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내남편

그녀, 내남편(36) - 유진

차폐실

수연이 연구소에 도착한 건 전화를 끊고 40분 후였다.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수연의 모습이 보이자 손을 들었다. 수연이 고개를 숙이며 다가왔다. 얼굴이 부어 있었다. 밤새 울었거나, 잠을 못 잤거나, 둘 다이거나.

"언니."

"왔어. 따라와."

인사는 생략했다. 복도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었다.


차폐실은 지하 3층에 있었다.

원래는 전자파 차단이 필요한 정밀 실험용으로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벽면 전체가 구리 메쉬로 둘러싸여 있고, 외부와의 모든 전자기 신호가 차단되었다. 휴대폰도 안 터졌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누가 듣고 있든 상관없었다.

문을 닫았다. 잠금장치가 철컥 소리를 냈다.

"앉아."

수연이 의자에 앉았다. 나는 맞은편에 앉았다.

수연의 눈이 붉었다. 하지만 지금 울고 있지는 않았다. 울 것이 다 마른 사람의 얼굴이었다.

"수연아."

"응."

"마이클 강에 대해서 할 말이 있어."

수연의 어깨가 굳었다.


"내가 바이오 바디 수술 데이터를 전부 뒤졌어."

수연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 연구소에서 진행된 모든 바이오 바디 이식 수술 기록. F 시리즈, M 시리즈 전부."

"M 시리즈?"

"남성형 바이오 바디. 너는 F-72잖아. M은 남성형이야."

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M-72 수술 기록을 찾았어."

"M-72?"

"수술 날짜가 흥미로워. 윌리엄 박사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발표된 시점 직전이야."

수연의 눈이 커졌다.

"잠깐, 언니. 그러면..."

"윌리엄은 죽지 않았어. 새 몸으로 옮겨간 거야."


침묵이 흘렀다.

수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M-72가... 마이클 강이야?"

"기록상으로는 환자명이 코드로 되어 있어.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야. 하지만 시점이 너무 정확하게 맞아."

내가 테이블 위에 태블릿을 올려놓았다. 화면에 차트가 떠 있었다.

"여기 봐. 윌리엄 사망 발표: 9월 15일. M-72 수술 기록: 9월 12일. 3일 차이야."

수연이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눈이 빠르게 움직이며 데이터를 읽고 있었다.

"그리고 마이클 강이 칼릭스에 처음 나타난 시점. 10월 3일. 수술 후 회복에 필요한 시간과 정확히 맞아."

"그러니까..."

수연이 천천히 말했다.

"마이클 강은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야. 윌리엄이 새 몸에 들어가서 만들어낸 정체."

"그렇게 보고 있어."


수연이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숨을 내쉬었다. 정보를 소화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그런데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했잖아."

"응. 기록상으로는 환자명이 코드야. '마이클 강'이라는 이름은 어디에도 없어."

"그러면 어떻게 확인해?"

"원래 마이클 강의 신원을 찾으면 돼."

수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 마이클 강?"

"윌리엄이 마이클 강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면, 그 이름은 어디선가 가져온 거야. 진짜 마이클 강이라는 사람이 있었을 거야. 아마 사망자겠지. 죽은 사람의 신분을 도용하면 추적이 어려우니까."

"그걸 어떻게 찾아?"

"그게 문제야. 외부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해야 하는데, 내 권한으로는 어려워."


침묵이 흘렀다.

수연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이라고 해봤자 지하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언니."

"응."

"마이클 강한테 직접 물어보면 안 돼?"

그건 생각하지 못했다.

"직접?"

"응. 내가 전화해서 물어볼게."

"위험하지 않아?"

수연이 나를 바라보았다. 어제까지의 수연과는 다른 눈이었다. 무언가를 결심한 사람의 눈.

"언니, 마이클 강은 나를 죽일 수 없어."

"왜?"

"내 머릿속에 레시피 2.0이 있으니까. 그게 필요하잖아. 나를 죽이면 레시피도 사라져."

