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내남편

그녀, 내남편(39) - 유진

치료제

제조실의 무균 환경 안에서, 나는 은현철 박사님이 남긴 마지막 유산과 마주하고 있었다.

레시피 2.0.

아니. 레시피 2.0의 93퍼센트.

모니터에 펼쳐진 데이터 클러스터를 바라보며, 나는 잠시 숨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수연의 뇌에서 추출한 데이터는 완전하지 않았다. 현철 박사님이 신세틱 링크로 각인한 원본은 정돈된 구조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1년 동안 수연의 뇌는 살아 있었다. 신경가소성. 새로운 시냅스 연결이 원본 데이터 위에 겹겹이 쌓였다. 퇴적물 속에 묻힌 유물처럼 — 원래 형태가 변형돼 있었다.

복원율 93퍼센트. 나머지 7퍼센트는 빈 곳이었다. 단백질 접힘 패턴의 일부, 면역 회피 시퀀스의 후반부. 박사님의 논문과 기존 연구 데이터를 참조해서 추정으로 채웠다. 맞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았다.

확실하지 않다는 것. 그게 가장 무서웠다.

박사님이 돌아가시기 전, 나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준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네가 해야 한다." 그때는 무슨 뜻인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고 있었다.

지수의 혈액 샘플을 원심분리기에서 꺼냈다. 미토콘드리아 DNA 시퀀싱 결과가 이미 모니터에 떠 있었다.

m.3243A>G 변이. MELAS. 지수의 어머니 강수아도 같은 변이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모계 유전이니까.

변이율은 78퍼센트. 높았다. 뇌세포와 근육세포에 축적된 결함 미토콘드리아가 임계점을 넘어선 것이다. 뇌부종은 그 결과였다.

시간이 없었다.


T-오가넬 기본 배양체를 냉동고에서 꺼냈다.

투명한 바이알 안에 담긴 나노 크기의 단백질 복합체. 결함 있는 미토콘드리아를 대체하여 세포와 공생하도록 설계된 인공 기관. 현철 박사님의 걸작이었다.

하지만 레시피 1.0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T-오가넬은 텔로미어를 수선하기 위해 막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했고, 그 에너지를 신경계의 전기 신호에서 끌어왔다. 숙주에게 끊임없이 강렬한 감각 자극을 요구했다. 감각 과부하. 시스템 스로틀링. 혜인에게 일어났던 일. 수연이 겪고 있는 일.

레시피 2.0은 달랐다.

박사님은 텔로미어 복구 기능을 완전히 비활성화했다. 영생 대신 치료를 선택한 것이다. T-오가넬이 요구하는 에너지량이 대폭 감소하고, 감각 증폭이 필요 없어진다. 부작용 없는 순수한 MELAS 치료제.

모니터에 레시피 2.0 알고리즘을 불러왔다. 단백질 접힘 패턴, 세포막 투과 경로, 면역 회피 시퀀스. 박사님의 3년간의 연구가 압축된 데이터였다. 7퍼센트의 빈 곳을 내 추정으로 메운 데이터.

배양기에 바이알을 넣고, 알고리즘 적용 명령을 입력했다.

배양 예상 시간: 32시간.


유리벽 너머로 수연이 보였다.

간이 침대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때때로 지수의 중환자실 쪽을 바라보았다. 눈가에 피로가 역력했지만, 눈빛만은 또렷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수연이 아니었다.

준우 같았다.

인터콤 버튼을 눌렀다.

"수연아."

수연이 고개를 들었다.

"왜?"

"밥 먹어. 자판기에서 뭐라도 사 와."

"괜찮아."

"괜찮지 않아. 언제 마지막으로 먹었어?"

수연이 잠시 생각했다. 대답이 없다는 건 기억이 안 난다는 뜻이었다.

"가서 먹어. 배양 끝나려면 아직 멀었어."

수연이 마지못해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나를 바라보았다.

"언니."

"응."

"고마워."

"아직 고마워할 거 없어. 끝나면 그때 해."

수연이 희미하게 웃었다. 문이 닫혔다.


배양기의 온도를 확인하고, 영양 배지 농도를 점검했다.

T-오가넬의 증식 속도는 정상 범위 안에 있었다. 텔로미어 복구 효소의 발현이 억제되고 있는 것이 데이터로 확인되었다. 계획대로였다.

