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내남편

그녀, 내남편(14) - 지수

방문자

제주도에서 돌아온 뒤, 수연은 거실 한구석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창밖을 바라보지만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햇살이 들어오면 눈을 감았고, 어둠이 내리면 그제야 눈을 떴다. 내가 출근하고 집에 혼자 남겨지면, 숨만 쉬며 존재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필요한 말 외에는 입을 열지 않았다.

'키스만 했어.'

제주도에서 수연이 한 말이었다. 그 말을 믿어야 했다. 믿고 싶었다.

그런데 왜 자꾸 의심이 드는 걸까. 바에서 돌아온 수연의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던 것. 입술이 부어 있던 것. 드레스 지퍼가 반쯤 내려가 있던 것.

키스만으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물을 수 없었다. 진실을 들으면 끝이니까.


그러던 어느 저녁이었다.

현관 인터폰이 울렸다. 모니터를 확인했다.

"이유진 수석님...?"

40대 초반의 여자가 화면에 서 있었다. 날카롭고 지적인 인상. 수척한 얼굴이었지만 눈빛만은 형광등처럼 밝았다.

칼릭스. 아버지의 연구소. F-72를 만든 곳.

뒤에서 수연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급하게 현관으로 향했다.

"수석님! 아니, 유진 언니! 어떻게 여기까지..."

"지수야... 잘 지냈니?"

유진 언니가 들어왔다. 그녀의 시선이 거실로 향했다. 거기 수연이 서 있었다.

시간이 멈췄다.

유진 언니의 눈이 수연을 훑었다.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마치 스캐너로 읽어내듯. 그녀의 동공이 미세하게 확장되었다. 무언가를 인식할 때 나타나는 반응.

'알아보는 건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수연은 현관 쪽을 보고 있었다. 아니, 유진 언니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코를 살짝 벌름거리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맡는 것처럼.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어머... 지수야. 손님이 계셨네?"

유진 언니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하지만 뭔가 느껴졌다. 숨이 평소보다 가빠진 것 같은.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수연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아... 언니. 인사하세요. 제 사촌 동생 수연이에요. 제주도에서 왔어요."

사촌 동생.

그 단어가 내 입에서 나왔다. 수연에게 어떻게 소개할지 한 번도 상의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입이 먼저 움직였다.

수연의 어깨가 미세하게 움찔했다. 나를 보았다. 짧은 시선이었지만, 거기에 뭔가 있었다. 놀람인지, 다른 무엇인지.

유진 언니가 수연에게 다가갔다. 50센티미터도 안 되는 거리까지. 수연이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벽이었다.

"아... 사촌 동생이었구나. 어쩜, 정말 아름다우시다."

그녀가 수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신기하네. 눈매나 콧날은 꼭 네 엄마를 닮았네."

심장이 얼어붙었다.

그녀는 알고 있다. 적어도 이 얼굴이 누구를 모델로 했는지는.

"언니, 무슨 우연의 일치겠죠. 수연이는 외가 쪽 사촌이라서요."

내가 급하게 끼어들었다. 유진 언니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한 발 물러섰다.

수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키지 않아도.


유진 언니가 들고 온 비닐봉지들을 주방에 풀었다.

"지수 너, 얼굴 보니까 제대로 못 먹은 것 같아. 내가 밥 해줄게."

칼이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 기름이 달궈지며 튀는 소리. 된장찌개 냄새가 집 안을 채웠다.

수연이 주방 근처로 왔다가 멈칫했다. 미간을 찌푸렸다. 찌개가 끓는 냄새에 반응하는 것 같았는데, 표정이 이상했다. 불쾌하다기보다는 과부하가 걸린 것 같은. 손으로 코를 가리고 거실로 돌아갔다.

"수연 씨, 된장찌개 괜찮아요? 혹시 알레르기라도?"

유진 언니가 물었다.

"아뇨... 괜찮아요. 좀 예민해서요."

수연이 거실에서 대답했다. 목소리가 작았다.

식탁에 앉았다. 수연이 내 맞은편에, 유진 언니가 내 옆에.

