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내남편(18) - 현철
개발
터너 회장의 투자가 확정된 후, 나는 보스턴으로 향했다.
바이오젠. 세계 최고의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보유한 회사. 그들과의 협력 없이는 T-오가넬을 인체에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미토콘드리아를 대체할 인공 소기관을 만들었지만, 그것을 담을 그릇이 필요했다.
로건 공항에서 내릴 때 보스턴의 봄 공기는 차가웠다. 윌리엄이 옆에 있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눈에 무엇이 비치는지 알 수 없었다.
"긴장되나?"
윌리엄이 물었다.
"긴장보다는 기대라고 해야 하나."
거짓말이었다. 손바닥에 땀이 차 있었다. 오늘 미팅의 결과에 따라 연구의 방향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칼릭스가 가진 T-오가넬 기술과 바이오젠이 가진 바이오프린팅 기술. 이 둘이 만나면 무엇이 가능해지는가.
완전한 인체의 창조.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가 두려웠다. 과학자로서의 흥분과 인간으로서의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바이오젠 본사는 케임브리지의 바이오테크 클러스터 한가운데 있었다. MIT와 하버드 사이, 세계에서 가장 밀도 높은 생명과학 연구 지대.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건물 앞에 차가 섰다.
로비에서 우리를 맞이한 사람은 제임스 모리슨 박사였다. 바이오프린팅 부문 총괄. 마흔 중반의 남자였는데, 회색 눈에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악수하는 손의 힘은 단단했다.
"은 박사님, 윌리엄.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지하 2층 연구동으로 안내받았다. 보안 게이트를 세 번 통과했다. 생체 인식, 홍채 스캔, 정맥 패턴 확인.
"보안이 철저하군요."
"여기서 하는 일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복잡해지거든요."
그 말의 의미를 나는 나중에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연구동 내부는 거대한 클린룸이었다. 흰색 벽, 양압 환경, HEPA 필터를 통해 정화된 공기. 그 한가운데에 바이오프린터들이 줄지어 있었다.
"4세대 바이오프린터입니다."
모리슨 박사가 가장 큰 장비 앞에서 멈추며 설명했다.
"기존 프린터들이 단일 바이오잉크를 사용했던 것과 달리, 이건 최대 12가지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해상도는 10 마이크로미터. 세포 수준의 정밀도입니다."
옆에 있는 워크스테이션 화면에 복잡한 3D 모델이 회전하고 있었다. 혈관 네트워크처럼 보이는 구조.
"저건 뭡니까?"
"ARIA입니다. Adaptive Regenerative Intelligence Architecture. 바이오프린팅 설계 AI예요."
모리슨 박사가 화면을 가리켰다.
"프린팅 경로 최적화, 바이오잉크 조성 계산, 혈관 네트워크 설계. 인간이 수개월 걸릴 계산을 몇 시간 만에 처리합니다."
화면에서 AI가 실시간으로 혈관 배치를 시뮬레이션하고 있었다. 산소 확산 모델, 영양분 전달 경로, 세포 생존율 예측. 수천 가지 변수가 동시에 계산되고 있었다.
"인간의 손으로는 이 복잡성을 다룰 수 없어요. ARIA 없이는 장기 프린팅이 불가능합니다."
윌리엄이 장비에 다가가 표면을 손으로 쓸었다. 그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아이가 새 장난감을 발견한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 위험한 것을 발견한 사냥꾼 같은 눈빛.
"장기 프린팅은 어디까지 진행됐습니까?"
윌리엄이 물었다.
"피부, 연골, 각막은 이미 임상시험 중입니다. 방광과 요도는 이식 성공 사례가 있고요. 간과 신장은 아직 동물실험 단계입니다."
"심장은요?"
"가장 어렵습니다. 혈관화 문제 때문에."
