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내남편

그녀, 내남편(30) - 지수

고백

다음 날 아침.

나는 인사팀에 메일을 보냈다.

[CEO 마이클 강의 프로필을 요청합니다. 이사회 업무 파악을 위해 필요합니다. - 은지수]

한 시간 후, 답장이 왔다. 첨부 파일이 있었다.

파일을 열었다.


마이클 강 (Michael Kang)

  • 출생: 한국 서울

  • 학력:

    • 유년기 미국 이민

    • Phillips Academy Andover (명문 사립고)

    • 한국 경찰대학 졸업

    • MIT Sloan School of Management, MBA

  • 경력:

    • 대한민국 경찰청 본청 근무 (3년)

    • Calix Biotech 기획조사팀 팀장

    • Calix Biotech CEO (현재)

  • 입사 추천자: William R. Turner (전 회장)


화면을 바라보았다.

한국에서 태어나 어려서 미국으로 갔다. 명문고를 나왔는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경찰대. 군 문제 때문이겠지. 한국 국적이면 피할 수 없으니까.

본청 근무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MBA.

경찰에서 경영으로.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리고 칼릭스 입사.

기획조사팀. 이름부터 묘했다. 기획? 조사? 경찰 출신이 맡기에 딱 좋은 이름이긴 했다. 무슨 일을 하는 부서지?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입사 추천자였다. 윌리엄.

윌리엄과 마이클 강은 어떤 관계일까?


생각에 잠겨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화면을 보았다.

마이클 강.

잠시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은 이사님."

익숙한 목소리. 부드럽지만 어딘가 날카로운.

"제 프로필을 인사과에 요청하셨더군요."

손이 차가워졌다. 어떻게 알았지?

"괜찮습니다. 다 이해해요."

마이클 강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궁금하시겠죠. 저도 이사님 입장이라면 그랬을 겁니다."

"제가 그 궁금증을 풀어드리겠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함께 식사하시죠.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식사요?"

"네. 오늘 점심. 차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일방적인 통보였다. 거절하려고 입을 열었는데, 나온 말은 다른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왜 알겠다고 했지. 모르겠다.


정오.

검은 세단이 나를 데려간 곳은 해안가의 고층 빌딩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최상층에 멈췄다. 문이 열리자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레스토랑이었다. 하지만 손님은 없었다. 넓은 공간에 테이블 하나. 그리고 그 앞에 마이클 강이 서 있었다.

"오셨군요."

그가 다가왔다. 회색 수트. 단정한 머리. 시선이 잠깐 어깨 쪽으로 갔다. 왜 거기를 봤는지 모르겠다. 바로 눈을 돌렸다.

"이쪽으로."

창가 테이블로 안내받았다. 앉았다. 눈앞에 바다가 펼쳐졌다. 푸른 수평선. 하얀 파도.

"전세 내셨어요?"

"네. 오늘은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마이클 강이 맞은편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와인 병이 놓여 있었다. 그가 병을 들어 라벨을 보여주었다.

"1982년산 샤토 마고입니다."

와인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하지만 비싼 거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아직 낮인데요."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요."

코르크를 열었다. 붉은 와인이 잔에 따라졌다.

"특별한 날이요?"

"귀한 분을 모셨으니까요."

잔을 들었다. 나도 잔을 들었다. 가볍게 부딪쳤다.

"건배."

한 모금 마셨다. 깊고 부드러운 맛이 혀끝에 퍼졌다.

마이클 강이 나를 바라보았다.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궁금한 게 많으시죠?"

"물어보세요. 뭐든 답해드리겠습니다."

나는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윌리엄 터너 회장님과는 어떤 관계죠?"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먼저 꺼냈다. 마이클 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외삼촌입니다."

"외삼촌이요?"

예상치 못한 답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의붓 외삼촌이죠."

마이클 강이 와인잔을 돌렸다.

"제가 고등학생 때, 어머니가 재혼하셨습니다. 상대가 윌리엄 터너의 형이었어요."

