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내남편(37) - 수연
병원
복도가 길었다.
유진이 간호사 데스크에서 물었다.
"환자 은지수요."
"검사 중이십니다. 보호자분은 대기실에서 기다려주세요."
대기실에 마이클 강이 앉아 있었다.
회색 코트를 벗지 않은 채였다. 우리를 보고 일어섰다. 걱정하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완벽하게.
"수연 씨, 유진 박사님."
윌리엄. 그 이름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아직은.
"왜 여기 있어요?"
유진이 물었다.
"지수 씨가 쓰러졌을 때 회사에 있었습니다. 앰뷸런스에 같이 탔어요."
유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더 묻지 않았다.
"지수 언니는요?"
"중환자실입니다. 검사 중이에요."
기다렸다. 유진이 내 옆에 앉았다. 마이클 강은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세 사람 사이에 테이블이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벽시계의 초침 소리만 들렸다.
저 사람이. 내 사고를 조작한 사람이. 김준우를 죽인 사람이. 지금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앉아 있다.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참았다.
지수가 먼저다.
한 시간 후, 의사가 나왔다.
마흔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이름표에 '신경과 김태현'이라고 적혀 있었다. 상담실로 안내했다.
"보호자분이시죠."
고개를 끄덕였다. 법적 보호자. 김수연. 나.
모니터에 MRI 영상이 떠 있었다. 뇌 조직 사이로 번진 흰 얼룩.
"이송 중에 MELAS 가능성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해당 방향으로 검사를 진행했고, 확진되었습니다."
MELAS. 알고 있었다. 지수의 몸 안에 시한폭탄처럼 숨어 있던 병.
"MRI 결과, 좌측 측두엽과 후두엽에 광범위한 병변이 확인됩니다."
의사의 펜이 모니터의 흰 부분을 가리켰다.
"일반적인 뇌졸중과 달리 혈관 영역을 따르지 않는 패턴입니다. MELAS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뇌졸중 유사 병변입니다."
무릎 위의 손을 움켜쥐었다.
"다만 한 가지 — 일반 뇌졸중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뇌세포가 괴사된 것은 아닙니다. 혈관이 막혀서 산소가 차단된 게 아니라, 세포 내부의 에너지 생산이 멈춘 겁니다. 쉽게 말하면 세포가 죽은 게 아니라 꺼진 겁니다. 대사성 기절 상태입니다."
유진이 미세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 단어에 반응한 것이 보였다. 꺼진 거라면 — 다시 켤 수 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꺼진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결국 괴사로 진행됩니다. 시간이 문제입니다."
"현재 의식 수준은 GCS 7점입니다. 자발적 개안이 없고, 통증 자극에 대한 반응도 제한적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혼수 상태입니다."
혼수.
"회복 가능성은요."
유진이 물었다. 목소리가 낮았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의사가 잠시 멈추었다.
"혈중 젖산 수치가 정상의 여덟 배입니다. 뇌부종도 동반되어 있고요. 항경련제와 삼투압 이뇨제를 투여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진행을 늦추는 것이 최선입니다."
"늦추는 거요? 치료가 아니라?"
내 목소리가 떨렸다.
"MELAS는 미토콘드리아 유전 질환입니다. 현재 의학으로는 근본적인 치료제가 없습니다. 증상 완화와 지지 치료가 표준 치료입니다."
"깨어날 수도 있지만... 일주일이 고비입니다."
일주일.
"뇌부종이 더 진행되면 뇌간 압박이 올 수 있습니다. 그 전에 부종을 잡아야 합니다."
침묵.
유진이 내 손을 잡았다. 나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나중에 알았다.
"치료제가 있습니다."
마이클 강의 목소리였다.
의사가 돌아보았다. 나도. 유진도.
T-오가넬. 인공 세포 소기관. 결함 있는 미토콘드리아를 대체하는 기술. 칼릭스 바이오에서 개발. 임상 승인 전.
마이클 강이 의사에게 설명하는 목소리가 차분했다. 정확했다. 이 상황을 준비해온 사람의 어조였다.
의사가 고개를 저었다.
