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내남편

그녀, 내남편(22) - 윌리엄

장례식

보스턴의 하늘은 흐렸다.

장례식장 별실. 나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바깥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수아의 동료들. 친구들. 그녀를 사랑했던 사람들.

뒤에서 아이의 숨소리가 들렸다.

지수였다. 세 살. 검은 원피스를 입고 현철의 무릎에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두리번거렸다. 엄마가 어디 있냐고 묻다가, 지쳐서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물 마실래?"

현철이 물었다. 지수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문이 열렸다. 장의사가 고개를 숙였다.

"시간입니다."

현철이 일어섰다. 지수의 손을 잡았다.

나도 따라 일어섰다.


묘지는 언덕 위에 있었다.

보스턴 특유의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잔디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흐린 날이었다. 장례식에 어울리는 날이었다.

목사가 성경을 읽었다. 나는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관 위에 놓인 흰 장미만 바라보았다. 수아가 좋아하던 꽃.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방에 있던 꽃.

"...먼지에서 왔으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목사의 말이 끝났다.


기계음이 울렸다.

관이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검은 구멍 속으로. 땅속으로.

지수가 현철의 품에서 칭얼거렸다. 엄마가 어디 갔냐고. 집에 가고 싶다고.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관이 내려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수아가 저 안에 있었다. 차가운 나무 상자 안에. 다시는 웃지 않을, 다시는 말하지 않을 그녀가.

쿵.

관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들렸다.

인부 두 명이 삽을 들었다. 첫 번째 흙이 관 위에 떨어졌다. 마른 흙이 하얀 장미 위로 쏟아졌다. 두 번째. 세 번째. 장미가 사라졌다.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검은 옷의 그림자들이 언덕을 내려갔다.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며. 삶은 계속된다고. 그녀도 그걸 원했을 거라고.

현철이 다가왔다.

"윌리엄, 가자. 지수도 지쳤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윌리엄?"

"먼저 가."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현철이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그리고 지수를 안은 채 돌아섰다.

"현철."

내 입에서 말이 나왔다. 내가 의도한 게 아니었다.

현철이 멈췄다. 돌아보았다.

"다음엔 늦지 마."

현철의 표정이 굳었다. 뭐라고 되묻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발자국 소리가 멀어졌다.


수아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복도에서 현철을 붙잡았을 때.

형광등 불빛 아래 현철의 얼굴은 창백했다. 며칠 동안 잠을 못 잔 사람의 얼굴. 눈 밑에 검은 그림자가 져 있었다.

'방법이 있어.'

내가 그의 가운을 붙잡으며 말했다.

'T-오가넬. 쓸 수 있잖아.'

현철이 고개를 저었다. 천천히. 단호하게.

'안 돼.'

'왜? 네가 만든 거잖아. MELAS 치료를 위해서.'

'아직 안전하지 않아. 동물 실험에서 절반이 폐사했어.'

'절반은 살았다는 거잖아!'

내 목소리가 커졌다. 복도를 지나가던 간호사가 우리를 쳐다봤다.

'윌리엄, 진정해.'

'진정하라고? 수아가 죽어가는데?'

현철이 내 손을 떼어냈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T-오가넬은 신경 활동을 연료로 써. 에너지가 부족하면 숙주의 뇌를 착취해. 폭주하면 72시간 안에 뇌사야. 실패하면... 실패하면 수아가 더 고통받아. 내 손으로 아내를 더 아프게 만들 수는...'

'더 고통?'

웃음이 나왔다. 비웃음이었다.

'지금도 고통받고 있잖아.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의식도 흐릿하고. 지금보다 더 나쁠 수가 있어?'

'윌리엄...'

'네가 두려운 거잖아. 실패할까 봐. 네 손으로 수아를 죽일까 봐.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거지.'

현철의 얼굴이 굳었다.

'넌 몰라. 그 무게를.'

'알아.'

한 발짝 다가갔다.

'나도 수아를...'

현철의 눈이 커졌다. 입술이 떨렸다. 뭔가 말하려다 멈췄다.

'윌리엄... 너...'

'과학자로서 못 하겠다면 남편으로서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1%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뭐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건...'

'난 했을 거야. 내가 남편이었으면. 10%든 1%든 0.1%든. 뭐든 했을 거야.'

침묵이 흘렀다.

현철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도... 수아를 사랑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걸 쓸 수는 없어. 과학자로서만이 아니라... 남편으로서도. 수아를 더 고통스럽게 할 수는 없어.'

그는 고개를 저으며 돌아섰다.

'미안해, 윌리엄. 못 해.'

그가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나는 복도에 남았다. 혼자.

과학자로서.

남편으로서.

그는 둘 다였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아는 죽었다.


나라면 달랐을 것이다.

무슨 짓이든 했을 것이다. 검증되지 않았어도, 위험해도, 1퍼센트의 가능성만 있었어도.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지만 나는 남편이 아니었다.

결정권이 없었다.


수아가 아팠을 때. 그녀의 아파트를 찾아갔던 날.

현관문을 열자 거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수아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창백한 얼굴. 마른 손. 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지수는?"