수연의 젓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은 술로, 천천히. 된장찌개를 한 숟가락 뜨고 잠깐 멈추었다가 삼켰다. 맛을 분석하듯 천천히. 예전에는 밥을 빨리 먹는 사람이었다. 달라진 것들 중 하나였다.

유진 언니도 수연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계속 수연에게 머물렀다.

"수연 씨... 혹시 우리 이전에 어디서 본 적 없나요?"

수연의 젓가락이 멈췄다. 나를 보았다. 이번에는 시선이 길었다. 내가 대답해줄 것인지, 아니면 자기가 말해야 하는지.

"언니, 무슨 소리예요. 수연이는 계속 제주도에서만 살았어요."

내가 끼어들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수연의 시선이 밥그릇으로 내려갔다.

유진 언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가... 내가 착각했나 봐."

그녀가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납득하지 않았다는 것을.


식사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지수야. 당분간 언니 여기서 좀 지내도 될까?"

숟가락이 멈췄다.

"박사님 돌아가시고 회사를 그만둔 후에 서울 집을 정리해버렸거든. 호텔 전전하다가... 여기 오니까 살 것 같아."

유진 언니의 목소리에 피로가 묻어 있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로 지쳐 있었다.

하지만.

이 여자가 이 집에 머문다고?

나는 수연을 보았다. 수연도 나를 보았다. 불안이 오갔다.

아버지가 제일 신뢰하던 사람이었다. 거절할 수 없었다.

"언니... 당연히 여기 계셔도 되죠."

"고마워. 여자 셋이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유진 언니가 수연을 향해 웃었다. 그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밤.

수연의 방으로 들어갔다. 예전에 서재로 쓰던 곳. 우리가 함께 쓰던 안방이 아닌, 좁은 손님방.

문이 닫혔다.

제주도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했다. 수연의 얼굴이 가까이 있었다. 여전히 지치고 상처받은 표정. 내가 만든 표정.

"지수야... 유진 언니라는 분, 정말 잘 아는 분이야?"

"응. 아빠 연구소에서 같이 일하셨어."

"그래서 나를... 알아볼 수 있어?"

"아마."

수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촌 동생이라고 했지."

단순한 확인이 아니었다. 목소리에 무언가가 실려 있었다.

"갑자기 왔잖아. 다른 방법이 없었어."

"알아. 그런데..."

말끝을 흐렸다. 고개를 돌렸다. 뭔가를 삼킨 표정이었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물으면 대답을 들어야 하니까.

"언니가 여기 머무는 거 받아들일게."

수연이 한발 물러서듯 말했다.

"그대신 나 부탁 하나만 들어줘."

수연이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손끝이 닿는 순간 수연의 손가락에 미세한 떨림이 지나갔다. 예전에도 그랬다. 피부가 맞닿는 순간의 과한 반응.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아직도 나 미워해? 제주도에서의 일... 정말 후회하고 있어. 제발, 용서해주면 안 될까?"

목소리가 떨렸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수연을 바라보았다. 분노와 상처. 그 아래 아직 남아 있는 무언가.

손이 올라갔다. 수연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내 손이 닿자 수연의 눈이 감겼다. 숨이 깊어졌다. 고개가 내 손 쪽으로 기울었다. 스스로 그런다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

입술이 닿았다.

부드러웠다. 따뜻했다. 제주도 이후로 이렇게 가까이 한 적이 없었다.

용서인가. 확인인가. 나도 몰랐다.

아니. 하나는 알았다. 내가 먼저 다가갔다는 것. 내가 얼굴을 감싸 쥐었다는 것. 이 사람이 용서를 구하는데 내가 허락을 내리듯 입술을 가져갔다는 것. 그 순서가, 자연스러웠다.

그때였다.

복도. 발소리. 아주 가벼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그리고 멈춤.

나는 수연에게서 떨어지며 문 쪽을 보았다. 방문이 완전히 닫혀 있지 않았다. 1센티미터 정도의 틈.

수연이 문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발소리가 멈추기 전에 수연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는 것이었다. 마치 복도의 인기척을 내가 느끼기 전에 감지한 것처럼.

"...누가 있었어."

수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 언니인 것 같아."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유진 언니가 봤다면. 사촌 동생이라고 소개한 수연과 내가 키스하는 장면을.