혈관화. 그 단어에 귀가 쫑긋했다. 바이오프린팅의 가장 큰 난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직이 일정 두께를 넘으면 내부 세포들이 산소를 공급받지 못해요. 확산 한계가 약 200 마이크로미터입니다. 심장처럼 두꺼운 장기는 내부에 미세혈관 네트워크가 없으면 프린팅 후 괴사합니다."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테이블 위에 NDA 서류가 놓였다. 서명을 마친 후, 내가 T-오가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미토콘드리아를 개조하여 만든 새로운 세포소기관. 신경 활동을 에너지로 변환하여 세포 재생을 극대화하는 기술.
모리슨 박사는 처음에는 회의적인 표정이었다. 하지만 데이터를 보여주자 눈이 점점 커졌다.
"이게 사실입니까?"
"동물실험 결과입니다. 마우스, 토끼, 그리고 영장류."
"재생 속도가..."
"일반 세포의 약 10배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어요."
다른 데이터를 띄웠다. 뇌파 측정 그래프. 처음에는 정상이던 패턴이 점점 불규칙해지더니, 결국 평평한 선으로 변했다.
"뉴럴 쇼크입니다. T-오가넬이 신경 활동을 과도하게 소모할 때 발생해요. 특히 뇌에서."
모리슨 박사가 이마를 짚었다.
"그러니까 T-오가넬로 재생 능력을 가진 인체를 만들 수 있지만, 뇌가 버티지 못한다?"
"그렇습니다."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T-오가넬이 통합된 상태로 인체 전체를 프린팅할 수 있다면, 뇌도 처음부터 T-오가넬에 적응된 상태로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윌리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공 장기 프린팅이 아닙니다. 완전한 인체 창조. 그게 우리 목표입니다."
회의가 끝난 후, 모리슨 박사가 복도에서 나를 불러 세웠다.
"은 박사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엔 이 미팅을 거절하려고 했습니다."
그의 눈이 진지했다.
"윌리엄의 평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천재적이지만 위험하다고. 선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평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수락하셨습니까?"
"당신 때문입니다, 은 박사님. 당신 논문을 읽었어요. 윤리위원회 보고서도. 당신은 선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이에요. 당신이 이 프로젝트에 있다면 최소한 통제 불능으로 치닫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말이 무거웠다. 나에게 기대를 거는 것인지, 짐을 지우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본격적인 공동 연구가 시작되었다. 바이오젠에서 모리슨 박사를 포함한 5명의 연구원이 한국으로 파견되었다. 칼릭스 지하 3층에 공동 연구소가 설치되었다.
첫 번째 목표는 간 조직의 혈관화였다.
"오늘의 실험입니다."
모리슨 박사가 회의실 스크린에 3D 모델을 띄웠다.
"5 x 5 x 3 센티미터 간 조직. 내부에 200 마이크로미터 간격으로 혈관 성장 유도 채널을 배치합니다. 채널 직경은 150 마이크로미터. 벽면에 VEGF를 코팅하고, T-오가넬 내피세포를 주입합니다."
"T-오가넬 농도는?"
"표준의 50%로 시작합니다. 너무 높으면 세포 과활성화 위험이 있어요."
프린팅에 6시간이 걸렸다. 여러 카트리지가 번갈아 가며 바이오잉크를 토출했다. 간세포 잉크, 지지세포 잉크, 희생 재료 잉크. 층층이 쌓여가는 구조물을 모니터로 지켜보았다.
72시간 후 결과를 확인했다.
외부층은 건강한 간세포 색깔을 유지하고 있었다. 적갈색. 정상.
문제는 내부였다.
"채널 주변 세포들은 살아있어요. 하지만..."
모리슨 박사가 화면을 확대했다. 채널에서 200 마이크로미터 이상 떨어진 영역. 세포들이 변색되어 있었다. 괴사의 징후.
"채널 간격이 너무 넓었습니다."
"이론상 200 마이크로미터면 충분해야 하는데..."
"이론과 현실의 격차입니다."
두 번째 실험. T-오가넬 농도를 75%로 올렸다.