하지만 아직 한 단계가 남아 있었다.

지수의 미토콘드리아 프로파일에 맞게 T-오가넬을 조정해야 했다. 면역 거부 반응을 피하려면 지수의 세포막 수용체 패턴과 T-오가넬의 표면 단백질이 정확히 맞아야 한다. 열쇠와 자물쇠처럼.

지수의 세포 샘플에서 추출한 막단백질 데이터를 불러왔다. HLA 유형, 세포막 지질 구성, 표면 당단백질 분포.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T-오가넬의 외피 단백질 코드를 수정해야 했다.

키보드 위로 손가락이 움직였다.

박사님이라면 이 작업을 얼마나 빨리 끝냈을까. 나는 박사님의 제자였지만, 박사님의 천재성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배운 모든 것을 쏟아부으면.


마이클 강이 유리벽 앞에 서 있었다.

팔짱을 낀 채 제조실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윌리엄. 강수아를 사랑했던 남자. 30년간 그녀를 기다린 남자. 그리고 지금은 그녀의 딸을 원하는 남자.

나는 그를 무시하고 작업을 계속했다.

지수를 살리는 것이 먼저였다.


18시간째.

배양이 70퍼센트 진행되었다. T-오가넬의 수가 임계 농도에 도달하고 있었다.

면역 호환성 사전 검증을 시작했다. 배양 중인 T-오가넬 소량을 추출해서 지수의 세포 샘플에 떨어뜨렸다.

현미경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T-오가넬이 세포막에 접근했다. 표면 단백질이 수용체에 결합을 시도했다.

결합이 불안정했다.

T-오가넬이 세포막 위에서 미끄러졌다. 결합 — 이탈 — 재결합 — 이탈. 열쇠가 자물쇠에 들어가긴 하는데, 돌아가지 않았다.

데이터를 확인했다. 지수의 HLA-B 서브타입이 문제였다. T-오가넬의 외피 단백질과 완전히 맞지 않았다. 93퍼센트 복원의 빈틈이 여기서 나타난 것일 수 있었다. 아니면 내 조정이 부정확했거나.

어느 쪽이든 — 이대로는 투여할 수 없었다.

커피를 마시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눈이 따가웠다. 마지막으로 잠을 잔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혜인이 떠올랐다.

F-71.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날. 그때도 이랬다. 데이터가 맞지 않아서. 시간이 부족해서.

모니터를 다시 바라보았다. 결합 실패 데이터. 불안정한 단백질 결합 패턴.

다시 했다.

T-오가넬의 외피 단백질 코드를 수정했다. HLA-B 서브타입에 맞춰 당단백질 배열을 재조정했다. 지수의 세포막 수용체와의 결합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시뮬레이션 결과 — 결합 안정성 89퍼센트. 기준치는 95퍼센트.

부족했다.

다시.

면역 회피 시퀀스를 수정했다. 추정으로 채운 7퍼센트 구간 중 하나가 면역 회피 시퀀스의 후반부였다. 현철 박사님의 논문에서 유사한 시퀀스를 찾았다. 적용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 결합 안정성 94퍼센트.

1퍼센트.

1퍼센트가 모자랐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시계를 봤다. 남은 시간. 지수의 뇌부종. 진행 속도. 역산하면 —

두 번째 배양을 시작할 시간이 있었다. 간신히. 수정된 알고리즘으로 새 배양을 돌리면 14시간. 첫 배양에서 기본 배양체가 충분히 증식되었으니까, 처음부터 할 필요는 없었다.

냉동고에서 바이알을 하나 더 꺼냈다.

수정된 코드를 입력했다.

배양 예상 시간: 14시간.


14시간이 더 지났다.

배양 완료.

다시 지수의 세포 샘플에 떨어뜨렸다.

현미경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T-오가넬이 세포막에 접근했다. 표면 단백질이 수용체와 결합했다. 이번에는 — 미끄러지지 않았다. 세포막이 열렸다. T-오가넬이 세포질 안으로 침투했다.

거부 반응 없음.

결함 있는 미토콘드리아 옆에 T-오가넬이 자리를 잡았다. 에너지 생산이 시작되었다. ATP 농도가 올라가는 것이 데이터로 확인되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숨을 내쉬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큰 고비는 넘겼다.


