본 적이 있었다.

"지금 결정해 주셔야 합니다."

마이클 강이 말했다.

"200억을 받고 떠나실 건가요, 아니면..."

그가 말을 끊었다. 나머지는 말하지 않았다. 말할 필요가 없었다.

수연이 나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마이클 강을 바라보았다.

"30분만 주세요."

"30분이요?"

"둘이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400억짜리 결정을 즉석에서 내릴 수는 없잖아요."

마이클 강이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좋습니다."

그가 일어났다.

"30분 드리겠습니다. 이 방에서 기다리세요. 문은 잠그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센터 밖으로 나가시려 하면... 권하지 않습니다."

그가 문을 열었다. 뒤를 돌아보았다.

"30분 후에 돌아오겠습니다. 현명한 결정 내리시길 바랍니다."

문이 닫혔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나와 수연만 남았다.


"언니."

수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해야 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저 사람... 진짜 죽일 거야."

내가 말했다.

"나가면 진짜 죽일지도 몰라. 은현철 박사님처럼."

수연이 고개를 저었다.

"죽어도 나가야겠어요."

"수연아..."

"돈 때문에 아내를 버릴 수는 없어요."

수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눈빛은 단단했다. 준우였다.

"지수를 저 사람한테 넘기고 200억 받아서 뭘 해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래도."

내가 말했다.

"우리가 죽으면 소용없어."

침묵이 흘렀다. 수연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요. 그냥 떠나요? 지수를 두고?"

"..."

대답할 수 없었다. 어떤 선택도 옳지 않았다. 떠나면 지수를 버리는 것이고, 남으면 죽는 것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수연아."

내가 입을 열었다.

"시간이 지나면 만날 수 있어."

수연이 나를 바라보았다.

"지수가 살아만 있다면. 반드시 만날 수 있어."

"언니..."

"지수는 이제 살아 있잖아. 레시피 2.0이 작동하고 있어. 깨어날 거야."

"우리가 살아 있어야 해. 살아 있어야 다시 만날 수 있어."

수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안해."

수연이 말했다.

"뭐가."

"내가 더 강했어야 했는데. 더 싸워야 했는데."

"아니야."

수연의 손을 잡았다. 떨리는 손이었다.

"우리 살아남자. 살아남아서 다시 만나자. 지수랑."

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계속 흘렀다.


문이 열렸다.

마이클 강이 들어왔다. 우리의 얼굴을 보았다. 눈물 자국을.

"결정하셨습니까?"

"떠날게요."

마이클 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명한 결정입니다."

그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준비해. 두 분이 출국하신다."

전화를 끊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여권 가지고 계신가요?"

"..."

"제 직원이 두 분을 공항까지 모셔다 드릴 겁니다. 티케팅과 탑승까지 안내해 드릴 거예요."

그가 테이블 위에 봉투 두 개를 올려놓았다.

"미국행 항공권입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출금할 수 있는 계좌 정보도 들어 있습니다. 약속한 금액은 이미 송금되어 있습니다."

나는 봉투를 바라보았다.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없습니다. 비행기는 세 시간 후에 출발합니다."

"미국에 가시더라도 한국에 돌아오시겠다는 생각은 안 하시는 게 좋습니다."

마이클 강이 문을 열었다.

"이쪽으로."


검은 승용차가 칼릭스 정문을 빠져나갔다.

뒷좌석에 나와 수연이 나란히 앉았다. 운전석에는 양복 차림의 남자가 있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송도의 거리가 스쳐 지나갔다. 고층 빌딩들. 깔끔하게 정돈된 도로.

수연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이 없었다.

지수.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지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창백한 얼굴. 닫힌 눈. 레시피 2.0이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깨어날 것이다. 하지만 깨어났을 때 우리는 없을 것이다.


인천공항.

출국장 앞에서 차가 멈추었다. 직원이 문을 열었다.

"내리세요."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직원이 봉투 두 개를 건넸다.

"탑승권과 여권입니다. 게이트는 124번. 두 시간 후 탑승 시작합니다."

그가 우리를 바라보았다. 선글라스 너머로 눈이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에 탑승하실 때까지 제가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수연의 손을 잡았다.

"가자."

출국장 안으로 들어갔다. 유리문이 닫혔다.


보안 검색을 통과하고, 면세 구역을 지나, 124번 게이트 앞에 앉았다.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여행객들. 비즈니스맨들. 가족들. 모두 어딘가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언니."

수연이 말했다.

"응."

"혜인 언니 생각나?"

"...응."

"언니도 이렇게 떠났으면 살 수 있었을까?"

"모르겠어."

"난..."

수연이 말을 멈추었다.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난 꼭 돌아올 거야."

"수연아."

"저 사람이 뭐라고 하든. 지수한테 돌아갈 거야."

"나도."

내가 말했다.

"나도 돌아올 거야."

탑승 안내 방송이 울렸다.

"미국 LA행 KE017편 탑승을 시작합니다."

수연이 일어났다. 나도 일어났다.

게이트로 걸어갔다. 목 뒤에서 금속의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