"윌리엄 삼촌은 한국을 좋아했습니다. 한국어도 잘하셨고요. 그래서 저와 특히 친하게 지냈어요."

마이클 강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잠시 멈췄다.

"삼촌은 평생 독신이셨습니다. 아들이 없었죠. 그래서 저를 아들처럼 아껴주셨어요."

"제가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 직장 다닐 때. 삼촌이 한국에 오시면 항상 저를 회사로 불렀습니다. 회사를 보여주시고, 함께 시간을 보냈죠."

마이클 강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 은현철 박사님도 만났습니다."

목이 조였다.

"아버지를요?"

"네. 삼촌과 박사님은 가까운 사이셨으니까요. 저도 몇 번 인사드린 적이 있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마이클 강이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저는 원래 경찰에 계속 몸담고 싶었습니다. 적성에 맞았거든요."

"그런데 왜...?"

"삼촌이 원하셨어요. 칼릭스에서 더 큰일을 해야 한다고."

마이클 강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미국으로 돌아가 MBA를 했습니다. 삼촌의 뜻이었죠. 돌아와서는 제가 잘할 수 있는 일들을 회사에서 맡았고요."

"기획조사팀."

"네."

고개를 끄덕였다.

"드러난 조직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수 씨가 저를 뵐 일이 없으셨을 거예요."

맞았다. 나는 연구소에서 몇 년을 일했지만, 마이클 강이라는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마이클 강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은현철 박사님 사고 때, 제가 직접 뒷처리를 맡았습니다."

"장례식 준비, 유족 연락, 언론 대응. 모든 일을 제가 했습니다."

눈이 뜨거워졌다. 그때 누군가 모든 걸 처리해줬다. 나는 너무 슬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누군가 장례식장을 마련하고, 조문객을 안내하고, 모든 절차를 대신해줬다.

그게 이 사람이었구나.

마이클 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리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했다.

"다시 한번, 은현철 박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진심으로."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숙였다.

마이클 강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와인잔을 들었다.

"더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저는 짧은 기간에 두 남자를 잃었어요."

마이클 강이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아빠와 남편. 남편은 이제 여자가 됐고, 아빠는 돌아오지 못했어요."

"혹시 두 사건에 대해 아시는 게 있나요?"

침묵이 흘렀다. 마이클 강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두 분에 대해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잠시 멈췄다가, 그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아, 한 분은 그러면 안 되는군요. 아직 살아 계시니."

쓴웃음이 나왔다. 이상한 사람이다.

마이클 강이 표정을 고쳤다. 진지해졌다.

"사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두 사건 모두 미궁에 빠져 있습니다."

"미궁이요?"

"네."

마이클 강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두 사건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율주행 화물차의 충돌. 너무 비슷해서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경쟁사, 원한관계, 내부 갈등. 모든 방향을 열어놓고 조사했습니다."

마이클 강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시겠지만 제가 경찰 출신입니다. 자존심에 금이 간 사건이었어요. 아직도 범인을 못 찾았으니까요."

"다행히 부군 사건은 빠르게 조치해서 목숨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마이클 강이 잠시 말을 멈췄다.

"다만... 그 시간에 구할 수 있는 바디가 그것뿐이었습니다."

F-72. 여자의 몸.

"그 부분도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과할 일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적어도... 그때는.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습니다."

마이클 강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조사 중입니다. 포기하지 않았어요. 혹시라도 소식이 있으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마이클 강이 와인잔을 들었다. 한 모금 마셨다.

"더 궁금하신 게 있으신가요?"

있었다. 가장 중요한 질문.

"나한테 왜 이러시는 거죠?"

마이클 강이 잔을 내려놓았다.

"왜 나를 이사회에 포함시킨 거죠? 왜 주식 문제를 해결해주고, 의장 자리까지 제안하는 거예요?"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대체 뭘 원하시는 건가요?"

마이클 강이 잠시 침묵했다. 와인잔을 내려다보았다.

"이건 쉽게 말씀드릴 내용은 아닙니다만..."

