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내남편

그녀, 내남편(20) - 윌리엄

발견

장례식이 끝나고 일주일이 지났다.

칼릭스 본사 지하 3층. 서버실.

냉각 팬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수백 대의 팬이 동시에 돌아가는 소리는 단일한 소음이 아니라 하나의 기류 같았다. 공기 자체가 진동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형광등 불빛이 차갑게 내려와 금속 랙들을 비췄다. 랙과 랙 사이의 통로가 좁았다. 양쪽 벽면에 서버가 천장까지 쌓여 있었고, 상태 표시등이 초록색과 주황색으로 끊임없이 깜빡였다. 바닥에는 케이블이 뱀처럼 깔려 있었다. 온도가 낮았다. 냉각을 위해 실내 온도를 18도 이하로 유지하고 있었다. 셔츠 소매 위로 소름이 돋았다.

나는 터미널 앞에 앉아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비어 있었다.

T-오가넬 프로젝트 폴더. 30년간의 연구 데이터. 배양 프로토콜. 실험 로그. 전부 사라져 있었다. 폴더 구조만 남아 있었다. 텅 빈 디렉토리. 뼈대만 남은 건물 같았다.

현철은 그날 밤 말했다. 내일 새벽에 서버에서 삭제하고, 물리 백업도 폐기한다고.

하지만 현철은 그 새벽을 맞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움직였다. 복구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삭제된 파일의 흔적이라도 찾아야 했다. 키를 칠 때마다 딸깍거리는 소리가 서버실의 팬 소리 위에 얹혔다.

10분. 20분.

모니터의 푸른 빛이 얼굴 위에 일렁였다. 눈이 건조했다. 깜빡이는 것도 잊고 있었다.

화면에 로그가 떴다.

[삭제 기록: 2062년 7월 14일 23:47]

[삭제 대상: /project/t-organelle/recipe_1.0/*]

[삭제 방식: 보안 삭제 (복구 불가)]

레시피 1.0. 그건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검색어를 바꿨다. recipe_2.0.

결과 없음. 커서가 깜빡였다.

다시 검색. t-organelle_v2.

결과 없음.

improved. enhanced. modified. final.

전부 결과 없음.

커서만 깜빡이고 있었다. 서버 랙의 표시등이 규칙적으로 명멸했다. 데이터는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찾는 것은 없었다.


의자에 등을 기댔다. 낡은 사무용 의자가 삐걱거렸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 패널 사이로 냉각 덕트가 보였다. 은색 관이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차가운 공기가 그 안을 흐르고 있었다.

현철은 그날 밤 말했다. T-오가넬이 위험하다고. 폭주하면 죽는다고. 그래서 프로젝트를 중단한다고.

하지만.

그가 정말 30년의 연구를 그냥 버렸을까?

지수를 위한 치료제를 포기했을까?


서랍에서 바인더를 꺼냈다. 현철의 연구 노트. 장례식 후 그의 사무실에서 가져온 것이다. 검은 가죽 표지가 닳아 있었다. 모서리가 둥글게 마모되어 있었다. 30년 동안 손에 들려 있었던 흔적.

페이지를 넘겼다. 수식, 분자 구조도, 실험 메모. 현철의 필체는 의사답게 읽기 어려웠지만, 30년을 함께 일하며 익숙해졌다. 종이에서 희미한 냄새가 났다. 잉크와 종이, 그리고 현철의 연구실에 항상 배어 있던 시약 냄새. 지하 연구실의 냉각수와 소독약이 섞인.

중반부에서 손이 멈췄다.

[2062년 3월 15일]

v2.0 프로토타입 합성 완료. 에너지 수확 효율 제어 — 피드백 루프에 리미터 삽입. 폭주 임계점 이전에 자동 셧다운. 시뮬레이션 결과 안정성 98.7%.

페이지를 다시 읽었다. 한 번 더 읽었다. 손가락 끝이 글씨 위를 훑었다. 볼펜 자국이 종이에 홈을 만들어 놓은 것이 느껴졌다. 세게 눌러 쓴 글씨.

v2.0. 3월.

현철은 프로젝트 중단을 말하기 4개월 전에 이미 2.0을 완성하고 있었다.

[2062년 4월 2일]

14개월차 배양체 테스트. 에너지 수확률 안정. 신경 손상 없음. 텔로미어 복구 기능 정상. → MELAS 특화 분기 검토.

페이지를 넘겼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서버실의 팬 소리 속에서 바스락거렸다.

[2062년 5월 20일]

v2.0 최종 검증 완료. MELAS 특화 버전 분기 확정. 영생 기능 제거, mtDNA 결함 수정에 집중.

그 아래, 실험 데이터 사이에 한 줄이 끼어 있었다. 수식도 아니고 프로토콜도 아닌, 메모. 다른 글씨들과 다른 펜으로 쓴 것 같았다. 기울기가 달랐다. 손에 힘이 빠져 있을 때의 필체.

