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내남편

그녀, 내남편(29) - 지수

이사회

숙소에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은 거실에 있었다.

유진 언니는 소파에서 태블릿을 보고 있었고, 수연은 창가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둘 다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됐어?"

유진 언니가 물었다.


나는 소파에 앉았다. 서류 봉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손이 아직도 미세하게 떨렸다. 두 시간 전의 일이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칼릭스 본사 28층. 통유리 너머로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회의실. 마호가니 테이블 위에 서류가 놓여 있었고, 맞은편에는 낯선 남자가 앉아 있었다. 마이클 강이 아니었다. 백발의 노인. 법무팀 총괄이라고 했다.

"은지수 씨. 부친의 주식 가압류 건이 해제되었습니다."

그가 서류를 밀어왔을 때, 나는 함정을 의심했다. 너무 쉬웠다. 아무 조건 없이?

"윌리엄의 횡령이 확정되면서 그쪽 지분은 의결권 없는 주식으로 전환되었습니다. 현재 의결권 있는 주식 기준으로, 은지수 씨가 최대주주십니다."

호의가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법적 결과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 다음 말은 달랐다.

"이사회에서 은지수 씨의 참여를 요청드립니다. 빈 자리가 있습니다."

그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사무적이고 건조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를 관찰하는 눈이었다.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피는.

나는 서류를 받아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만 말하고 나왔다. 복도를 걸으며 등 뒤로 시선이 느껴졌다.


"이사회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았어."

침묵이 흘렀다.

"뭐?"

유진 언니가 눈을 크게 떴다.

"아빠 주식 가압류 건도 해결됐대. 윌리엄 횡령 건으로 그 가족들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횡령액을 처리하고 나머지는 의결권 없는 주식으로 전환됐다고."

서류 봉투를 밀었다. 유진 언니가 집어 들었다. 안을 확인했다. 법원 도장이 찍힌 서류들.

"이젠 내가 이 회사의 최대주주가 됐어."

"진짜네."

언니가 중얼거렸다.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받아들여."

"언니?"

유진 언니가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가로 걸어가며 말했다.

"생각해 봐. 지금 우리는 적의 영토 안에 있어. 정보는 없고, 카드도 없어. 그런데 적이 스스로 문을 열어준 거야."

"하지만 함정일 수도 있잖아요."

"당연히 함정이지."

언니가 돌아보았다. 눈빛이 날카로웠다.

"문제는 그 함정이 뭔지 모른다는 거야. 모르면 알아내야 해. 밖에서 추측하는 것보다 안에 들어가서 보는 게 빨라."

손가락으로 서류를 톡톡 두드렸다.

"이사회에 들어가면 재무제표를 볼 수 있어. 연구 예산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어떤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지. 박사님의 원본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도 생길 거야."

그녀의 목소리에 열기가 서렸다. T-오가넬 억제 단백질 합성에 필요한 원본 데이터. 그걸 위해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거다.

"하지만 왜 이렇게 쉽게 주는 건지가 걸려. 너무 편하게 열어주는 문은 닫힐 때도 빠르거든."

언니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지금은 들어가는 게 맞아. 우리한테 시간이 없으니까."

논리적인 판단이었다. 나도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안 돼."

수연이었다. 창가에서 돌아서며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왜?"

유진 언니가 물었다.

"위험해."

"뭐가 위험한데?"

"그냥... 느낌이 안 좋아."

수연의 얼굴이 이상했다. 핏기가 빠져 있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고, 오른손이 자기 뒷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마치 거기가 아프기라도 한 것처럼.

"느낌?"

유진 언니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느낌으로 판단할 상황이 아니야.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건 정보야. 적이 뭘 원하는지, 왜 우리를 여기로 데려왔는지."

"그래도..."

"이유가 뭔데?"

언니가 한 걸음 다가갔다. 수연이 뒷걸음질 쳤다.

"왜 그렇게 반대해? 뭔가 이유가 있어?"

"없어. 그냥..."

수연의 눈이 흔들렸다. 뭔가 숨기고 있었다. 확실했다.

"수연아."

내가 불렀다. 수연이 나를 쳐다보았다. 눈이 젖어 있었다.

"무슨 일 있어?"

수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입술만 달싹거렸다.

"없어."

결국 수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걱정돼서 그래. 언니가 위험한 곳에 들어가는 게."