새벽이 되어서야 잠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떠 있었다.

수연은 잠들어 있었다. 눈 밑에 옅은 그늘이 깔려 있었다. 밤새 잠을 설친 것이다.

주방에서 된장찌개 냄새가 났다. 유진 언니가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잘 잤어?"

내가 물었다. 수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빛은 여전히 어딘가를 경계하고 있었다.

"오늘 출근 안 해도 돼?"

유진 언니가 밥그릇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아뇨, 가야죠."

평소보다 서둘러 출근 준비를 마쳤다. 수연과 유진 언니, 둘만 남겨두고 가는 것이 불안했다. 하지만 회사를 빠질 수도 없었다.

현관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수연이 거실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 속에 '가지 마'라는 말이 담겨 있었다.

"다녀올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느꼈다. 이 사람이 나 없이는 불안해한다는 것. 내가 있어야만 안심한다는 것. 그것이 나를 안심시켰다.


사무실에서 오전 내내, 단 한 줄의 보고서도 읽지 못했다.

자꾸만 집 생각이 났다. 수연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유진 언니는 어젯밤 본 것에 대해 뭔가를 캐묻고 있는 건 아닐까.

참다못해 화장실로 향했다.

가장 구석진 칸. 문을 잠그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홈 보안 시스템 앱을 실행했다.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 보안 카메라는 외출 시 도둑이나 화재를 대비해 설치한 것이지, 집 안의 사람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알고 있었다. 앱을 닫지 않았다.

화면 속 집은 무거운 정적에 잠겨 있었다.

거실 카메라. 유진 언니가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책이 아니라 수연의 방 쪽을 향해 있었다.

수연의 방으로 채널을 돌렸다. 수연은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그때였다.

유진 언니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을 내려놓고, 소리 없이 수연의 방 쪽으로 걸어갔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언니는 방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문을 밀어 열었다.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나는 화면에 코를 박다시피 하며 지켜보았다. 유진 언니가 수연을 들여다보고, 나는 카메라로 그 둘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상한 구도였다. 유진 언니가 하는 것과 내가 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가. 생각이 스쳤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유진 언니의 손끝이 수연의 이마를 스쳤다.

잠든 수연의 얼굴이 반응했다. 눈에 띄는 반응이었다. 미간이 풀리고, 고개가 손길 쪽으로 기울었다.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잠결이라고 해도 접촉에 대한 반응이 너무 즉각적이었다. 유진 언니도 그것을 알아챈 것 같았다. 손가락이 멈춘 뒤, 의미를 확인하듯 한 번 더 눈매를 따라 미끄러지고, 콧날을 쓸어내렸다.

입술을 깨물었다. 피 맛이 났다.

수연의 입술에서 무언가 새어 나왔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이 '지수'처럼 보였다.

유진 언니의 시선이 수연의 입술에 고정되었다. 그녀의 고개가 천천히 기울어졌다. 숨결이 닿을 듯한 거리.

'하지 마.'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때 수연의 몸이 움찔했다. 이번에는 다른 반응이었다. 미간이 찌푸려지고, 어깨가 경직되고, 고개가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유진 언니가 동작을 멈췄다. 짧은 한숨을 내쉬고 방을 나갔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유진 언니는 자기 방으로 가지 않았다. 주방으로 갔다. 식탁 위에 놓인 커피잔을 집어 들었다.

아침에 수연이 마셨던 잔.

언니는 잔 테두리에 남은 입술 자국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그리고 천천히, 그 자국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휴대전화를 떨어뜨릴 뻔했다.


화면을 끄고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유진 언니는 수연을 원하고 있다.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몸이 뜨거웠다. 분노라고 생각했다. 분노가 맞았다. 다만 분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누군가가 내 것을 탐한다는 사실이, 나를 화나게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화장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 화장이 번지고 초췌했다. 하지만 눈 깊은 곳에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누구의 눈이었을까. 방금 카메라 속에서 수연의 입술을 내려다보던 유진 언니의 눈과, 지금 거울 속에 비친 내 눈이, 같은 빛을 띠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생각을 지웠다.


퇴근길은 지옥이었다.