J를 위해.

현철은 연구 노트에 개인적인 메모를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30년간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그런 사람이 이 한 줄을 남겼다.

서버실의 냉각 팬이 주기를 바꿨다. 소리가 한 톤 높아졌다가 다시 내려왔다. 바인더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그 한 줄을 바라보았다.


6월, 7월. 기록이 달라졌다. 실험 데이터가 줄고, 보안 관련 메모가 늘었다. 글씨도 달라졌다. 급해졌다. 줄 간격이 좁아지고, 약어가 많아졌다.

[2062년 7월 10일]

v2.0 로컬 백업 완료. 서버 연결 해제. 독립 저장.

[2062년 7월 12일]

레시피 이전 완료. 오프라인.

[2062년 7월 14일]

1.0 서버 삭제 예정. 내일 03:00.

그 아래에, 다른 색 펜으로 한 줄이 더 있었다. 나중에 추가한 것이었다. 파란색 볼펜이 아니라 검은색 마커. 굵은 선.

프로젝트 종료를 W에게 통보.

W.

현철은 연구 노트에서 사람 이름을 약자로 쓰지 않았다. 시약이나 변수에 약자를 쓸 뿐이었다. 이 한 줄은 기록이 아니라 — 결심이었다. 내 이름을 쓰고 싶지 않을 만큼의.


바인더를 내려놓았다. 터미널 옆, 금속 선반 위에. 서버 랙의 표시등이 바인더의 검은 표지 위에 초록빛과 주황빛을 번갈아 흘렸다.

연구 노트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왜 2.0을 나에게 알리지 않았는지. 왜 "프로젝트 중단"이라고만 말하고 2.0의 존재를 숨겼는지. 노트에는 이유가 적혀 있지 않았다.

적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현철에게는 자명한 것이었으니까.

나는 잠시 앉아 있었다. 얼마나 앉아 있었는지 모르겠다. 서버실에는 시계가 없었다. 창문도 없었다. 시간의 감각이 희미해지는 공간. 냉각 팬만 돌고 있었다. 의자의 팔걸이가 차가워져 있었다. 내 체온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노트를 처음부터 다시 펼쳤다. 이번에는 감정이 아니라 정보를 찾았다.

"오프라인." 서버가 아닌 물리 저장소. "독립 저장." 연구소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은 장치.

어디에?


사무실을 뒤졌다. 현철의 사무실. 지하 1층, 연구실 옆. 장례식 이후 아무도 손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책상 위에 커피잔이 그대로 있었다. 안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서랍, 캐비닛, 책장. 논문 바인더, 학회 자료, 사진 한 장 — 수아의 어린 시절 사진이 책장 구석에 끼워져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연구소의 모든 서버를 스캔했다. 숨겨진 파티션, 암호화된 폴더, 백도어. 사무실로 돌아와 서버 로그를 돌렸다. 밤새. 모니터 네 개를 띄워놓고 검색 결과를 기다렸다. 커피를 세 잔 마셨다. 네 잔. 다섯 잔. 흔적조차 없었다.

현철은 철저했다.

2.0 레시피는 어딘가에 있다. 하지만 어디인지 아무도 모른다.

새벽이 왔다. 사무실 창으로 보스턴의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주차장의 아스팔트 위에 서리가 내려 있었다. 나는 블라인드를 내렸다.


2주가 지났다.

임원 회의실. 아침 8시.

회의실의 통유리 창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케임브리지의 스카이라인이 보였다. 오래된 벽돌 건물들 사이로 MIT의 돔이 희미하게 보였다. 테이블은 짙은 호두나무 원목이었고, 가운데에 홀로그램 프로젝터가 매립되어 있었다. 꺼져 있었다. 오늘 회의에는 자료가 필요 없었다.

테이블 맞은편에 유진이 앉아 있었다. 검은 정장, 단정한 머리. 하지만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짙었다. 커피잔이 앞에 놓여 있었다. 김이 나지 않았다. 오래 기다린 모양이었다.

"F-71의 상태는?"

"안정적입니다. 재활 완료 후 연구소 복귀했고, 신경 링크 검증도 통과했습니다."

"은현철 박사가 F-71을 마지막으로 관리한 시점이 언제지?"

유진이 잠시 생각했다. 손가락이 식은 커피잔의 가장자리를 돌았다.

"6월 말입니다. 바디 정기 점검."

"정기 점검 로그를 봤어. 기록이 빠져 있어. 점검 시간이 통상보다 2시간 길었는데, 추가 시간에 대한 기록이 없어."

유진의 표정이 변했다. 커피잔에서 손이 떨어졌다.

"뭘 말씀하시려는 건지..."

"2시간이면 바디의 신경 링크에 데이터를 심을 수 있어?"