결과: 채널 간격 내에서 괴사는 줄었지만, 일부 영역에서 비정상적인 세포 증식이 관찰되었다. 암세포와 유사한 패턴.
"과활성화입니다. T-오가넬이 너무 강하면 세포 분열이 통제를 벗어나요."
세 번째 실험. 농도를 60%로 조정하고, 채널 간격을 150 마이크로미터로 줄였다.
결과: 일부 영역에서 혈관 형성 성공. 하지만 전체적인 네트워크 연결은 불완전.
네 번째 실험.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실패가 계속되었다.
12월의 어느 밤. 연구실에 나 혼자 남아 있었다.
ARIA에게 실패한 샘플들의 데이터를 입력하고 패턴 분석을 요청했다. 30분 후, AI가 결과를 내놓았다.
화면에 그래프가 떴다. T-오가넬 활성화 곡선과 혈관 형성 곡선. 두 곡선 사이에 시간차가 있었다.
T-오가넬이 활성화되면 처음 12시간은 세포 재생에 에너지가 집중된다. 그 후에야 혈관 형성이 시작되는데, 그때쯤이면 이미 채널에서 먼 세포들은 산소 부족으로 손상을 입은 상태다.
시간차를 줄이면 된다.
어떻게?
두 단계로 나누면 어떨까. 첫 번째 단계에서 혈관 형성만 집중시키고, 그 다음에 조직 프린팅을 한다.
혈관 네트워크를 먼저 만들고, 그 위에 조직을 프린팅한다.
역발상이었다. 기존 방식은 조직 안에 혈관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혈관 위에 조직을 만드는 건 어떨까.
2032년 1월.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안했다.
"2단계 프로토콜입니다."
회의에서 발표했다.
"1단계: T-오가넬 내피세포로 혈관 네트워크만 프린팅합니다. 3차원 격자 구조로. 2단계: 48시간 배양. 혈관 네트워크가 성숙하고 연결됩니다. 3단계: 혈관 네트워크 위에 간세포층을 프린팅합니다. 4단계: 전체 구조물을 배양. 간세포가 혈관 네트워크와 통합됩니다."
"ARIA로 시뮬레이션해봤습니다."
화면에 결과를 띄웠다. AI가 수천 가지 변수를 계산한 결과였다. 채널 간격, T-오가넬 농도, 배양 시간의 최적 조합.
"예상 성공률 67%. 기존 방식의 30%보다 두 배 이상입니다."
모리슨 박사가 눈을 빛냈다.
"역발상이군요. 조직 안에 혈관을 만드는 게 아니라, 혈관 위에 조직을 만드는 거군요."
열다섯 번째 시도.
현미경 앞에 모두가 모였다. 긴장감이 흘렀다.
모리슨 박사가 조직 단면을 화면에 띄웠다.
외부층. 정상. 중간층. 정상. 내부층. 정상.
"성공입니다."
모리슨 박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전체 조직에서 괴사 징후가 없습니다. 혈관 네트워크가 완전히 형성되었어요."
화면에 혈관 네트워크의 3D 재구성 이미지가 떴다. 붉은 선들이 조직 전체에 거미줄처럼 뻗어 있었다. 아름다웠다.
연구원들이 환호했다. 모리슨 박사와 악수를 나눴다.
"5 x 5 x 3 센티미터."
윌리엄이 중얼거렸다.
"이제 이걸 장기 크기로 확장해야지."
환호가 잦아들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 진짜 간의 크기는 이것의 수십 배. 확장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희망을 느꼈다.
혈관화의 벽을 넘었다. 다음은 골격이었다.
골격 프린팅은 연조직과 완전히 달랐다.
바이오젠 팀이 추가 장비를 들여왔다. 골격 프린팅 전용 시스템.
"뼈는 유기물과 무기물의 복합체입니다."
모리슨 박사가 실제 뼈의 단면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콜라겐 섬유가 유기 기질을 이루고, 그 위에 하이드록시아파타이트 결정이 침착됩니다. 콜라겐은 유연성을, 무기 결정은 강도를 제공해요."
