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내남편(17) - 윌리엄
칼릭스
칼릭스 연구소가 문을 연 것은 투자 계약 후 1년이 지나서였다.
보스턴 외곽, 케임브리지와 가까운 곳에 4층짜리 건물이 세워졌다. 붉은 벽돌 건물들 사이에 놓인 회색 콘크리트와 유리. 주차장에는 전기차 충전기가 줄지어 있었고, 입구 앞 잔디밭에 아직 심은 지 얼마 안 된 단풍나무 두 그루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바이오텍 회사였다. 안에서 무슨 연구가 진행되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는 건물 앞에 서서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11월의 뉴잉글랜드 바람이 코트 깃을 파고들었다.
CALIX LABORATORIES
칼릭스. 성배. 현철이 지은 이름이었다.
"영생의 성배를 찾는다는 의미야?"
내가 물었을 때 현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수아를 담을 그릇이라는 의미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연구소는 세 개의 팀으로 나뉘었다.
T-오가넬 개발팀. 바이오 바디 설계팀. 그리고 신경 인터페이스팀.
현철은 T-오가넬 개발팀을 직접 이끌었다. 지하 1층의 연구실 세 개를 통째로 쓰고 있었다. 창문이 없는 공간. 항온항습기가 끊임없이 울리고, 클린룸의 양압 장치가 공기를 밀어내는 소리가 복도까지 들렸다. 현철의 아이디어였고, 현철의 이론이었고, 현철만이 완성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나는 경영을 맡았다. 4층의 유리벽 사무실. 책상 위에 재무제표와 인력 운용 보고서가 쌓여 있었다. 예산 관리, 인력 충원, 아버지와의 연락. 그리고 아버지의 인공 장기 회사 '바이오젠 솔루션스'에서 파견된 기술자들을 관리하는 것도 내 일이었다.
"협력이 아니라 감시야."
현철이 말했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바이오젠 기술자 두 명이 옆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감시가 맞아. 하지만 쓸모 있는 감시야. 바이오젠 기술자들이 장기 조직 배양에서는 우리보다 앞서 있어."
현철은 반박하지 않았다. 사실이었으니까. 트레이 위의 샌드위치를 반만 먹고 연구실로 내려갔다. 나는 남은 커피를 마시며 바이오젠 기술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투자 후 2년.
T-오가넬의 첫 번째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다.
현철이 나를 연구실로 불렀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을 때마다 공기가 바뀌었다. 따뜻하고 건조한 지상과 달리, 지하는 서늘하고 무균 처리된 공기가 피부를 감쌌다. 클린룸 앞에서 방진복을 입고 에어샤워를 거쳤다.
현철이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눈 아래 그림자는 여전했지만, 눈빛이 달랐다.
"봐."
현철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전자현미경 영상이었다. 화면이 초록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세포 안에 작은 구조물이 보였다. 미토콘드리아와 비슷하지만, 더 복잡한 형태. 막 구조가 이중으로 접혀 있었고, 표면에 미세한 돌기들이 빼곡했다.
"이게 T-오가넬?"
"응. 세포 안에 안착했어. 그리고."
현철이 다른 화면을 열었다. 그래프가 나타났다. 파란 선이 수평을 유지하고 있었다.
"텔로미어 길이가 유지되고 있어. 세포 분열 후에도 줄어들지 않아."
"수아한테 쓸 수 있어?"
"아직 멀었어. 세포 실험일 뿐이야. 동물 실험, 안전성 검증, 임상 시험. 최소 5년은 더 걸려."
"그래도 첫 걸음이잖아."
현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가가 젖어 있었다. 모니터의 초록빛이 그의 얼굴에 반사되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분기 보고서를 보내면서 T-오가넬 프로토타입 완성 소식을 포함시켰다. 다음 날, 화상 회의 요청이 왔다.
4층 사무실의 블라인드를 내렸다. 화면을 켰다. 보스턴의 오후 햇살이 블라인드 틈새로 가늘게 들어와 책상 위에 줄무늬를 만들었다.
"T-오가넬 완성은 좋은 소식이다."
화면 속에서 아버지가 말했다.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내가 보낸 보고서. 아버지의 서재가 배경으로 보였다. 어두운 월넛 책장. 가죽 의자. 항상 같은 자리.
"바이오 바디 쪽 진행은."