침묵. 회의실 밖 복도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지나갔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혜인 씨의 바디에 은 박사님이 그런 일을 했을 거라고는..."

"가능한지 아닌지만 물었어."

"가능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창밖으로 구름이 움직이고 있었다. 테이블 위의 햇살 위치가 조금씩 이동하고 있었다.

"관찰해. F-71의 신경 링크 데이터 전체를 정밀 분석해. 이상 패턴이 있는지."

"알겠습니다."

유진이 일어서려다 멈췄다. 의자가 카펫에 눌린 채 소리를 내지 않았다.

"회장님."

"뭐?"

"F-71은... 혜인 씨는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안 되는 건가요?"

"알 필요가 없지."

유진이 나를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더 말하려는 것 같았다. 입술이 움직이다 멈췄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고 나갔다. 문이 닫혔다. 회의실에 커피 냄새와 정적이 남았다.


3개월이 지났다.

F-71의 신경 링크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숨겨진 데이터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F-71의 상태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감각 과부하 증상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유진이 보고했다. 같은 회의실. 같은 자리. 하지만 창밖의 나무들이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가을이 와 있었다. 낙엽이 주차장 위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작은 자극에도 과민 반응을 보이고, 감정 기복이 심해졌습니다. 1.0 레시피의 한계입니다."

"개선 방법은?"

"1.0으로는 없습니다."

유진이 멈칫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태블릿을 한 번 만졌다가 놓았다.

"2.0이 있다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창밖에서 바람이 불었다. 낙엽이 유리창을 스치며 지나갔다. 긁히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6개월 후.

F-71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같은 회의실. 창밖의 나무가 앙상해져 있었다. 겨울이었다. 하늘이 낮고 회색이었다. 보스턴의 겨울은 빛이 적었다. 회의실 안에 조명을 켜야 했다. 형광등이 테이블 위를 하얗게 비추고 있었다.

"회수해."

내가 말했다.

유진의 얼굴에서 혈기가 빠졌다. 형광등 아래서 피부가 종이처럼 보였다.

"바디를 회수해. 정밀 분석이 필요해. 신경 링크 하드웨어 레벨까지."

"하드웨어 레벨이면 바디를..."

"분해해야지."

유진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밀리며 카펫 위에서 둔탁한 소리를 냈다.

"혜인 씨가 들어 있어요."

"알아."

"의식이 있어요."

나는 유진을 바라보았다. 창밖에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레시피를 찾으면 새 바디에 이전할 수 있어."

"2.0이 없으면 새 바디도 같은 결과예요. 그걸 모르시는 건 아니잖아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모르는 게 아니었다.

"내일 아침까지."

내가 말했다. 유진은 서 있었다. 주먹을 쥐고 있었다. 서 있다가 나갔다. 문이 닫히기 전에 복도의 찬 공기가 잠깐 밀려들었다.


다음 날.

유진이 혜인을 데리고 사라졌다.

아침 8시에 임플란트 신호가 끊겼다. 마지막 위치는 연구소 지하 주차장. 그 이후 추적이 불가능했다. 보안 카메라를 돌렸다. 새벽 4시 32분, 유진이 혜인의 손을 잡고 비상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혜인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유진이 준비해온 것 같았다. 주차장에서 유진의 차가 출발하는 영상이 마지막이었다.

은현철이 만든 기술로, 은현철의 제자가 나를 배신했다.

한 시간 후 보안팀이 그들을 찾아냈다.

고속도로 휴게소. 도주 중이었다. 보안팀의 보고에 따르면 유진의 차는 휴게소 주차장 구석에 세워져 있었다. 엔진이 꺼져 있었다. 연료가 떨어진 건지, 멈춘 건지. 유진과 혜인은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정하지 못한 채.


F-71은 회수되었다.

정밀 분석 결과, 레시피는 없었다. 유진의 말이 맞았다. 혜인의 몸에는 아무것도 숨겨져 있지 않았다.

분석 과정에서 F-71의 신경계가 손상되었다. 복구가 불가능했다.

유진은 연구소 지하 감금실에 있었다. 콘크리트 벽. 형광등. 철제 문. 서버실과 같은 지하에, 같은 냉기 속에.

나는 사무실 책상 위의 바인더를 바라보았다. 현철의 연구 노트. 7월 14일 페이지가 펼쳐져 있었다. 책상 위의 조명이 그 페이지를 비추고 있었다. 검은색 마커의 굵은 글씨.

프로젝트 종료를 W에게 통보.

현철은 답을 알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할지.

틀리지 않았다.

레시피 2.0은 여전히 어딘가에 있다. 그리고 나는 틀리지 않은 현철의 예측대로 움직이고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멈출 이유가 없었다.

사무실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주차장의 아스팔트가 하얗게 덮여가고 있었다. 현철의 바인더 위에 내 손이 놓여 있었다. 닳은 가죽 표지가 서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