"그걸 프린팅으로 재현해야 하는 거군요."
"문제가 두 가지 있어요."
그가 손가락 두 개를 세웠다.
"첫째, 프린팅 직후의 뼈는 무기 결정이 없어서 물렁물렁합니다. 광물화 과정이 필요해요. 자연 상태에서는 몇 달에서 몇 년이 걸립니다."
"둘째, 뼈의 구조가 균일하지 않습니다. 바깥쪽은 피질골이에요. 단단하고 치밀하죠. 안쪽은 해면골입니다. 스펀지처럼 다공성이고, 골수로 채워져 있어요. 두 구조를 한 번에 프린팅해야 합니다."
첫 번째 시도. 대퇴골을 프린팅했다. 인체에서 가장 크고 강한 뼈.
콜라겐 기반 바이오잉크에 조골세포를 혼합했다. 프린팅은 18시간이 걸렸다. 형태는 완벽했다. CT 스캔과 밀리미터 단위까지 일치했다.
문제는 강도였다.
역학 테스트 결과, 프린팅된 뼈는 실제 뼈 강도의 8%에 불과했다. 성인 남성의 체중도 지탱하지 못할 수준.
"광물화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새로운 프로토콜을 개발했다.
1단계: 콜라겐-조골세포 바이오잉크로 뼈 형태 프린팅
2단계: 72시간 배양으로 세포 안정화
3단계: T-오가넬 조골세포 주입
4단계: 광물화 용액 침지 (칼슘, 인산 이온 포함)
5단계: 2주간 광물화 촉진 배양
결과는 놀라웠다.
T-오가넬이 적용된 조골세포는 일반 조골세포보다 5배 빠르게 무기 결정을 침착시켰다. 2주 만에 강도가 실제 뼈의 78%까지 도달했다.
"몇 번 더 최적화하면 100%에 근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리슨 박사가 데이터를 보며 말했다.
윌리엄이 끼어들었다.
"78%면 충분해. 다음으로 넘어가자. 관절이야. 뼈만 있으면 뭐해. 움직여야지."
관절. 뼈보다 더 복잡한 문제였다.
"무릎 관절 하나에 있는 구조를 봅시다."
모리슨 박사가 해부학 모델을 띄웠다.
"대퇴골 끝, 경골 상단, 슬개골. 세 개의 뼈가 만납니다. 그 사이에 연골. 충격을 흡수하고 마찰을 줄여요. 인대가 네 개. 전방십자인대, 후방십자인대, 내측측부인대, 외측측부인대. 뼈를 연결하고 안정성을 제공합니다. 반월판이 두 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싸는 활막이 관절액을 분비합니다."
"이걸 전부 프린팅해야 하는 겁니까?"
"그리고 기능적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각 구조를 따로 프린팅해서 조립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경계면이 약해진다. 실제 관절은 모든 구조가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날 밤 발생학 논문들을 뒤졌다. 태아의 관절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발견이 있었다.
"태아의 관절은 처음에 하나의 연속된 조직입니다."
다음 날 회의에서 발표했다.
"중배엽 줄기세포로 이루어진 연골 원기. 그 안에서 세포들이 위치에 따라 뼈가 될 부분, 연골이 될 부분, 인대가 될 부분으로 분화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따로 프린팅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연속된 줄기세포 구조물을 프린팅한 뒤, 위치별로 다른 분화 신호를 주는 겁니다. 공간적 분화 제어."
"성장인자 농도 구배를 이용합니다. BMP가 높은 곳은 뼈가 되고, 낮은 곳은 연골이 됩니다. TGF-β가 있는 곳은 인대가 되고."
"구배 설계가 문제겠군요."
"ARIA가 계산합니다."
화면에 무릎 관절 모델이 떴다. AI가 실시간으로 성장인자 분포를 시뮬레이션하고 있었다. 색깔로 표시된 농도 구배. 빨간색에서 파란색으로 변하는 그라디언트.