그가 고개를 들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창밖으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마이클 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현재 CEO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돌아가신 윌리엄 삼촌의 추천. 그리고 윌리엄 패밀리의 주식."

마이클 강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사회에서 보셨겠지요. 윌리엄 패밀리의 지분은 작아졌습니다. 이제는 의결권도 없고요."

"제 개인 지분으로는 회사를 이끌어갈 힘이 없습니다."

마이클 강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진지한 눈빛이었다.

"지수 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 거구나. 윌리엄 일당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 것도. 주식 문제를 해결해준 것도. 이사회에 나를 앉힌 것도.

이 사람에게도 나는 필요한 존재였던 거다.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안심이 됐다. 일방적으로 베푸는 게 아니라, 서로 필요로 하는 관계라면 납득이 갔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내가 말했다. 마이클 강이 고개를 숙였다.

"부끄럽습니다. 순수한 호의가 아니었으니까요."

"아니에요. 오히려 이해가 돼요. 이게 더 편해요."

마이클 강이 나를 바라보았다. 미소가 번졌다. 처음으로 진심 같은 미소였다.

"감사합니다."

창밖으로 바다가 반짝이고 있었다. 와인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이 사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마이클 강이 말을 이었다.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사실은..."

그가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수 씨를 처음 뵀을 때,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리가 멀어졌다. 레스토랑의 배경음악이, 파도 소리가, 와인잔 위에서 맴돌던 향기가 — 전부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혹시 오해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마이클 강이 손을 들었다.

"이 이야기는 지분 이야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제 마음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지수 씨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끝이 하얘져 있었다. 언제부터 주먹을 쥐고 있었는지 몰랐다.

사랑?

이 사람이?

나를?

놀라움 뒤에 뭔가가 와야 했다. 불쾌함이든, 거부감이든, 역겨움이든. 와야 정상이었다.

오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이 왔다. 오래전에 잊은 줄 알았던 것. 준우가 프러포즈하던 날, 무릎을 꿇고 올려다보던 얼굴. 그때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던 것과 같은 종류의 — 전류.

손가락을 폈다. 와인잔을 잡으려다 놓쳤다. 잔이 테이블 위에서 흔들렸다.

"당황하셨죠."

마이클 강이 말했다. 담담한 목소리였다.

"당연합니다. 갑작스러우니까요."

"답을 바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가 냅킨을 집어 테이블 위의 와인 얼룩을 닦았다. 손이 컸다. 냅킨이 작아 보였다. 왜 그걸 보고 있는 거지.

"그냥 제 마음을 알아주셨으면 해서요."

"저... 저는..."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마이클 강이 미소 지었다.

"부담 갖지 마세요. 저는 기다릴 수 있습니다."

기다린다고?

뭘?

수연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젯밤 울면서 매달리던 수연. 무서워. 나도 몰라. 그 떨리는 목소리.

"저는 결혼한 사람이에요."

겨우 그 말이 나왔다.

"알고 있습니다."

마이클 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군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도 알고 있고요."

"그래서 더 말씀드리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숨기고 싶지 않았어요."

마이클 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실 테니까요."

"차를 불러드리겠습니다."

그가 전화를 걸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다.


차가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기사님."

"네, 말씀하세요."

"바닷가에 잠시 세워주시겠어요?"

"네?"

"잠깐만요. 바람 좀 쐬고 싶어서."

차가 속도를 줄였다. 해안가 전망대 앞에 멈췄다.

차에서 내렸다.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짠 냄새. 파도 소리.

난간에 기대어 섰다.

수연을 사랑한다. 분명히.

그런데 아까 그 남자가 사랑한다고 했을 때, 등줄기를 타고 내려간 그것은 뭐였을까. 프러포즈 때와 같은 그것은. 수연에게는 느껴본 적 없는 그것은.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멀리서 갈매기가 울었다.

수연의 손을 잡을 때, 수연이 안길 때, 수연이 내 이름을 부를 때 — 따뜻하다. 가슴이 뭉클하다. 지키고 싶다.

그건 사랑이 맞다.

그런데.

아까 그것은 뭐였지.