"아직 T-오가넬 최적화 단계입니다. 바이오 바디는 그 다음입니다."
"로드맵에는 올해 하반기에 프로토타입 착수로 되어 있는데."
나는 화면을 봤다. 아버지가 보고 있는 건 내가 작성한 로드맵이었다. 투자 유치 당시 내가 직접 잡은 일정. 내 서명이 들어간 문서.
"일정이 밀렸습니다. T-오가넬 최적화에 예상보다 시간이 걸려서."
"얼마나 더 필요하냐."
"최소 1년."
아버지가 서류를 내려놓았다. 책상 위에 놓인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서도 들렸다.
"윌리엄. 바이오젠 쪽에서 분기마다 보고를 받고 있다. T-오가넬 팀이 바이오 바디 설계팀과 거의 협업하지 않는다는 보고가 올라와 있어."
나는 잠시 멈췄다. 감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온 햇살 줄무늬가 손등 위에 놓여 있었다.
"은 박사가 T-오가넬에 집중하고 있어서 —"
"그의 우선순위가 MELAS 치료인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내 투자 조건은 MELAS에서 끝나지 않는다. 네가 제시한 로드맵이야, 윌리엄. 네가 약속한 일정이고."
그 말이 정확히 맞았기 때문에 반박할 수 없었다.
"6개월."
아버지가 말했다.
"6개월 안에 바이오 바디 프로토타입이 나와야 한다. 다음 분기 투자 심사에 보여줄 게 필요해."
"현철과 논의해보겠습니다."
"논의가 아니라 실행이다. 이건 네 일이야."
화면이 꺼졌다.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블라인드 너머로 보스턴의 하늘이 흐리게 보였다.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책상 위의 보고서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내 서명이 들어간.
문제는 아버지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로드맵을 쓴 건 나였다.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아버지의 언어로 일정을 잡았다. 그때는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철은 T-오가넬에만 몰두했고, 바이오 바디 팀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했다. 현철의 연구를 보호하면서, 아버지의 일정을 맞추는 것.
먼저 현철에게 가기 전에 바이오 바디 설계팀의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2층의 설계실. 3D 모델링 화면이 벽면 가득 띄워져 있었다. 인체 장기의 단면도, 근섬유 배열 시뮬레이션, 혈관 네트워크 설계도. 팀 리더를 불러 현재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정리했다. 6개월 안에 프로토타입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무엇이 빠져야 하는지.
답은 나왔다. 가능했다. 단, T-오가넬의 안전성 검증을 건너뛰면.
현철의 연구실로 갔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항온항습기 소리가 점점 커졌다. 연구실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 유리창 너머로 현철이 보였다. 현미경에 눈을 대고 있었다. 옆에 커피가 식어 있었다. 김이 나지 않았다.
문을 열었다. 냉각 장비의 저주파 울림이 공기를 타고 전해졌다.
"바이오 바디 이야기를 해야 해."
현철이 의자를 돌렸다. 현미경에서 눈을 떼면서 한 번 눈을 깜빡였다. 빛에 적응하는 동작.
"아버지?"
"로드맵 일정이 밀렸어. 6개월 안에 프로토타입이 필요해."
"6개월은 안 돼."
"안 되는 이유를 말해봐."
현철이 일어나 화이트보드 앞으로 갔다. 보드에는 이미 수식과 도표가 빼곡했다. 빈 구석을 찾아 마커를 집었다. 마커 뚜껑 빠지는 소리가 났다.
"T-오가넬의 문제야. 세포 실험에서 확인했는데, T-오가넬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활동 전위를 요구해. 에너지 수확 효율이 올라가는 건 좋은데, 그 과정에서 숙주 신경을 과잉 자극해."
현철이 그래프를 그렸다. 시간 축을 따라 올라가는 곡선. 빨간색으로 임계선을 그었다.
"바이오 바디에 적용하면?"
"감각이 증폭돼. 일반인의 세 배, 네 배. 모든 감각이. 뇌가 처리하지 못하면 전두엽부터 기능이 떨어져. 이성이 사라지고 본능만 남아."
"치명적이야?"
"바로 죽지는 않아. 하지만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질 수 있어."
나는 잠시 생각했다. 화이트보드 위의 빨간 임계선을 바라보았다.
"프로토타입에 뇌는 포함 안 되지?"