"ARIA에게 목표 조직 분포를 입력하면, 필요한 성장인자 구배를 역산합니다. 500 마이크로미터 해상도로 설계할 수 있어요. 자연 관절과 거의 동일한 전이 구간이 형성됩니다."
레이어별 다중 소재 프린팅. 같은 줄기세포 바이오잉크를 기반으로 하되, 부위별로 다른 성장인자를 그라디언트 형태로 배치하는 방식이었다.
손가락 관절부터 시작했다. 가장 작은 것부터.
3주간의 배양 후 결과를 확인했다.
"굴곡 각도 87도. 실제 손가락 관절 평균이 90도니까... 거의 완벽합니다."
관절이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로봇 팔에 장착된 프린팅 손가락이 구부러졌다 펴졌다 했다. 자연스러웠다.
"다음은 무릎입니다. 그리고 척추. 그리고 전체 골격."
윌리엄이 말했다.
신경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어려웠다.
회의실에 바이오젠 팀 전원이 모였다. 모리슨 박사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신경계는 저희 기술로 프린팅할 수 없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이유를 설명해주시죠."
윌리엄이 눈을 좁혔다.
"규모와 복잡성의 문제입니다."
모리슨 박사가 숫자들을 나열했다.
"인체의 말초신경에는 약 70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습니다. 각 신경세포는 축삭이라는 긴 돌기를 뻗어 목표 조직에 연결돼요. 운동신경은 근육에, 감각신경은 피부와 기관에."
화면에 신경세포 이미지가 떴다. 세포체에서 뻗어나간 축삭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문제는 연결의 특이성입니다. 검지손가락을 움직이는 운동신경은 정확히 검지 근육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 '주소 지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우리는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장인자 농도 구배를 이용하면 안 됩니까? 골격에서 했던 것처럼."
"신경 유도에도 성장인자가 관여합니다. NGF, BDNF, netrin 같은. 하지만 뼈와는 스케일이 다릅니다. 관절을 만들 때 우리는 수백 개의 세포 집단을 제어했습니다. 신경을 만들려면 수십억 개의 개별 축삭을 제어해야 해요."
바이오젠 팀은 신경계를 포기하고 다른 접근을 제안했다. 신경이 없는 바이오 바디. 외부에서 전기 신호로 제어하는 방식.
윌리엄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바이오 바디가 아니야. 기계와 생체의 짜깁기지. 우리 목표는 완전한 인체 창조야. 타협은 없어."
회의가 교착 상태에 빠졌다.
나는 다른 방향을 모색했다.
신경계 전체를 프린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일부만 프린팅하고, 나머지는 스스로 자라게 하면 어떨까.
발생학 교과서를 다시 펼쳤다. 태아의 신경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신경관에서 시작한다. 척수와 뇌가 될 원시 구조. 거기서 신경세포가 분화하고, 축삭을 뻗어 목표를 찾아간다. 화학적 신호를 따라서. 마치 냄새를 추적하는 개처럼.
핵심은 '경로'였다.
일주일 후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신경 성장 유도 채널입니다. 혈관화 때 했던 것과 비슷한 접근입니다. 신경 자체를 프린팅하는 게 아니라, 신경이 자랄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겁니다."
화면에 3D 모델을 띄웠다. 바이오 바디의 내부에 가는 관들이 뻗어 있었다.
"직경 50 마이크로미터의 채널입니다. 내벽에 신경 성장인자를 코팅하고, 방향성을 가진 농도 구배를 형성합니다. 채널 입구에 신경줄기세포를 심으면 축삭이 채널을 따라 자라 들어갑니다."
"목표 특이성은 어떻게 해결합니까? 어떤 축삭이 어떤 채널로 들어갈지를..."
"완전한 제어는 포기합니다."
내 말에 방 안이 조용해졌다.