"미승인 치료제를 이 병원에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환자가 일주일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안 됩니다.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마이클 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대답도 예상했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면 환자를 칼릭스 의료연구센터로 이송하겠습니다. 거기서라면 자체 프로토콜로 치료가 가능합니다."
칼릭스. 저 사람의 영역.
유진이 내 손을 더 세게 쥐었다.
"보호자 동의가 있으면 가능하지 않습니까?"
의사가 나를 바라보았다. 결정권은 나에게 있었다.
"자리를 옮기죠."
마이클 강이 말했다.
"셋이서 이야기할 게 있습니다."
복도 끝 회의실. 문이 닫혔다.
유진과 나란히 앉았다. 마이클 강이 맞은편에 앉았다. 창밖으로 병원 주차장이 보였다.
"어떻게 레시피 2.0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건 은현철 박사님이 숨긴 거예요. 회사 서버에도 없고, 어디에도 없었어요."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1년 전에 추출했습니다."
"추출이요?"
"김준우 씨의 뇌 이식 수술. 그때 신경망 매핑 데이터에서 레시피가 함께 나왔습니다. 현철 박사가 신세틱 링크로 각인했던 방식 그대로, 역으로 추출했습니다."
내 뇌에서.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동안. 의식이 없는 동안. 이 사람이 내 뇌를 열고, 몸을 바꾸고, 데이터까지 빼갔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예요? 내 머릿속에 레시피가 있다는 거?"
"네."
한 글자. 망설임 없이.
그러면 전부. 사고도. F-72도. 전부 이것 때문에.
"지수 씨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마이클 강이 말했다.
"30년 전, 지수 씨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제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지수를 부탁한다'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유진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 약속을 어떻게 알아요? 강수아 씨가 돌아가신 건 30년 전이에요."
"마이클 강은 가명입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제 본명은 윌리엄 L. 터너입니다."
알고 있었다. 유진이 보여줬다. M-72. 수술 기록. 날짜. 전부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저 입에서 직접 듣는 건 달랐다. 저 입으로 지수에게 사랑한다고 했을 것이다. 저 입으로 커피를 권하고, 투자를 제안하고, 의장직을 건넸을 것이다.
"1년 전에 뇌 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M-72. 이 몸은 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뇌는 내 것입니다."
유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퍼즐이 맞춰지는 표정이었다.
"레시피 2.0은 제 몸에도 적용되어 있습니다. 효과는 검증되어 있어요."
"은현철 박사님을 죽인 것도 당신이죠?"
내 목소리가 낮았다. 떨리지 않았다. 차 안에서 한번 무너졌으니까.
"아닙니다. 현철 박사는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저와는 관계없어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흔들리지 않았다. 숨소리도 변하지 않았다. 표정도.
거짓말이다.
증명할 수 없다. 하지만 안다.
"믿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마이클 강이 말했다.
"지수 씨한테 일주일밖에 없습니다. 과거를 따질 시간이 없어요."
일어나려 했다. 유진이 내 팔을 잡았다.
"수연아."
"언니, 이 사람 말을 어떻게 믿어?"
"믿으라는 게 아니야."
유진의 목소리가 낮았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어?"
다른 방법. 레시피 2.0은 저 사람 손에 있다. 이 세상에서 지수를 살릴 수 있는 건 나를 부순 사람뿐이다.
"감시할 거야. 모든 과정을. 한 치도 빠짐없이."
유진이 마이클 강을 바라보았다.
"그러세요."
마이클 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칼릭스로 가면 우리가 불리해져요. 당신 영역이잖아요."
"하지만 여기서는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그랬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것도 저 사람이 만든 상황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30분만 주세요."
"30분?"
"생각할 시간이요."
마이클 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문이 닫혔다.
유진과 둘이 남았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테이블 위를 비추고 있었다.
"언니."
"응."
"저 사람이 만든 덫이야. 다 알면서도 걸어 들어가는 거야."
"알아."
"그래도 가는 거야?"
유진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래.
"지수 살리는 게 먼저야."
나도 창밖을 바라보았다. 주차장에 검은 세단이 보였다.
일어섰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