"일단 생각해볼게."

내가 말했다. 유진 언니는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더 말하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 먼저 잘게."

유진 언니가 일어섰다. 방으로 들어가며 문을 닫았다.

거실에 나와 수연만 남았다.


"언니."

수연이 다가왔다.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두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가지 마."

"수연아..."

"제발. 가지 마."

수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수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내 무릎 위로 올라왔다. 양손으로 내 얼굴을 감쌌다.

"사랑해."

입술이 다가왔다. 뜨거웠다. 절박했다.

"사랑해, 언니. 나 언니밖에 없어."

키스가 깊어졌다. 숨이 막혔다. 뭔가 이상했다. 평소와 달랐다. 쾌락이 아니라 공포 같았다.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수연아, 잠깐..."

"하지 마."

수연이 내 입술을 막았다.

"아무것도 묻지 마. 오늘은 그냥... 나만 봐줘."

수연의 손이 내 블라우스 단추를 풀었다. 떨리는 손이었다. 나는 그 손을 잡았다.

"떨고 있어."

"무서운 거야?"

수연이 고개를 떨궜다. 어깨가 들썩였다. 울고 있었다.

"말해줘. 무슨 일이야?"

수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저었다. 입술을 깨물었다.

"무서워."

"뭐가 무서운데?"

"몰라. 나도... 몰라."

"수연아..."

"제발."

수연이 내 품에 파고들었다. 온몸으로 매달렸다.

"오늘만. 오늘 밤만 아무것도 묻지 마. 그냥 나를 안아줘."

나는 수연을 안았다. 떨리는 몸을 꽉 껴안았다.

수연이 다시 입술을 가져왔다. 이번엔 거절하지 않았다.

수연은 미친 듯이 매달렸다. 평소와 달랐다. 내 이름을 계속 불렀다. 주문처럼. 놓으면 안 되는 것처럼.

"언니... 언니..."

나는 수연을 꽉 안았다. 등을 쓸어내렸다. 척추뼈가 손바닥 아래서 도드라졌다.

심장 소리가 들렸다. 수연의 심장. 등을 끌어안고 있으니까 갈비뼈 사이로 전해졌다. 미친 듯이 빠르게.

"수연아, 심장이 너무 빨라..."

"신경 쓰지 마. 제발..."

수연이 더 깊이 파고들었다.

한참이 지났다.

"사랑해."

수연이 속삭였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 버리지 마."

돌아봐야 했다. 안아줘야 했다. 대답해야 했다.

"버리지 않아."

나는 수연의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이마가 차가웠다.

"절대 안 버려."

수연의 손이 내 손목을 잡고 있었다. 힘이 빠져갔다. 손가락 끝이 축 늘어졌다.

"수연아?"

대답이 없었다. 숨소리만 고르게 들렸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수연은 뭔가를 알고 있었다. 말하지 못하는 뭔가를. 제주에 온 뒤부터. 아니, 며칠 전부터. 수연이 달라진 건.

수연의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미간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입술이 무언가를 중얼거리듯 달싹였다.

수연의 손을 잡았다. 여전히 차가웠다.

창밖으로 검은 바다가 보였다. 달빛이 파도 위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나는 잠들지 못했다.


아침에 메시지가 왔다.

[오늘 오전 10시, 이사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차량을 보내드리겠습니다. - M. Kang]

화면을 한참 바라보았다. 수연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서워. 나도 몰라.

답장을 보냈다.

[알겠습니다.]


숙소 앞에 검은색 세단이 멈췄다.

운전사가 내려 문을 열어주었다. 가죽 시트. 은은한 향. 차 안에는 생수와 과일이 준비되어 있었다.

뒷자리에 앉았다. 문이 닫혔다. 부드럽게 차가 출발했다.

창밖으로 해안 도로가 스쳐 지나갔다. 파란 바다. 하얀 파도.

등받이가 부드러웠다. 시트가 체온에 맞춰 따뜻해지고 있었다.


본사 건물 앞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마이클 강이 서 있었다. 오늘은 남색 수트였다.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 셔츠 첫 번째 단추가 풀려 있었다.

"잘 오셨습니다."

그가 다가왔다. 자연스럽게 내 옆에 섰다.

"이쪽으로."