핸들을 쥔 손에 땀이 흥건했다. 신호에 걸릴 때마다 앱을 확인했다. 유진 언니는 거실에서 태블릿을 보고 있었고, 수연은 베란다 창가에 앉아 있었다.

현관문을 열었다.

거실 풍경은 겉보기에 평화로웠다. 유진 언니는 소파에, 수연은 베란다 창가에. 하지만 수연의 어깨가 굳어 있었다.

"왔어? 어서 와."

유진 언니가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그 여유로운 미소.

나는 곧장 수연에게 갔다. 수연의 얼굴을 봤다. 괜찮냐고 눈으로 물었다.

수연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무슨 일 있었어?"

속삭였다.

"아니... 아무것도."

아무것도.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나는 거실 중앙으로 돌아섰다. 수연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언제부터인가 이 사람의 몸을 이끄는 것에 망설임이 없어져 있었다.

"언니."

내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수연한테서 떨어져."

정적이 감돌았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모르는 척하지 마."

나는 한 걸음 다가갔다.

"나 다 봤어. 아까 낮에 수연 방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잠든 사람 얼굴 만지고, 커피잔에 입술 대고... 다 봤어."

내 등 뒤에서 수연의 숨소리가 달라졌다. 자신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잠결에 느꼈던 손길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은 표정.

"이 사람은 내 남편이야."

가방을 소파에 내던졌다.

"김수연은 내 남편이라고. 내 남편 김준우가 저 몸속에 있어. F-72는 껍데기일 뿐이고, 저 안에 있는 건 내 남편이야."

말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등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주저앉는 소리.

수연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사색이 된 얼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왜..."

수연의 입술이 떨렸다.

"왜 나한테 안 물어봤어."

대답할 수 없었다. 변명도 없었다.

하지만 유진 언니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언니는 태블릿을 탁자에 내려놓고 천천히 일어섰다. 표정이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다. 오히려 안도하는 기색마저 있었다.

"알고 있었어."

"...뭐?"

"처음 이 집에 들어온 날부터. 수연 씨를 처음 본 순간부터 알았어."

멍해졌다. 바닥에 앉은 수연도 고개를 들어 유진 언니를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수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직접. 나를 거치지 않고.

"F-72 설계에 참여했거든."

언니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수연을 보고 대답했다. 나를 거치지 않고. 그 시선의 방향이 신경 쓰였다.

"피부 질감, 움직임 패턴, 눈동자 반응 속도... 전부 내가 세팅한 스펙이야. 아무리 예쁜 얼굴로 포장해도, 내 눈에는 F-72의 특징들이 다 보여."

수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두 팔로 자신을 감쌌다.

"이 몸이... 그렇게 티가 나요?"

"일반인은 몰라. 하지만 나는 알아."

유진 언니가 수연에게 직접 대답했다. 수연도 유진 언니에게 직접 물었다. 나는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갑자기, 이 방에서 내가 중심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안해, 지수야."

언니가 나를 향해 돌아섰다.

"다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눈이 자꾸 돌아가더라."

나는 수연에게 다가가 일으켜 세웠다. 내 옆에 세웠다. 등 뒤가 아니라 옆에. 하지만 수연의 팔을 잡은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놓으면 빼앗길 것 같은, 그런 힘.

"내 남편이야."

다시 한번 말했다. 낮고, 단단하게.

그 말이 입 안에서 무게를 가졌다. 예전에 남편이 회식 자리에서 전화할 때 쓰던 말투가 떠올랐다. '우리 마누라가 기다려서.' 소유격. 나는 그 말투가 싫었다. 사람을 물건처럼. 지금 내 입에서 나온 것이 그것과 얼마나 다른가. 생각이 스쳤다. 오래가지 않았다.

유진 언니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뺏을 생각은 없어. 다만..."

언니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준우 씨 몸, 정말 괜찮은 거야?"

"무슨 소리야?"

"F-72 바디에는 확인해야 할 게 있어. 그래서 상태를 살펴본 거야."

"내 집에서 그걸 허락도 없이..."

"들어봐. 질투나 욕망 문제가 아니야."

유진 언니가 태블릿을 다시 집어 들었다. 화면에 그래프와 수치들이 떠 있었다.