"뇌 없이 몸체만 만들면 가능하긴 해. 하지만 —"
"그러면 감각 과부하 문제는 프로토타입 단계에서는 발생하지 않잖아."
현철이 나를 바라보았다. 마커를 든 손이 멈춰 있었다.
"윌리엄. 프로토타입은 결국 다음 단계로 가. 뇌를 연결하는 단계가 오면 그때 문제가 터져."
"그건 다음 단계에서 해결하면 돼. 지금 필요한 건 프로토타입이야."
"네 아버지한테 보여주려고?"
"연구를 계속하려면 투자가 유지돼야 해. 투자가 유지되려면 결과물이 있어야 하고."
현철이 한참 나를 바라보았다. 냉각 장비의 울림이 둘 사이를 채우고 있었다.
"수아는 요즘 좋은 날이 거의 없어."
내가 말했다. 의도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온 뒤에 거두지 않았다.
현철의 표정이 변했다. 마커를 내려놓았다. 뚜껑을 끼우지 않았다. 잉크 냄새가 희미하게 퍼졌다.
"프로토타입은 만들겠어. 뇌 없이, 몸체만. 하지만 감각 과부하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인체 적용은 안 해."
"알겠어."
현철이 다시 모니터로 돌아갔다. 의자가 바닥을 긁었다. 나는 연구실을 나왔다. 문이 닫히면서 냉각 장비 소리가 절반으로 줄었다.
6개월 후.
바이오 바디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다.
M-01. 첫 번째 바이오 바디.
남성형 몸체. 모든 세포에 T-오가넬이 내장되어 있었다. 인공 장기, 인공 근육, 인공 피부. 뇌는 없었다.
아버지가 연구소를 방문했다. 검은 세단이 주차장에 멈추고, 운전사가 문을 열었다. 아버지가 코트 깃을 세우고 내렸다. 보스턴의 겨울바람이 주차장을 가로질렀다. 입구에서 아버지를 맞이했다. 악수. 아버지의 손이 차가웠다.
나는 그를 지하 연구실로 안내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갈 때 귀가 먹먹해졌다. 문이 열리자 무균 처리된 공기와 냉각수 순환 소리가 밀려왔다. 복도 조명이 푸르스름했다. 신발 소리가 에폭시 바닥에 울렸다. 아버지의 구두 소리. 내 구두 소리. 반 보폭 차이로.
이중 잠금 도어를 지나 보관실에 들어섰다. 실내 온도가 한 단계 더 내려갔다. 유리관 안에 M-01이 떠 있었다. 눈을 감은 채로. 배양액이 연한 호박색이었다. 기포가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유리관 표면에 결로가 맺혀 있었다. 모니터에 심박수, 체온, 세포 분열 속도가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아버지는 유리관 앞에 서서 오래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리 너머의 얼굴. 감은 눈. 완벽한 피부. 숨쉬지 않는 가슴. 그리고 유리관 표면에 손을 대었다. 결로가 손가락 자국을 남겼다.
"움직이나?"
"뇌가 없어서 자율적 움직임은 없습니다. 하지만 외부 신호에 반응합니다."
바이오젠에서 파견된 기술자가 콘솔을 조작했다. 키보드 치는 소리가 보관실의 정적을 깼다. M-01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배양액 안에서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 기포가 손가락 사이에서 일어났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분기에 시연회를 열자. 투자자들에게 보여줘야 해."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유리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유리 위의 손가락 자국 너머로 M-01의 얼굴이 보였다.
"다음 버전 일정을 잡아라. 뇌까지 포함하는."
나는 대답했다.
"현철과 논의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유리관에서 시선을 돌려 나를 보았다. 푸르스름한 조명 아래서 아버지의 눈이 어둡게 보였다.
"네가 잡아. 은 박사는 연구에 집중시키고, 일정은 네가 관리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나갔다. 구두 소리가 복도를 따라 멀어지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현철이 구석에서 나왔다. 보관실 뒤편의 모니터링 룸. 시연 내내 거기 서 있었다. 유리 칸막이 너머로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다음 버전. 뇌까지."
현철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일정은 내가 잡는다고 했어. 감각 과부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뇌 연결은 로드맵에 안 넣을 거야."
"네 아버지가 그걸 받아들이겠어?"
"받아들이게 하는 건 내 일이야."
현철이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를 더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나도 더 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