"자연도 완전한 제어를 하지 않습니다. 신경 발생 과정에서 많은 축삭이 잘못된 곳에 연결돼요. 그런 연결은 나중에 제거됩니다. 사용되지 않으면 퇴화하니까. 시냅스 가지치기."
"학습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윌리엄이 물었다.
"네. 프린팅된 바이오 바디가 '걷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태아가 자궁 안에서 움직임을 연습하듯이."
실험이 시작되었다.
먼저 단순한 구조부터. 팔 하나.
골격, 근육, 혈관을 프린팅한 후, 신경 유도 채널을 삽입했다. 척수 위치에 운동신경줄기세포를, 피부 위치에 감각신경줄기세포를 심었다.
3주간 배양.
채널 내부를 현미경으로 확인했다. 축삭들이 자라고 있었다. 가느다란 실처럼 채널을 따라 뻗어가고 있었다.
"성장 속도가 예상보다 빠릅니다. 하루에 약 3밀리미터. 정상 속도의 5배예요."
"T-오가넬 덕분이겠죠."
6주 후, 축삭들이 목표 근육에 도달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연결이 무작위입니다."
전기 자극 테스트를 했다. 척수 위치의 신경세포에 전기 자극을 가했다. 의도는 검지손가락을 움직이는 것.
결과는 팔 전체가 경련했다. 모든 근육이 동시에 수축했다.
"연결은 형성되었지만 '올바른' 연결이 아닙니다."
ARIA가 시냅스 가지치기를 제어했다. AI가 실시간으로 근육 반응을 모니터링하고, 올바른 연결과 잘못된 연결을 구분하여 강화 신호와 억제 신호를 보냈다.
매일 수백만 번의 자극-반응 사이클을 수행했다. 인간이 수동으로 하면 수십 년 걸릴 학습량을 AI가 몇 달 만에 처리했다.
3개월간의 AI 주도 훈련 후.
검지를 구부리라는 신호에, 검지가 구부러졌다. 다른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성공입니다."
작은 성공이었다. 하지만 의미 있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뇌.
860억 개의 신경세포. 100조 개의 시냅스 연결. 우주에서 알려진 가장 복잡한 구조.
"뇌를 프린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모리슨 박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동의합니다. 연결의 복잡성 때문만이 아닙니다. 뇌는 단순한 하드웨어가 아닙니다. 기억, 성격, 의식. 그것들이 860억 개 신경세포의 연결 패턴에 인코딩되어 있습니다. 그걸 복제하는 것은 영혼을 복제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안이 필요했다. 뇌 이식. 기존 뇌를 프린팅된 바디에 이식하는 것.
그날 밤, 윌리엄과 둘이 남았다.
"영장류로 시도해보자. 뇌를 프린팅된 바디에 이식하는 실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것은 새로운 영역이었다.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윤리위원회 승인이 필요해."
"바이오젠 승인은 필요 없어. 이건 칼릭스 단독으로 해."
윌리엄의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무언가에 홀린 것 같은 눈빛.
"현철, 우리가 여기까지 왔어. 혈관, 골격, 신경. 남은 건 뇌뿐이야. 이 벽만 넘으면 인간을 창조할 수 있어."
"윌리엄, 우리가 하려는 게 정말 옳은 건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야. 가능한가 불가능한가의 문제지."
그 대답이 나를 두렵게 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과학자로서의 호기심이 윤리에 대한 두려움보다 컸다.
그것이 나의 한계였다.
첫 번째 완전체 조립 시도. 대상은 붉은털원숭이. 마카크. 코드명 M-01.
바이오젠에서 성장 탱크가 도착했다. 높이 2.5미터, 직경 1미터의 원통. 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영양액이 채워져 있었다. 그 안에 로봇 팔들이 보였다.
조립 순서.
1단계: 골격. 프린팅된 뼈들을 관절로 연결하고 탱크 중앙에 고정.
2단계: 혈관 네트워크. 주요 동맥과 정맥을 골격에 부착. T-오가넬 내피세포로 미세혈관 형성 유도.