"집 안 환경 센서 데이터를 분석해 봤어. 수연 씨가 잠들었을 때 상태도 확인했고."

수연이 내 옆에서 몸을 굳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입을 열었다.

"제 몸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거예요?"

직접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지만 시선은 유진 언니를 향하고 있었다.

유진 언니가 잠시 수연을 보았다. 수연에게 대답했다.

"지금은 아무 문제 없어 보여요. 감각 수용 수치, 호르몬 반응, 뇌파 동기화율... 전부 정상이에요. 오히려 평균보다 훨씬 안정적이에요."

"그럼 뭐가 문제예요?"

수연이 물었다. 나를 거치지 않고.

"너무 완벽해서 이상하다는 거예요. 보통은 이 정도 단계에서 거부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수연 씨는 원래부터 본인 몸이었던 것처럼 녹아들고 있어요."

수연의 손이 무릎 위에서 움켜쥐어졌다.

유진 언니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혹시 수연 씨가 특정 자극에 비정상적으로 격렬하게 반응한 적 없어?"

수연이 숨을 멈췄다.

제주도에서의 그 밤이 스쳤다. 바에서 만난 낯선 남자. 화장실에서 돌아온 수연의 모습. '키스만 했다'고 말했지만. 그리고 그 전에도 — 처음으로 함께한 밤. 내 손이 닿는 곳마다 비정상적으로 반응하던 수연의 몸. 초점이 풀리던 눈.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끌어당기던 손.

유진 언니의 질문은 의학적인 것이었다. 중요한 정보였다. 대답해야 했다. 이 사람의 안전을 위해.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달랐다.

"아니... 그런 적 없어."

수연이 나를 보았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보호인지 은폐인지, 나조차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하나였다. 이 정보를 유진 언니에게 넘기고 싶지 않았다. 이 비밀은 우리 것이었다. 내 것이었다.

유진 언니가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다행이고. 아무튼 지켜봐야 해."

"왜?"

수연이 물었다.

"이 완벽한 적응이 뇌가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한 결과라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언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수연을 보고 말했다.

"지금은 잠복기지만, 임계점을 넘으면 이성적 사고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어요. 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될 수 있어요."

수연이 고개를 들었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감각이 들어오면 뇌가 처리해야 하잖아요. 근데 처리 용량을 넘어서면, 뇌가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 이성을 꺼요. 본능만 남기는 거예요."

수연의 얼굴에서 혈기가 빠졌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본 표정이었다. 이미 경험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제가... 제가 그걸 막을 수는 없나요?"

"그래서 확인하려는 거예요."

유진 언니가 한 발 다가갔다.

"수연 씨. 정직하게 대답해줘요. 수술하고 나서, 감각이 예전과 다르다고 느낀 적 있어요? 예를 들면...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렇지도 않을 접촉에 몸이 과하게 반응한다든가."

긴 침묵이 흘렀다.

수연이 나를 보았다.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이건 수연의 몸이고, 수연의 경험이었다.

"...네."

수연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였다.

"물이 닿아도 그래요. 옷이 스쳐도 그래요. 여자 몸이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닌 거예요?"

유진 언니의 표정이 굳었다.

나도 굳었다. 수연이 그것을 말했다. 나에게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을. 유진 언니에게 먼저.

질투가 아니었다. 질투보다 나쁜 것이었다. 이 사람의 비밀이 내 손에서 빠져나가고 있다는 감각.

"그 이야기는 내일 자세히 하죠."

내가 끊었다.

"오늘은 다들 지쳤으니까."

유진 언니가 나를 보았다. 무언가를 읽은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일 하자."

수연도 나를 보았다. 이번에도 읽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낯설다는 것만 알았다. 무엇이 낯선 건지는 모르겠다.


그날 밤.

수연이 잠든 뒤, 혼자 거실에 앉아 있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았다. 무언가 이상했다. 이상한데 뭐가 이상한지 잡히지 않았다.

한 가지 떠올랐다. 오늘 하루, 수연에게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뭐 하나도. 전부 내가 정하고, 내가 말하고, 내가 끊었다.

그리고 그것이 싫지 않았다.

그 사실이 무서웠다. 잠깐이었다. 곧 잠이 들었다.