논리적이었다. 그리고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내가 전화해서 협박할 거야. 당신이 윌리엄인 거 안다. 지수 언니한테 말하겠다. 이렇게."


수연의 계획을 들으며 나는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마이클 강 — 아니, 윌리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수연에게서 전화가 온다. "당신이 윌리엄인 거 안다"라고 한다.

부정하거나, 역으로 협박하거나, 협상을 제안하거나. 어떤 반응이든, 반응 자체가 정보였다. 완전히 무관한 사람이라면 당황하거나 화를 낼 것이다. 하지만 진짜 윌리엄이라면 — 반응의 결이 다를 것이다.

"좋아."

내가 말했다.

"해봐."


수연이 휴대폰을 꺼냈다.

"잠깐."

내가 손을 들었다.

"여기서는 전화 안 터져. 차폐실이니까."

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밖에서 할게. 언니는 여기서 기다려."

"혼자 가려고?"

"응. 언니가 같이 있으면 마이클 강이 눈치챌 수도 있어. 나 혼자인 것처럼 해야 자연스러워."

맞는 말이었다. 마이클 강이 내 임플란트를 도청하고 있다면, 내가 옆에 있으면 대화 내용이 다 들릴 것이다.

"알았어. 근데 녹음해."

"당연하지."

수연이 일어섰다. 문 쪽으로 걸어갔다. 손잡이에 손을 얹고 멈췄다.

"언니."

"응."

"고마워. 나 혼자였으면 아무것도 몰랐을 거야."

"아직 끝난 거 아니야."

"알아."

수연이 문을 열고 나갔다.


혼자 남았다.

차폐실의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에어컨 소리도 없었다. 완벽한 침묵.

수연이 어떤 대화를 할지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마이클 강의 목소리. 수연의 목소리. 공방.

수연이 변하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겁에 질려 있던 아이가, 지금은 마이클 강에게 직접 전화를 걸겠다고 한다. 레시피가 자신을 지켜준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방패가 된다는 걸.


20분이 지났다.

문이 열렸다. 수연이 들어왔다.

"어떻게 됐어?"

수연이 의자에 털썩 앉았다.

"부정했어."

"뭐라고 했는데?"

수연이 휴대폰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녹음 파일을 재생했다.


[녹음 시작]

수연: 마이클 강 씨.

마이클: 수연 씨? 전화를 다 주시고. 무슨 일이죠?

수연: 아니, 윌리엄 박사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2초 침묵)

마이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수연: 모르는 척 안 해도 돼요. 다 알아요. 당신이 윌리엄이라는 거.

마이클: 수연 씨, 많이 힘드신 것 같은데. 지수 씨 일 때문에 혼란스러우신 거 이해해요. 하지만 저는 마이클 강입니다. 윌리엄 박사는 돌아가셨어요.

수연: 거짓말. M-72 수술 기록 다 찾았어요. 윌리엄이 사망 발표되기 3일 전에 수술했잖아요.

(1초 침묵)

마이클: M-72? 무슨 말씀이신지...

수연: 계속 모르는 척 할 거예요? 지수 언니한테 다 말할 거예요. 당신이 누군지.

마이클: 수연 씨.

(목소리가 낮아짐)

마이클: 저는 마이클 강입니다. 윌리엄 박사와는 아무 관련이 없어요. 수술 기록이 어떻든, 저는 저예요.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만나서 이야기하시죠.

수연: 만나서? 무슨 소리예요.

마이클: 전화로는 한계가 있잖아요. 직접 만나면 제가 오해를 풀어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수연: ...

마이클: 생각해보세요.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통화 종료)

[녹음 끝]


녹음이 끝났다.

나는 다시 한번 재생 버튼을 눌렀다. 특정 부분을 다시 들었다.

"M-72? 무슨 말씀이신지..."

그 1초의 침묵. 그 전의 2초 침묵. 모르는 사람의 반응이 아니었다.

"수연아."

"응."

"부정은 했는데, 반응이 이상해."

"나도 느꼈어."