3단계: 근육층. 골격에 근육을 부착. 힘줄과 인대로 연결.
4단계: 장기. 심장, 폐, 간, 신장 등을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고 혈관에 연결.
5단계: 신경계. 척수를 삽입하고 신경 유도 채널을 통해 말초신경 성장 유도.
6단계: 피부. 최외층을 덮음.
7단계: 통합 배양. 전체 시스템이 하나로 융합되도록 배양.
ARIA가 전체 과정을 제어했다. AI는 각 부품의 현재 상태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최적의 조립 순서와 타이밍을 계산했다.
조립에 72시간. 통합 배양에 4주.
2주 차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프로그래밍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생명의 본능처럼. 3주 차에 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탱크에서 바디를 꺼냈다. 호흡 유도. 폐가 팽창했다. 수축했다. 인공호흡기 없이 자발 호흡으로 전환되었다.
심장은 분당 120회. 혈압 90/60.
발바닥을 바늘로 찔렀다. 다리가 움찔했다. 반사작용.
하지만 두개강은 비어 있었다. 완벽한 몸이지만 영혼이 없는 빈 그릇.
두 번째 완전체. 뇌 이식을 시도했다.
기증자는 실험실에서 사육하던 마카크. 10살 된 수컷. 건강했지만 실험 일정에 따라 안락사 예정이었던 개체.
수술은 18시간이 걸렸다.
두개골과 척추를 열고, 뇌와 척수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조심스럽게 분리했다. 뇌간에서 시작해 흉추까지 이어진 중추신경계 전체. 혈관을 하나하나 절단하고, 새로운 바디의 두개강과 척추관에 배치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척수 하부의 연결이었다. 기증자의 척수 끝부분과 새로운 바디의 척수를 흉추 레벨에서 접합해야 했다. 수백만 개의 신경 섬유를 정확히 매칭해야 하는 미세 수술. 밀리미터 단위의 정밀도가 요구되었다.
T-오가넬 신경성장인자를 접합 부위에 집중 투여했다. 축삭 재생을 촉진하고 연결을 강화하기 위해.
수술이 끝났을 때, 나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72시간 후.
M-01이 눈을 떴다.
처음에는 초점이 없었다. 동공이 흔들렸다. 하지만 점점 안정되더니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연구원들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M-01의 시선이 나에게 멈추었다. 눈이 마주쳤다.
그 눈에 무언가가 있었다. 혼란. 두려움. 그리고 인식.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뇌 기증자였던 마카크가 살아있을 때, 나는 종종 그에게 바나나를 주었다.
"바나나 가져와."
조용히 말했다. 연구원이 바나나를 건넸다. 나는 그것을 M-01 앞에 들었다.
M-01의 손이 움직였다. 느리고 어색하게. 하지만 분명히 의도가 있는 움직임이었다. 손가락이 바나나를 잡으려 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다.
바나나를 입으로 가져갔다. 씹었다. 삼켰다.
"성공입니다."
모리슨 박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연구원들이 환호했다. 악수를 나누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해냈다. 살아있는 뇌를 인공 몸에 이식하고, 그 존재가 살아 움직이게 만들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다.
M-01은 안정적이었다. 걷고, 먹고, 주변을 탐색했다. 새로운 몸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나를 보면 다가왔다. 바나나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T-오가넬과 이식된 뇌 사이의 상호작용은 예상했던 것보다 안정적이었다. 거부 반응이 거의 없었다.
윌리엄이 내 옆에 섰다.
"다음은 인간이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M-01을 바라보고 있었다. 케이지 안에서 움직이는 원숭이. 새 몸에 적응한 존재. 창살에 손을 대고 밖을 내다보는 눈.
이 기술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
나는 MELAS를 치료하기 위해 이 연구를 시작했다. 지수를 지키기 위해.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만든 것은 그 이상이었다. 그리고 윌리엄은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M-01이 바나나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나도 그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