수연을 불렀다.

유리벽 앞에 선 수연에게 모니터 화면을 보여주었다.

"검증 끝났어. 거부 반응 없어. 투여할 수 있어."

"진짜?"

"한 번 실패해서 재조정했어. 시간이 좀 걸렸지만 — 됐어."

수연이 나를 바라보았다. 더 묻지 않았다.

"가자. 지수한테."


중환자실.

지수가 누워 있었다. 창백한 얼굴. 닫힌 눈. 생명 유지 장치가 규칙적으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마이클 강이 뒤따라 들어왔다. 나는 그를 무시하고 투여 준비를 시작했다.

T-오가넬 용액이 담긴 주사기. 척수강 내 주사를 위한 긴 바늘. 뇌혈관 장벽을 우회해서 직접 중추신경계에 전달하는 방법이었다.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경로.

"수연아. 손 잡아줘."

수연이 지수의 손을 잡았다.

나는 지수의 허리 쪽으로 갔다. 옆으로 눕히고, 척추 사이의 공간을 확인했다. L3-L4. 정확한 위치.

소독. 국소 마취. 바늘 삽입.

뇌척수액이 역류하는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T-오가넬 용액을 주입했다.

5ml. 10ml. 15ml.

완료.

바늘을 빼고, 거즈로 눌렀다.

"끝났어."

수연이 나를 바라보았다. 눈가가 젖어 있었다.

"이제... 기다리는 거야?"

"응. 24시간에서 48시간. T-오가넬이 뇌세포에 도달해서 작동하기 시작하면, 뇌부종이 빠지기 시작할 거야."

"깨어날 수 있는 거지?"

"가능성이 높아."

수연이 나를 바라보았다. '깨어날 거야'가 아니라 '가능성이 높아'. 그 차이를 들은 눈이었다.

"몇 퍼센트?"

"90 이상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 장담은 못 해."

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수의 손을 더 세게 쥐었다.

마이클 강이 창가에 서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지수의 바이탈 사인. 심박수, 혈압, 산소포화도. 모든 수치가 안정적이었다.

이제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제조실을 정리해야 했다.

사용한 바이알을 폐기하고, 배양기를 세척하고, 데이터를 백업했다. "마무리가 엉망이면 다음 실험도 엉망이야." 박사님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30분이 걸렸다.

중환자실로 돌아갔다. 복도를 걸으면서 모니터링 태블릿을 확인했다. 지수의 바이탈 — 심박수 62, 혈압 110/70, 산소포화도 98퍼센트. 안정적이었다. T-오가넬이 뇌세포에 도달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했지만, 급격한 변화는 없었다.

중환자실 문 앞에서 멈췄다.

유리창 너머로 수연이 보였다.

침대 옆 의자를 바짝 끌어당겨 앉아있었다. 지수의 손을 잡고 있었다. 두 손으로. 작은 손이 더 작은 손을 감싸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심박 모니터 소리가 유리를 통해 희미하게 들렸다. 삐. 삐. 삐. 규칙적이었다.

수연이 입을 열었다.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유리벽 너머니까.

그리고 — 닫았다.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다시 들었다.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닫았다.

나는 문을 열지 않았다.

혜인이 떠올랐다. 스로틀링이 시작되기 전, 혜인이 잠든 밤에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앉아있었다. 뭔가 말하려고 했다. 하지 못했다. 이유는 달랐지만 — 저 모습이 그때의 나였다.

수연이 뭘 말하려다 삼킨 건지. 지수에게 하려는 말인지, 준우로서 하려는 말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 하려는 말인지. 읽히지 않았다.

유리창에 손을 댔다. 차가웠다.

발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았다. 마이클 강이었다.

"이유진 박사님."

"네."

"수연 씨는 안에 계십니까."

유리창 너머를 한 번 더 봤다. 수연이 여전히 지수의 손을 잡고 있었다. 입술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 뭔가 말한 것 같았다.

"무슨 일이요."

"잠깐이면 됩니다. 지수 씨가 깨어난 다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중환자실 문이 열렸다. 수연이 나왔다. 나를 보고, 내 뒤의 마이클 강을 보고 — 표정이 닫혔다.

"이야기가 있대."

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클 강이 몸을 돌렸다. 복도 끝, 소회의실 쪽으로.

우리는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