"자고 있어."

수아가 미소 지었다. 아이 방을 가리켰다.

"현철은?"

"오늘도 연구실. 안 올 거야."

그녀의 목소리에는 원망이 없었다. 체념만 있었다.

나는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약병들이 보였다. 미토콘드리아 보조제. 진통제. 항경련제.

"윌리엄."

수아가 나를 불렀다.

"여기 와."

그녀가 자기 옆을 톡톡 두드렸다.

나는 망설였다. 하지만 움직였다. 그녀 옆에 앉았다. 수아의 체온이 느껴졌다. 가늘게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알고 있어."

그녀가 말했다.

"뭘?"

"당신이 날 좋아한다는 거. 처음 봤을 때부터."

숨이 멎었다. 부인하려 했다. 하지만 수아가 내 얼굴을 돌렸다. 그녀의 손이 내 턱을 잡았다.

"거짓말하지 마."

그녀의 눈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도 알아. 현철한테 시집갈 때도, 지수를 낳았을 때도... 당신은 계속 날 봤어. 그 눈으로."

"수아..."

"괜찮아."

그녀가 미소 지었다. 슬픈 미소였다.

"오히려 고마워. 내가 아파서 못생겨져도, 계속 그렇게 봐줘서."

그녀가 내 얼굴을 당겼다.

입술이 닿았다.

부드러웠다. 따뜻했다.

몇 초였을까. 영원 같았다.

"부탁이 있어."

그녀가 말했다.

"뭐든지."

내 입에서 즉시 나왔다.

"꼭 들어줘야 해. 약속해."

"약속해. 뭐든지 다 할게."

수아가 내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이었다.

"지수를 지켜줘."

"...뭐?"

"내가 죽으면 지수를 지켜줘. 현철은... 현철은 과학자야. 좋은 아빠지만, 위험할 때 신중해. 너무 신중해서 때를 놓칠 수도 있어."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당신은 달라. 당신은 무슨 짓이든 할 사람이야. 필요하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수아..."

"맹세해. 지수를 지킨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맹세해. 무슨 일이 있어도 지수를 지킬게."

목소리가 떨렸다.

수아가 다시 내 얼굴을 당겼다. 입술이 또 닿았다. 이번에는 더 길었다. 더 깊었다.

그녀의 손이 내 넥타이를 만졌다. 매듭을 풀기 시작했다.

"수아, 안 돼. 당신 몸이..."

"괜찮아."

그녀가 속삭였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넥타이가 풀렸다. 그녀의 손이 내 셔츠 단추로 향했다.

나는 그녀를 막지 않았다.

그녀의 체온은 낮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숨소리가 가늘었다. 부서질 것 같은 사람이었다.


해가 졌다.

어둠이 내려왔다. 묘비석에 새겨진 글자가 희미해졌다.

강수아

사랑하는 아내이자 어머니

나는 그 글자를 바라보았다. 손가락으로 글자를 따라 쓸었다. 차가운 돌이었다.

"가야 해."

혼잣말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 서 있으면 수아가 돌아올 것 같았다. 저 흙 아래서 일어나서, 웃으며 "장난이야"라고 말할 것 같았다.

어둠 속에 서서, 나는 기다렸다.


며칠이 지났다.

다시 묘지를 찾았다. 이번에도 혼자였다.

묘비석 앞에 무릎을 꿇었다. 새로 자란 잔디가 무릎을 적셨다. 차가웠다.

"수아."

목소리가 떨렸다.

"수아, 나야."

대답이 없었다. 당연했다. 그녀는 땅 아래 있었다.

"미안해."

눈물이 흘렀다.

"미안해, 내가 지켜주지 못해서."

참았던 것들이 터져나왔다. 어깨가 떨렸다. 숨이 막혔다.

"나는... 나는 아무것도 못 했어. 네가 아플 때도, 죽어갈 때도... 그냥 옆에서 지켜보기만..."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뜨거운 눈물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사랑했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현철한테 뺏겼을 때도, 지수가 태어났을 때도... 한 번도 멈춘 적 없어."

묘비석을 붙잡았다. 차가운 돌에 이마를 댔다.

"근데 이제... 이제 어떻게 해."


바람이 불었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서 새가 울었다.

세상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수아 없이도.

"지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왔다.

"지수는 내가 지킬게."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약속해. 무슨 일이 있어도. 무슨 짓을 해서라도."

묘비석에서 손을 뗐다. 일어섰다.

"너의 딸이니까. 네가 남기고 간 전부니까. 현철이 못 지킨다면 내가 지켜."


돌아가는 길.

보스턴의 밤하늘은 구름에 덮여 있었다.

나는 핸들을 잡고 앞을 바라보았다. 도로가 어둠 속으로 뻗어 있었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눈물 자국이 말라 있었다. 하지만 눈은 젖어 있지 않았다. 붉게 충혈된 눈. 그 안에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슬픔이 아니었다.

뒤에는 수아가 있었다.

앞에는 지수가 있었다.

나는 앞으로 달렸다. 액셀을 밟았다. 더 깊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