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윌리엄 이름 꺼냈을 때 2초 멈췄잖아. 그리고 M-72 언급했을 때 또 멈췄어. 정말 모르는 사람이면 바로 '뭔 소리야' 했을 거야."

"맞아."

"그리고 마지막에 만나자고 했잖아. 왜 만나자고 할까?"

"오해를 풀려는 거거나, 너를 통제하려는 거거나."

"통제?"

"만나서 회유하거나, 협박하거나, 아니면..."

말을 멈췄다. 수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면?"

"너를 어디론가 데려가려는 걸 수도 있어."


수연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면 안 만나는 게 나을까?"

"아니."

내가 말했다.

"만나야 해. 만나서 더 끌어내야 해."

"근데 위험하다며."

"위험하지. 하지만 네가 말했잖아. 마이클 강은 너를 죽일 수 없다고. 레시피 때문에."

수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준비를 해야 해. 녹음만으로는 부족해.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해."

"어떻게?"

"만나는 장소를 우리가 정해. 안전한 곳으로. 그리고 백업 플랜을 세워."

수연이 나를 바라보았다.

"언니, 같이 가줄 수 있어?"

"당연하지."


계획을 세워야 했다.

마이클 강 — 윌리엄과의 만남. 장소, 시간, 탈출 루트, 만약의 상황에 대한 대비.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장소여야 했다. 그가 통제할 수 없는 곳.


차폐실 문을 열고 나왔다.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휴대폰이 진동했다. 한 번이 아니었다. 연속으로. 주머니 안에서 미친 듯이 떨렸다.

화면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 11통. 대부분 회사 번호였다.

전화가 또 울렸다. 칼릭스 본사 번호.

수연과 눈이 마주쳤다. 수연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받았다.

"여보세요."

"이유진 박사님이시죠?"

낯선 여자 목소리였다. 급하게 말하고 있었다.

"네, 그런데요."

"은지수 의장님 비서입니다. 의장님이 쓰러지셨습니다."

"뭐라고요?"

"30분 전에 사무실에서 발작을 일으키셨어요. 지금 병원으로 이송 중입니다. 의장님이 평소에 몸에 이상이 생기면 박사님께 연락하라고 하셨어서..."

옆에서 수연이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어느 병원이요?"

"송도 센트럴 병원입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전화가 끊어졌다.

휴대폰을 내렸다. 수연을 봤다.

"언니? 무슨 일이야?"

"지수가 쓰러졌대."

수연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가야 해."

차 키를 꺼냈다. 수연이 뒤따라왔다.


운전석에 앉았다. 시동을 걸었다. 수연이 조수석에서 시트벨트를 매는 소리가 들렸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라, 입을 열면 뭐가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연구소 정문을 빠져나갔다. 도로로 올라섰다. 핸들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의식적으로 풀려고 했지만 풀리지 않았다.

수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수석에서 창밖을 보고 있었다. 얼굴이 하얬다.

신호에 걸렸다. 차가 멈췄다.

지수가 쓰러졌다. 발작. 30분 전.

30분이면 내가 차폐실에 있던 시간이었다. 신호도 안 터지는 곳에서 마이클 강의 정체를 파헤치고 있는 동안, 지수는 사무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신호가 바뀌었다. 차가 다시 움직였다.


병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엔진을 껐다.

수연을 봤다. 수연도 나를 봤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갔다.

병원 입구에 마이클 강이 서 있었다.

회색 코트. 검은 목도리. 우리보다 먼저 와 있었다. 비서가 나에게 전화한 것처럼, 그에게도 연락이 갔을 것이다. 아니, 그쪽이 먼저였을 수도 있다.

"오셨습니까."

부드러운 목소리.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옆에서 수연의 숨이 멈추는 게 느껴졌다. 한 시간 전에 이 남자에게 "당신이 윌리엄인 거 안다"라고 전화한 사람이, 지금 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연의 팔을 잡고 그를 지나쳤다.

복도. 소독약 냄새. 형광등이 윙윙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