이사회 의장. 최대 주주. 이 회사의 주인.

그 자리에 오르면 사람들 앞에 서야 한다. 언론에 나온다. 그러면 수연과 나는 —

손가락이 난간을 꽉 잡았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부서졌다. 하얀 포말이 피어올랐다.

어젯밤 수연이 잡았던 손. 축축했다. 눈물로 젖어 있었다. 나 버리지 마. 그 목소리. 그 목소리가 귀에 남아 있는데도, 아까 식당에서 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간 것이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한참을 서 있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바다가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돌아가야 한다. 수연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차로 돌아갔다.


저녁. 거실에 세 사람이 모여 있었다.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마이클 강의 프로필. 윌리엄과의 관계. 그가 말한 것들.

사랑 이야기만 빼고 전부.

"외삼촌이라고?"

유진 언니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네. 어머니가 윌리엄의 형과 재혼했대요."

"아버지 사고 때 뒷처리도 직접 했대요. 장례식도."

침묵이 흘렀다.

"거짓말이야."

수연이었다.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전부 다 거짓말이야."

"수연아..."

"그 사람 절대 믿으면 안 돼."

수연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제발. 언니. 그 사람 말 믿지 마."

"왜 그렇게 생각해?"

"그냥... 느낌이 안 좋아. 전부 다 가짜 같아."

유진 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수연이 말에 동의해."

"언니도요?"

"이야기가 너무 깔끔해."

유진 언니가 팔짱을 꼈다.

"외삼촌? 경찰 출신? 아버지 장례식까지? 모든 게 딱딱 맞아떨어지잖아. 의심하려야 의심할 구석이 없어."

"그게 왜 문제예요?"

"진짜 인생은 그렇게 깔끔하지 않아."

유진 언니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수야. 네가 속고 있는 것 같아."

"속고 있다고요?"

"응. 너무 완벽한 이야기는 대본이야. 누군가 짜놓은 각본."

"그 사람이 나한테 왜 거짓말을 해요?"

"그건 나도 몰라. 하지만―"

"증거도 없잖아요."

내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도 모르게.

이건 내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수연과 유진 언니를 향해 이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었는데.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느낌이 안 좋다? 이야기가 깔끔하다? 그게 다예요? 그걸로 사람을 의심해요?"

날카로웠다. 목이 뻣뻣했다. 턱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모르겠는데 멈추지 않았다.

유진 언니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눈빛이 달라졌다. 실망인지, 걱정인지. 아마 둘 다.

수연이 내 손을 잡았다.

"언니..."

"나 피곤해."

나는 손을 뿌리쳤다. 수연의 손이 허공에서 멈추는 게 보였다. 그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배 안쪽이 쓸렸다. 하지만 다시 잡지 않았다.

"오늘은 그만하자. 머리 아파."

침묵이 흘렀다.

"... 알았어."

유진 언니가 일어섰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다들 쉬어."

언니가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거실에 나와 수연만 남았다.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천장만 바라보았다. 수연의 숨소리가 들렸다.

"언니."

수연이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부탁이야."

수연의 손이 내 손을 잡았다. 축축했다. 눈물이었다.

"그 사람 말 믿지 마."

"제발. 언니. 제발..."

수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울고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해야 했다. "믿지 않을게"라고. "너만 볼게"라고. 입을 열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돌아누웠다.

수연의 손이 내 손에서 떨어졌다. 이불 위에 축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깃털처럼 가벼운 소리였는데, 내 귀에는 돌덩이가 떨어지는 것처럼 무겁게 울렸다.

등 뒤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작게. 목을 죄어가며.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을 틀어막고 우는 것 같았다. 어깨가 들썩이는 게 매트리스의 떨림으로 전해졌다.

돌아봐야 했다. 안아줘야 했다.

하지만 몸이 돌아가지 않았다. 돌아보면, 수연의 눈물 젖은 얼굴을 보면, 나는 다시 약속을 해버릴 것이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을. 그게 더 잔인한 거라고 생각했다.

거짓말이었다. 그냥 비겁한 거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