나란히 로비를 가로질렀다. 지나가던 직원들이 고개를 돌렸다.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저 사람..."

"연구소에 있던..."

"은지수 아니야?"

얼굴이 달아올랐다.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문이 닫혔다. 마이클 강이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 정말 예쁘시네요."

"감사합니다."

왜 바로 대답이 나온 거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단정한 블라우스. 검은 스커트. 나쁘지 않았다.


이사회 회의실.

긴 테이블에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대부분 중년 남성들. 나를 보는 눈빛에 호기심과 경계가 섞여 있었다.

"은지수 이사님이십니다."

마이클 강이 소개했다. 나는 가볍게 인사했다.

"은지수입니다."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 서류들이 놓여 있었다. 안건 목록. 재무제표. 사업 계획서.

회의가 시작됐다.

신약 개발 현황. 해외 지사 설립. 인력 충원 계획. 익숙한 내용도 있었고, 처음 듣는 내용도 있었다.

나는 조용히 듣기만 했다. 귀를 기울였다. 바이오바디. F-72. 그 단어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두 시간 동안,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눈에 띈 건 다른 것이었다. '신세틱 링크' 기술 개발 보고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시장 진입 전략. 예상 수익률.

마이클 강이 문득 나를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그가 미소 지었다.

나는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두 시간이 흘렀다. 마지막 안건.

"의장 선출 건입니다."

마이클 강이 말했다.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저는 은지수 이사님을 의장으로 추천합니다. 창업자 가문의 유일한 후손이시며, 이 회사의 미래를 이끌어가실 분입니다."

침묵이 흘렀다. 이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반대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은 이사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의장. 이 회사의 최고 의결권자. 지난달까지 연구실에서 시약 냄새 맡으며 살던 사람에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마이클 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다음 회의까지 결정해 주시면 됩니다."


회의가 끝났다.

사람들이 하나둘 나갔다. 마이클 강이 다가왔다.

"오늘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의장 건,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그가 미소 지었다. 나는 고개만 끄덕이고 회의실을 나왔다.


돌아오는 차 안.

창밖으로 바다가 보였다. 숙소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차가 멈췄다. 운전사가 문을 열어주었다.

고개를 들었다. 2층 창문에 수연이 서 있었다.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수연이 작게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었다.


저녁. 거실에 세 사람이 모여 있었다.

테이블 위에 와인 병과 잔들이 놓여 있었다. 유진 언니가 와인을 따랐다. 붉은 액체가 잔에 찰랑였다.

"그래서, 어땠어?"

유진 언니가 물었다.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이사회. 안건들. 의장 추천.

"의장이라..."

유진 언니가 와인잔을 돌렸다.

"수락해."

"언니?"

"수락하라고. 의장이 되면 더 깊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 기밀 문서, 연구 데이터, 재무 기록.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건 그거야."

논리적인 판단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생각해 볼게."

내가 말했다. 유진 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오래 끌지는 마. 기회는 빨리 잡아야 해."

"그리고 나는―"

유진 언니가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기존 연구 데이터베이스를 다 뒤져봤어. 신세틱 링크 관련 자료, 초기 프로젝트 기록, 연구원 명단까지. 전부."

"결과는?"

"은현철 박사의 데이터는 못 찾았어."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유진 언니가 미소 지었다.

"이 정도 장비와 인력이면 뭐든 할 수 있어. 시간문제야.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연을 바라보았다.

수연은 와인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시선이 테이블에 고정되어 있었다.

"수연아."

유진 언니가 불렀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수연이 고개를 들었다.

"아니에요. 그냥... 피곤해서."

"오늘은 일찍 자."

유진 언니가 말했다.

"내일도 바쁠 거야."

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와인잔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먼저 들어갈게요."

방으로 들어가는 수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유진 언니와 눈이 마주쳤다. 언니도 뭔가 느낀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진 언니가 일어섰다.

"나도 들어갈게. 내일 바쁘니까."

혼자 남았다.

와인잔을 들었다. 한 모금 마셨다.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창밖으로 검은 바다가 보였다. 달빛이 파도 위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수연의 눈물 젖은 얼굴이 떠올랐다. 나 버리지 마. 그 목소리가.

엘리베이터 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오늘 정말 예쁘시네요.

두 목소리가 겹쳤다. 밀려왔다 밀려갔다.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잔에 내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